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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오에서이십육 Oct 04. 2021

호르몬제로 여는 아침과 위로하는 방법에 대하여

진심을 다해도 틀릴 때가 있다

21.10.01


매일 아침, 반쪽이 된 갑상선을 보호하기 위해 호르몬제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물론 이는 [구 갑상선암, 현 갑상선 반 개]라는 내 상태에 대한 데일리 리마인더가 된다. 속상하지 않냐는 말을 들었지만 다행히 나는 별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매일 먹는 비타민, 누구나 한 가지씩은 갖고 있는 몸에 대한 콤플렉스 한 개 정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서 그러려니 한다.


사람마다 같은 일에 대해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르다. 처음 암 판정받았을 때에도 나의 반응은 조금 당황스러웠던 정도였고 수술 전에도 별로 긴장하지 않았고 수술 후 지금도 긴 병가와 뻣뻣한 몸이 답답하기만 할 뿐인데,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딱해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런 일에는 이토록 무덤덤한 나지만 기대했던 이벤트에 차질이 생겼을 때, 목표했던 바가 틀어져 방향을 잃은 것 같을 때, 가까운 사람과 감정이 틀어졌을 때와 같이 어찌 보면 사소한 일들에는 눈물을 쏟으며 힘들어한다. 살면서 생기는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사람마다 매기는 중요도는 다르고 그에 따른 반응에도 정답은 없다.


어찌 됐건 남들 보기에 안타까운 입장이 되어보면서, 위로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한테도 특별히  위안이  위로 있었고 덜한 것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정신승리'라는 걸 싫어한다. 승리는 승리로 좋아하고, 패배는 씁쓸하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는 게 나은 것 같다. 객관적으로 별로인 현실에서 굳이 굳이 눈 씻어 가며 그나마 괜찮은 점을 찾고 그걸 애써 확대 해석하는 게 더 비참한 것 같다. 그래서 '그래도 ~~ 라서 감사하자' 류와 '전화위복' 류의 위로는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조기에 발견된 것, 더 심한 암은 아닌 것, 등등 다행인 거 다 알고 동의한다. 하지만 그게 거의 행운인 것처럼, 감사하라고 하는 것은 좀 별로였다. 어떻게 봐도 암에 걸리는 건 높은 확률로 있는 일이 아니고* 행운도 아니고 감사하진 않다(아프면 아픈 거지 뭘 그걸 또 감사하기까지 해야 하냐!). 그리고 이로 인해 얻은 병가로 평소 해보지 못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벌었고 한동안 술도 끊고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겠지만 이것도 부수적인 장점 정도지 복에 겨워할 일은 아니다.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같은 말은 그냥 좀 무서웠다. 기대하게 될까 봐. 그런 일은 없고, 더 심한 우환이 생기면? 더더욱 좋은 일이 있으려고 그런 건가? 그냥 이 일은 이 일이고, 앞으로 있을 일도 절대 모르니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기대를 내려놓는 편이 나은 것 같다.


내게 도움이 되었던 위로는 관심을 돌려주는 것, 불쌍해 하기보다 이 상황을 웃어넘기게 해 주는 것이었던 것 같다. 그냥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 다른 생각을 하게 해 주는 것, '너는 내가 아는 암 환자 중에 제일 활달해'라든가, '내가 암에 걸렸으면 완전 티 내고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굴었을 텐데.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라든가, 암세포에 이름 붙여 주고 걔는 잘 지내냐 물어봐준다든가... 이것은 근데 내가 이 일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걸 알고 해준 말이었기에 나한테는 먹혔던 위로였던 것 같기도 하다. 같은 갑상선암 소식을 듣고 놀라 쓰러지는 등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들에게 이런 식으로 위로했다가는 오히려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떤 일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도 정답이 없듯, 위로하는 방법에도 정답은 없다. 내 선에서 진심을 다해 이 사람을 생각해준다면, 도움이 얼마나 되었든, 그 방식이 어떠했든, 심지어 아무 말을 않더라도 그 자체로서 사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오답은 있다. 안 좋은 일이 생긴 사람이 그 일에 대해서 느끼는 방식을 부정하고, 축소하고, 어떻게 생각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오답이다. 위로해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별 일이 아니어 보일지라도 그 사람에게 굉장한 별 일일 수 있다. 그래서 많이들 하지만 잘못된 위로 - '왜' 힘들어하냐 따져 묻고, '그까짓' 일 취급하고, 더한 일도 있으니 (최악은 여기에 라떼를 추가할 때다) 힘들어하지 '말라'라고 하는 것 모두 오답이다. 생각해 보면, '걱정하지/슬퍼하지/힘들어하지 마'라는 말에 상대방이 생각해주는 것은 느꼈을지언정, 그 말을 듣고 정말 걱정/슬픔/힘듦이 가신 적이 있기나 한가? 분홍 코끼리만큼이나 다시 생각나서 그 말을 듣자마자 울컥한 적이 더 많았을 것이다.


위로는 어렵다. 그 사람을 생각해서,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덜 아프기를 바라서 하는 말이지만 그 사람이 직접 되어보지는 못하기 때문에 어렵다. 이 글을 쓰면서 나도 알았다. 그동안 얼마나 잘못된 위로를 해 왔는지를. 상대방이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그에 최적화된 위로를 해 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그저 들어주고, 같이 있어주고, 공감해주려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위로받는 자도 그 마음이 닿아 나아갈 힘을 찾을 수 있겠지.



*2018년 한국 기준 암 발생 건수가 24만 건이라고 한다. 중복이 아니라고 가정하면 당시 인구의 0.47%고 20대 중에서는 그 확률이 더 낮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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