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작과 끝은 같다

항상성과 중용이 일러준 삶의 해답

by Rooney Kim

어느 평일 오후였다.


동료와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디저트로 제공한 아주 뜨거운 커피를 들고 나섰다. 컵 홀더까지 끼웠음에도 맨손으로 들기 힘들 정도로 뜨거웠던 커피를 들고 오랜만에 운동이나 할 겸 인근 공원으로 갔다. 뜨거운 커피는 잠시 의자에 내려두고 운동을 하고 나서 잠시 후에 다시 커피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었지만 방금 전까지 맨 손으로 들기조차 힘들었던 뜨거운 커피는 온데간데없고 바깥 날씨와 비슷할 정도로 차갑게 식어 있었다. 너무 뜨거워서 컵 홀더를 끼워도 들고 있기 어려울 정도였던 커피가 5분 남짓 사이에 뜨거운 열기는 사라지고 바깥 온도와 거의 동일한 온도가 된 커피를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자연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힘이 작디작은 커피의 열 에너지를 모조리 빼앗아 버렸네.’
`

뜨거운 커피 안의 열 에너지는 ‘불안정한 상태의 열 분자가 격렬한 운동’을 하는 상태다. 하지만 현재 바깥 온도는 그런 열 에너지를 용납할 수 없기에 작은 컵 안에 가득한 열 에너지를 모두 식혀버린 것이다. 본래, 항상성은 살아 있는 생명체가 생존에 필요한 안정적인 상태를 능동적으로 유지하는 과정을 일컫지만 이는 지구의 환경에도 대입할 수 있다. 즉, 대자연이 태풍, 홍수, 화산 폭발, 지진, 해일 등 다양한 자연현상을 만들어, 단적으로 보면 매우 불안정한 모습처럼 보이지만,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하나하나가 모두 지구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항상성은 에너지를 가진 모든 생명, 물체, 환경을 포용하는 개념으로 보면 된다.


모든 삶은 에너지의 결정체다


한 생명이 타고난 힘, 크기, 인내, 체력 등은 서로 다르지만 이 모든 게 에너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모두 똑같다. 그리고 모든 에너지는 어쩌면 지구라는 거대한 환경이 가지고 있는 대자연의 에너지에는 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고요한 일상에 ‘첫울음’이라는 소리 에너지를 발산하며 ‘정적’이라는 밸런스를 붕괴시켰고, 뜨거운 핏덩이인 채로 태어나 상온의 질서를 해쳤다. ‘생명'이나 ‘탄생'이 해롭다는 것이 아니다. ‘항상성’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생명을 에너지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체는 성장하면서 몸도 커지도 활동반경도 늘어나고, 자신의 성향, 성격에 따라 타 생명체 및 지구에게 수많은 영향을 끼치며 살아간다. 즉, ‘안정’의 측면에서 봤을 때 지속적으로 질서를 무너뜨리고 항상성에 도전하는 삶을 죽는 날까지 지속하는 게 ‘생명체의 삶’이라는 것이다.



출생 이후, 놀이, 교육, 시험과 같은 크고 작은 다양한 에너지의 발산을 경험하고 합격, 통과, 결혼, 출산, 승진, 성공 또는 그 반대, 안정, 노후, 죽음까지 삶은 출생부터 노후까지 수많은 형태의 에너지를 발산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며 생명으로서 가지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죽은 육신이라는 정적인 형태로 대자연(개미, 굼벵이 등 곤충이나 미생물 또는 독수리, 까마귀 및 들짐승)에게 내주거나 화장을 통해 공기 중으로 산화시키는 형태로 한 생명체로써의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동물, 식물도 모두 마찬가지다


나비의 날갯짓이 만든 경미한 공기 흐름의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거대한 변화를 만드는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가 그 단적인 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폭풍우라는 에너지 역시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고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는 피해와 변화라는 결과를 얻은 채 지구가 바라는 항상성에 더 가까워진다. 물론, 미시적으로 인간은 그 지역을 복구하며 ‘자신들의 삶’의 항상성을 찾을 테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자연은 폭풍우를 통해 바다와 강 내부의 생태계를 들쑤시며 생태계 자정 작용 즉, 항상성에 기여한 것이다. 이를 정리해서 보면 ‘나비의 날갯짓’이라는 항상성에 반하는 작은 생명체의 경미한 행위가 결과적으로 더 큰 에너지를 만들며, 인간이 만든 질서와 자연의 항상성에 반하는 결과를 낳은 듯 보이나, 결국 인간의 삶도 항상성을 되찾고, 자연환경도 폭풍우의 정화 작용을 통한 자정을 이뤄내 항상성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하며, 모든 것은 대자연의 섭리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 세계인들의 사랑(에너지)을 받는 슈퍼 스타(매우 큰 에너지 발산체)


해외 락 & 팝계의 슈퍼 스타인 비틀즈, 퀸, 마이클 잭슨부터 머라이어 캐리, 브리트니 스피어스, 에미넴, 마룬 파이브, 아리아나 그란데 그리고 현재 전 세계적인 슈퍼 스타인 BTS까지 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에너지)을 끼치는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현재 활동하는 가수들을 제외하고,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활동을 하지 않는 스타들의 인기나 영향력은 예전 같지 않다. 끓어 넘치던 에너지는 시간이 흐르며 사라지게 돼있고, 젊은 날 주체 못 할 열정은 언젠가는 식게 되어있다.


이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항상성을 찾아가는 자연의 섭리다. 물론, 거시적으로 인간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에너지를 발산하는 스타들은 끊임없이 나오기에, 누군가 인류를 연구하는 또 다른 생명체 혹은 신의 관점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인류’라는 종이 지구 상, 태양계에서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식지 않고 이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지구의 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순식간에 지나가는 1~2초에 불과했다. 만약, 인류가 앞으로 수 만 년을 더 살고 멸종한다고 하더라도 3~4초에 불과한 반짝이는 에너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인류가, 생명체가 그 어떤 몸부림을 치더라도 대자연의 항상성은 항상 우리를 이길 것이고 이후 우리의 에너지는 대자연에 흡수되버리고 만다.



우리의 감정도 에너지다


기쁨, 슬픔, 분노, 절제, 평안 그리고 이로 인한 갈등, 다툼, 시기, 오해와 이가 해결되는 과정인 사과, 이해, 화해 등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은 엄청난 에너지들의 발산과 사그라짐의 연속이다. 사랑의 감정이 처음, 중간, 끝에 따라 작은 성냥불에서 시작하여, 모닥불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희미한 빛만 아른거리는 숯덩이에서 재가되어 사라지는 것처럼 생명체의 감정도 시작부터 항상성의 법칙과 끝없이 싸우는 에너지라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학교, 직장, 가족 내의 갈등과 다툼도 결국엔 서로 맞지 않는 에너지끼리의 충돌이며 이는 상호 간의 이해 또는 결별로 해결된다. 즉, 발산되던 에너지들이 결국 서로 합치하거나 떨어져 나가 항상성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기쁨, 웃음, 즐거움 등도 마찬가지다. 신나게 놀고 뛰어다니는 것도 항상성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 매한가지다. 즐거운 시간도 끝나게 마련이고 신나게 웃다가도 웃음을 멈추고 안정을 찾게 되고 격렬하게 뛰어놀다가도 결국 지쳐서 쉬며 평안한 시간을 갖게 된다.


에너지는 비단 생명체 만의 것이 아니다


태양은 영원히 열과 빛 에너지를 내뿜을 것 같지만 앞으로 수 십억 년 뒤면 사라질 운명이다. 태양 안의 에너지도 한계가 있게 마련이고 그 에너지가 사라지는 시점이 궁극적인 항상성을 찾는 안정된 시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태양계를 이루고 있는 힘의 질서, 즉, 태양계 에너지도 언젠가는 무너져 사라지며 태양계 내의 모든 행성과 위성들은 제각각 흩어져 유명을 달리할 것이다. 이는 각 행성들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종말을 의미하며 이로써 우리 은하 내 수 조개의 태양계 중 매우 작은 것 하나가 가지고 있던 에너지가 소멸되며 우주에 흡수된다. 덕분에 우리 은하도 항상성에 극미하게 조금 가까워질 테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우주의 탄생에는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우주 탄생설에 있어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정설 모형인 가모프의 빅뱅 이론도 항상성의 법칙을 벗어날 순 없다. 빅뱅 이론에 따르면, 아무것도 없던 어느 공간에 원시 원자들이 매우 밀도가 높은 상태에서 모여있다 터져 나오며 현재 우주를 이루고 있는 모든 물질들이 생성되고 현재의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빅뱅 이후 초기 우주는 온도와 밀도가 매우 높은 원시 불덩이 상태였는데, 급격히 팽창하면서 점차 식어갔고 그 팽창 속도 역시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상태다. 즉, 이 거대한 우주 역시 원래 안정적이던 어떤 상태를 깨고 발생한 에너지의 발산이며 이 역시,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모든 에너지를 잃고 ‘무’로 돌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시작과 끝은 같다


한 에너지의 시작은 대자연이 추구하는 항상성과의 끝없는 혈투 끝에 죽음으로 잠들고 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는 슬픈 것도 기쁜 것도 아닌 그저 당연한 이치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동서양의 유사한 여러 철학과 사상은 항상성과 매우 잘 맞는다. 항상성이 '딱, 적당하고 적절한 어떤 상태', 즉, 중간값을 의미한다면 그리스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이를 잘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어디에서 그칠 줄을 알아 거기서 머무는 것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며 이를 ‘중용(中庸)’이라 일컬었고,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마땅한 정도를 초과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악덕이며 그 중간에서 답을 찾는 것이 참다운 덕’이라고 했다. 이는 불교의 '중도'와 비슷하며, 전체의 핵심이며 상대가치 개념의 중간인 ‘중’을 인식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사상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관점에서 장자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준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모든 사물이 서로 얽히고 뭉쳐서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


이는 장자의 '만물 일체론(萬物一體論)'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사물은 전체의 한 부분이며 모든 생명체와 사물들은 결국 전체의 조각들이므로 결국 모두는 하나란 것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에너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우리의 에너지는 마침내 중간값 혹은 ‘0’으로 수렴되어 어느 안정적인 한 형체 또는 한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같다.


게다가 장자의 ‘달관 주의(達觀主義)’를 보면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잘 알 수 있다. 감정도 결국 에너지라고 말한 것처럼 장자는 기쁨과 슬픔을 같은 에너지로 보았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죽는 건 결국 모두 자연의 이치로 봤고, 그저 무심히 자연의 섭리에 의해 태어나고 가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삶이라는 에너지를 대자연의 일부로 보고 ‘안정적인 상태’를 이상적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같다.

시작과 끝은 같은 에너지의 발산과 소멸로서 그 합이 '0'이지 않는가. 따라서, 우리의 삶, 즉, 우리의 에너지는 죽는 날까지 항상성과 싸우는 순간들의 연속인 셈이다. 그렇다면 살아가는 동안 삶 속에서 항상성을 실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꼭 노자나 장자처럼 ‘무위자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야만 할까? 그럼 공부는 누가 하고, 회사는 누가가며, 인류의 발전은 누가 책임질까?


바로 휴식이다


충분한 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말, 생각조차 지워버리는 명상 등등.

우리는 너무 바쁘게, 너무 혹독하게, 성장과 성적 위주의 삶을 살아오며 그동안 너무 많은 에너지를 과하게 불태웠다. 그 결과 거시적으로는 환경오염, 생태계 교란, 전쟁, 살육 등 대자연에 거스르는 결과를 낳았고, 미시적으로는 번아웃, 공황장애(화병), 우울증, 사회 범죄, 자살 등 자신의 에너지를 너무 빨리 소진시키거나 타인의 에너지를 빼앗는 항상성에 크게 어긋나는 행위로 개개인의 일상을 무너뜨렸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깨달음과 가르침은 어떤 현상이나 고민에 대한 방향성이나 의미를 일러줄 뿐 이를 듣는 개개인인 자신의 상황에 맞게 이를 응용하거나 활용하면 그만이다. 그저 지금 자신이 목매고 있는 혹은 매몰되어있는 상황에 시선과 정신을 ‘모두’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아주 기쁜 일도 아주 힘든 일도 지나가는 에너지일 뿐, 덕분에 하루하루 힘을 내며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자극을 받는 정도로 자신의 에너지와 감정을 조절하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성공이나 극치감의 끝은 허무함과 같다. 성공한 사업가, 부유한 자제들, 세계적인 슈퍼 스타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우울증, 마약, 범죄, 자살에 훨씬 가까운 삶을 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따라서 이를 너무 부러워할 필요도, 그렇다고 너무 회의적으로도 살 필요가 없다. 중간을 지키며, 언젠가는 ‘0’에 수렴하며 항상성에 흡수될 내 삶을, 긍정의 에너지로 평범한 일상을 맞이하다 보면 자신이 쌓은 에너지들이 ‘내가 사라진 뒤에도 남아’ 다른 이들이 이를 이어가며 지구에, 인류의 항상성에 도움이 되는 에너지가 되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는 항상성과 싸워 사라지고 마는 에너지가 아닌 항상성이 바라는 에너지가 되어 이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니 어쩌면 가장 바람직한 형태로써의 삶이라는 에너지를 태워버리는 게 아닐까.




[이미지 출처 및 정보 참고]


항상성: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81923&cid=62861&categoryId=6286

중용사상: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61371&cid=46649&categoryId=46649

장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39318&cid=47323&categoryId=47323

빅뱅 이론: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843258&cid=47309&categoryId=47309


모든 이미지: https://unsplash.com/s/photos/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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