9월 중순경부터 매일 한 편씩 단편을 읽고 있다. 100일을 목표로 한 단편 읽기는 이제 다음달이면 마무리가 된다. 매일 어떤 내용일지 알 수 없는 단편을 읽으며 세상의 소식을 접하는 기분이 들었다. 현실의 인물이 아니지만 문학의 세계에서 이상한 사람들이 일으키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며 갇혀있던 생각의 울타리에서 바깥쪽으로 한발짝 나아서는 느낌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에 대해서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을 때는 당선 소감을 함께 읽는 재미가 있었다.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거푸집의 형태>를 쓴 강화길 작가는 이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래, 오랜만이니까. 그리고 또, 좀 못된 것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다. 얄밉고 짜증나는 인간이 한 명 나와야겠어."
<거푸집의 형태> 속 '진이', <최애의 아이> 속 '유리', <옮겨붙은 소망> 속 'n&n's'는 설명이 어려운 인물들이다. 현실 세계 너머의 인물들이 알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서늘함을 느끼기도 했고 내 마음 속에 뒤틀려 있는 어딘가를 만나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앞으로도 계속 읽어나가고 싶다.
강화길, <거푸집의 형태>
"머릿속에 어떤 길이 난 것 같았다. 어떤 수풀도 자라지 않는 황폐하고 으슥한 길목. 나는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자꾸만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걸 멈추지 못했다."
이희주, <최애의 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유리에게 삶은 신기한 것이고 거기엔 기대와 희망뿐이었다. 그런 순수함이 빛을 내뿜고, 빛은 한 사람만의 것이 아니기에 저절로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뺨에도 쏟아진다."
이미상, <옮겨붙은 소망>
"그런 식이었다. 그들은 시간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했다."
균형추가 되어준 이야기들
일상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긴장감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익숙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이야기의 결말이 따뜻한 온기를 남길 때도 씁쓸함을 남길 때도 공허감이 조금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마음의 균형을 매일 붙들어 맬 수 있었다.
김혜진, <빈티지 엽서>
"그러나 오늘 처음 입고 온, 그러니까 며칠간 이런저런 인터넷 쇼핑몰을 기웃거리며 고심 끝에 구입한 새 레깅스의 색감이 어쩐지 그녀를 주눅들게 했다."
강보라, <신시어리 유어스>
"소개해 준 사람을 건너뛰고 자기들끼리 우정을 다지는 건 인간관계의 예의가 아니지 않나. 의혹과 질투로 딱딱해진 두 개의 물음을 주머니 속 호두알처럼 맞비비며 나는 문규씨 쪽으로 렌즈를 돌렸다."
이야기를 쓸 수 있다면
단편 분량의 소설을 써보고 싶은 적이 있었다. 합평 시간에 다른 분들이 쓰신 글을 읽으며 각자의 인생이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 대해 아는 바가 있어야 소설을 쓸 수 있을텐데 내 인생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다양한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이었다.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그 이유를 짚어가다 보면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의 형태가 보일 때가 있었다. 아래의 두 소설들은 마음 속 이야기를 마무리해 보고 싶다는 용기를 주는 이야기들이었다.
조해진, <내일의 송이에게>
"누군가, 세상의 뒷면에서, 최선의 힘으로 직조하여 이곳으로 흘려보낸 것 같은 소리들······."
강보라, <바우어의 정원>
"눈 내리는 연말의 밤거리를 통과하면서 은화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하나 하나 감각했고, 그러는 동안 천천히 비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