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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Jul 04. 2021

만년필의 추억

벌써 50년 전의 일이다.

국민학교 다닐 때는 필기구라고는 연필밖에 없었다.

다 같이 없고 못살던 시절에는 닳고 닳은 몽당연필을 모나미 볼펜의 빈 통에

껴서 끝까지 써야 했다.

연필 뒷부분의 고무까지 다 닳도록 써야 새로운 연필 한 자루가 생기던 시절이다.


중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전에 잉크병에 펜을 꽂아 영어단어를 쓰며 펜글씨를 익힐 때다.

아버님은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만년필을 하나 사 주셨다.

영어 필기는 만년필로 해야 된다고 하시면서 Parker 파커 만년필을 사 주셨다.

그게 수입품이었는지 미군부대에서 뒤로 흘러나와 미제 물건을 파는 남대문 도깨비 시장에서

산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연필과 달리 만년필의 필기감은 삭삭 소리가 난다.

마치 과도로 사과 깎을 때와 같은 소리가 났다.

검은 잉크병에서 나는 냄새는 연필을 깎았을 때 나는 향나무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그렇게 쓰던 당시의 파커 만년필은 지금은 나에게 없다.

보나 마나 잃어버렸겠지만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기억조차도 없다.

교복 상의 왼쪽 상단 포켓에 화살표 표식의 파커 만년필을 끼어놓고 다니는 건

지금으로 치면 샤넬이나 구찌 백을 들고 다니는듯한 자랑이었다.

가방 안에 검은 잉크병과 만년필을 넣고 다니면서 영어 수업시간에 받아쓰기와 단어장을 만든다.

중1 영어 교과서는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This is a pencil.

I am a pupil.

How are you Mr.Smith?

그때 배운 pupil 이란 단어는 그 이후 50여 년간 문서나 회화에서 써 본일은 없다.

그러다가 책가방 안에 넣어갖고 다니던 잉크병이 새거나 엎질러지면 국어책과 수학책은

검푸른 색으로 물들여진다.

영어 때문에 국어와 수학이 수난을 당하는 게다.

어떨 때는 반찬통에서 새어 나온 반찬 냄새와 잉크 냄새가 섞여서 희한한 조합의 냄새가 나기도 했다.


그러던 만년필, 그렇게 쓰던 만년필은 이후 편리하다는 이유로 볼펜으로 교체되기 시작한다.

모나미 153 볼펜부터 파이롯트 볼펜을 거쳐 Montblanc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볼펜이 있었다.

그러다가 컴퓨터가 나오고

어쩔 수 없이 자판을 두드리는 세월이 되었다.

독수리 타법으로 문서를 만들고 고치고 완성했고 보스에게 인쇄해서 보고했다.

연필로 쓴 문서는 지우개로 지워서 다시쓰면 되지만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쓴 것은 

통째로 다시 써야 한다.

한두 자 틀린 거야 white라 칭하는 correction liquid로 수정해서 사용했다만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쓸 각오로 해야 했기에  한 자 한 자 신중하게 써야 했다.

컴퓨터 자판으로 쓰는 건 편리하기는 하지만 글 쓰는 맛은 없다.

다 다 다 다

시끄럽기만 하다.

수정이랄 것도 없다. Delete 키 몇 번만 두드리면 새로운 종이가 생겼다.

연필 - 펜 - 만년필 - 볼펜 - 자판 - 붓글씨(서예)로 옮겨진다.

붓글씨는 조용하다. 용각산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만년필이나 연필이 종이 위에서 나는 사각 거림이 없다.

먹 가는 소리야 있겠지만 요새는 페트병에 든 먹물을 사용하니 일반적으로는 먹갈일도 없다.


은퇴자의 취미 중의 하나는 서예 다.

나도 서예나 해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대신 만년필이 떠올랐다.

그래~ 

만년필을 끄집어내서 한번 써보자.....

책상 서랍 이리저리 뒤져보니 만년필 몇 자루가 나온다.

Montblanc이 있다.

중요 프로젝트 계약식 서명 후 받은 거다.

Montblanc Meisterstuck145 모델이다. 파퓰러 한 만년필이지만 꽤 고가의 제품이다.

펜촉에 4810이라고 각인되어있는데 이는 유럽 알프스 몽블랑의 높이이기도 하다.


또 하나는 중국인 친구가 퇴직할 때 선물로 준 건데

Montblanc의 Bernard Shaw  limited edition이다.


Montblanc은 일반적인 검은색 위주의 고전적 만년필만 팔아서는 돈이 안 되는 줄 알아차렸는지

디자인과 유명인을 결합한 스페셜 에디션을 출시한다.

버나드 쇼 

헤밍웨이

어린 왕자

비틀스

마릴린 먼로

.

.

80일간의 세계일주 등 스페셜 에디션을 고가로 시장에 출시한다.

나올 때마다 꽤나 가격이 비싸다.

최근에는 피아노의 거장 Steinway edition이 나왔다.

한 개에 12백만 원을 넘는 고가 다.


편지를 쓰고 책을 복사할 수 있는 방법이 과거에는 붓글씨 밖에 없었다.

이후 연필, 만년필, 볼펜 컴퓨터 자판의 디지털 기기 등으로 발전되었다.

최근에 젊은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개탄하는 목소리가 많다.

과거에는 정보전달, 정보교류의 수단이 책 밖에 없었지만 현대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인터넷으로부터 얻는 정보가 더 많고

유튜브 등 시각+청각의 정보 소스가 많다.

굳이 책을 안 읽는다고 정보 습득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으로부터 얻는 정보는 휘발성이 강해서 그리 오랫동안 머릿속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게 단점이다.

짧은 시간에 필요한 지식은 네이버 나 구글이 더 빠르고 정확하다.

지식은 네이버에서 구할 수가 있지만

지혜는 책 속밖에 없다.

이것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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