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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십오에서이십육 Sep 20. 2021

어른이 되어간다는 느낌

그냥 늙는 거 말고!

2021.07.


오늘 26번째 생일을 맞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가장 먼저  생각은 이제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 였다. 물론  나이가 들어 이걸 보면 코웃음을 치겠지만, 이번은  진짜인  같다. 일단 며칠 전까지는  생일인 줄도 잊고 있었고, 당일인 오늘 아침에도  감흥이 없었다. 다른 날들과 똑같이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출근 준비를  시간만 간신히 남기고 일어났다.


옛날엔 누가누가 무슨 말을 해주려나아, 설레 하며 몇 분마다 한 번씩 휴대폰을 들여다보았지만, 이제는 어떻게 알고서 축하 연락을 해 오는 사람들이 너무 감사하지만... 조금 버겁기도 했다. 업무를 하듯 와다다 몰아서 답장을 보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같은 일에 대해 이토록 다르게 반응하는 내 자신에 놀라며 나도 얼마 안 있으면 맨날 '나도 이십 대 때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많이 하겠구나,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서 보니, 나도 내가 어릴 때 생각했던 '어른'의 전형을 닮아가고 있다는 단서가 곳곳에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면 중지로 버튼을 찔러댄다. 어릴 땐 중지 욕이 '진짜 뭔지'도 몰랐으면서, 중지를 단독으로 들어 올리는 행동은 뭐든 엽기적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언가를 가리키거나 누를 때 중지부터 나가는 '어른'들을 보면 킥킥 웃었다. 근데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다. 왜 그렇게 웃었던 걸까. 기억이 희미하다.


그리고 무표정할 때가 많아졌다. 어릴 때 올려다보면 보이는 어른들의 표정은 다들 서로를 닮아 있었다. 생김은 다 달라도, 길을 잃은 눈빛과 감정이 읽히지 않는 표정은 똑같았다. 화가 난 걸까? 아니라고 했다. '어릴 땐 나뭇잎만 굴러가도 웃는다'라고 하는 어른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나는 나뭇잎이 굴러가는 사건 따위에 웃지 않는데. 진짜 재밌는 거에만 웃는데. 내 웃음을 너무 헤프게 생각하는 것 같아 억울했었다. 이젠 그 말이 이해가 간다. 옛날만큼 소리 내어 웃는 일이 많지 않다. 기분은 나쁘지 않다. 그냥 웃을 정도는 아닐 뿐.


그치만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는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나의 취약함을 드러낼 줄을 알아간다는 걸 느낄 때다.


줏대 없던 어릴 적의 나를 '이상한' 친구들로부터 떼어놓으려던 부모님의 노력과 여러 번의 이사로 인해 나는 누군가에게 마음 붙일 줄을 몰랐다. 친구를 사귀어봤자 떠나고 연락이 끊기면 없어질 인연, 밥만 혼자 안 먹고 얕잡아 보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였다. 원래도 내 속 깊숙한 얘기를 하는 성격이 아니어서 같이 돌아다녀 줄 '겉친구'만 매년 새로 갈아치웠다. 학창 시절의 나는 완전한 외강내유형이었다. 남에게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고, 속으로는 외로운 아이.


그런 상태로 해외를 나갔다가 극강의 외로움을 맞고,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처럼 방어적인 상태로 귀국한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이 나를 바꿨다. 고등학교를 2년 남기고 대입에 성공해야 했던 나는 원래 친구 따위 사귈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어떤 한 친구가 있었다. 자꾸 말을 걸어오고, 너는 참 어떤 것 같다고 해 주고, 나를 자꾸 어디에 초대하고, 자기 도와 달라고 하고. 어느새 나는 내가 왜...? 하면서 이 친구가 벌린 '이상한' 일들에 끌려가 수습하고 있었다. 그렇게 스며든 그 친구의 이런저런 고민들도 하나씩 알아가면서, 나도 조금씩 마음을 열며 내가 미국에서 혼자 눈물지으며 하던 고민들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던 고민들을 한 꺼풀 한 꺼풀 풀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친구로 인해 '알고 보니 전혀 싸가지 없지 않고 그냥 허당인' 점이 들통나면서 친해진 다른 친구들의 따스함에 나의 날 선 성격은 조금씩 녹아들어 갔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 일부와 대학을 같이 서울로 다니면서 각자가 겪고 있는 각종 '청춘의 고민들'을 나누었고, 비로소 나는 '깊은 관계'라는 것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대학 시절 동안에도 내 감정을 나도 잘 몰라서, 아니면 표현할 줄을 몰라서 여러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들 덕분에 '서로 의지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아갔고 그러기 위해선 나의 좋은 모습도, 유약한 모습도 보여줄 수 있어야 진정한 주거니 받거니가 일어난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자신의 취약한 모습도 내보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에게(내부적으로나, 관계적으로나) 강력한 서포트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만이 할 수 있는 당당한 행동이라는 것도.


아직 나는 다른 사람의 상황을 빠르게 감지하고 공감해주는 능력은 한참 부족하다. 하지만 이제는 내 속의 감정과 내가 드러내는 감정의 괴리가 느껴지지 않아 사람을 대하는 것이 더 이상 어렵지 않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간다는 체감이, 오늘이 생일이라서 또 한 살을 먹었다는 사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새어 나오는 '끙차' 소리보다, 내가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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