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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도리 Oct 28. 2021

꼬인 실타래

안녕, 머슴살이

창밖에 내리는 비를 쳐다본다. 

주르륵 미끄러지는 빗물을 쳐다보면, 


비가 오면 미꾸라지를 잡기 위해서

논두렁을 헤집고 다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잠자리채를 들고 수로를 휘져으면, 뱀처럼 미끌거리는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었다.

비를 맞으며, 열심히 건져 올리다 보면 어느새 양동이에 미꾸라지가 가득 담겨있었다. 


며칠 지나 논두렁을 보면, 햇볕에 바짝 말라 할머니의 주름같이 쩍쩍 갈라져 있는

단단한 진흙이 참 신기했다.


나는 근 2년간을 진흙탕에서 구르는 듯 질퍽이며 살았다. 

주로 고객의 집이나 상가에 가서 인테리어나 집을 만들어주고 돈을 받았다.

외주 사업의 핵심은 남이 하기 싫거나 할 수 없는, 어렵고, 더럽고,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머슴살이"다. 


마음속 나의 자아는 항상 나에게 말했다.

"이런 영혼 없이 굽신거리는 머슴살이 생활은 이제 그만하자!"


모든 걸 던져버리고, 때려치우려고 하는 그때서야 깨닫는다.

"아.. 진짜 어렵다." 


마치 엉키고 엉켜서, 절대로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인생의 실타래를 보는 것 같다. 


무엇이든 시작하는 것보다. 끝내는 게 어렵다. 

시작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지만,

끝내는 것은 더욱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풀 생각에 눈앞이 캄캄하다.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뭐부터 정리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무지함이 나를 더 두렵게 만든다. 

그 두려움에 사람들이 일이나 관계를 그만 두지를 못하고, 하던 대로, 살던 대로 산다는 걸 알아버렸다. 


나는 하던 대로, 살던 대로 살고 싶지 않았다.

바라는 바를 명확하게 정했고, 실천으로 옮겼다.


첫걸음, 고민 끝에 정리정돈을 하기로 결정 했다. 

주변 환경부터, 하던 일, 만나는 사람들까지 모두 정리정돈을 하기로 했다. 

머리가 복잡해 지니까 많이 생각하지 않고 하루에 한 가지씩만 정리해 나가기로 했다. 


먼저, 머슴살이 일을 줄이기로 했다. 

남에 일을 받아서 하다 보면, 또 다른 일을 낳게 되고, 일속에 휘말리게 된다.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살던 대로 다시 평소처럼 돌아와서 살게 된다. 


우선순위를 '돈'을 버는 것에서, '정리'를 하는 것으로 바꿨다. 

돈이 되는 일들도, 정중히 거절을 했다. 


외주를 진행하던 현장들도 하나, 둘씩 줄여나갔고, 일하는 인력들도, 직원들도 

모두 점진적으로 줄여나갔다. 

모든 현장들을 마무리 짓고 나니, 나를 짓누르는 것들도 함께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머슴살이를 멈추고 난 후 사업 매출액은 10억에서 1억 미만으로 팍! 줄었다. 

매출액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에 아이러니함과 쾌감이 동시에 들었다. 


그렇게 머슴살이를 내려 놓을 수 있었다.


두번째 걸음. 공간을 정리한다.  

내가 펼쳐놓은 공간을 구분하면 사무실, 공장, 집 이렇게 총 세 가지로 구분했다.

 

우선 부동산에 들러 사무실을 시장에 내놓았다. 

1층에 대로변에 있다 보니 임차인은 금세 구할 수 있었고,

이 자리에서 커피숍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한 달 뒤 입주하겠다고 하며 계약을 했다.

 

한 달 동안 모든 물건들을 정리해서, 버릴 건 버리고, 정돈할 것 정돈하여 짐을 공장으로 옮겼다. 

간판까지 때 고난 텅~빈 사무실.

마지막 모습이 참 좋았다. 대학로 소극장에 공연장처럼 어떤 작품도 펼쳐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굿바이, 염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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