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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Aug 14. 2021

사장의 언어

대만, 홍콩인과 함께 찾은 사장의 말들

 사장의 언어는 어렵다. 그 의중을 파악하는 일이 수월하지 않다는 말이다. 

 대학원 때의 일이다. 지도교수는 내게 학부생 중간고사 채점을 맡겼다. 나는 조교도 아니고, 채점을 해야 할 의무가 없었지만 시키니까 했다. 그런데 채점을 하려고 보니 모두 서술형 답안이었고 너무나도 긴 글이었다. 채점 기준이 필요했다. 지도교수에게 물었다. 채점기준이 있느냐고. 그는 안경 한 쪽을 치켜 올리고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니가 선생이라고 생각하고 채점을 하란 말야.”

 그의 말은 너무 어려웠다.

 나는 그 시험지를 쓴 학생들의 선생이 아니었고, 지도교수는 나의 사장도 아니었다. 나는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닌, 그가 아주 귀찮아하는 채점 작업을 하려던 차에 마침 그의 앞에 있었다는 이유로 일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 또한 고가의 등록금을 지불했으니 그의 성실한 지도를 받아야 하는 학생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연구실에 있는 긴 탁자 위에 시험지들을 펼쳐 놓았다. 한참을 들여다 보니 규칙이 보였다. 주제의 적합성, 응집성, 기본 문장 구성력, 논리, 등 몇 가지 규칙을 정해 놓고 채점을 시작했다. 그 채점을 그가 그대로 결과로 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이후 ‘사장님’으로부터 욕을 안 먹었으니 그럭저럭 잘 해냈다고 넘어가는 수밖에.




 사장의 언어는 이해가 안 된다. 그의 언어가 외국어일 때 더욱 그렇다.

 대만의 한 대학에서 근무할 시절, 학과장은 일본어학과 교수인 대만인이었다. 나는 그 학교에 부임한 지 일 년이 채 안 된 외국인 근로자였다. 내가 조교나 동료에게 업무에 관련 질문을 하면 종종 “학과장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답했다. 그래서 나는 진짜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학과장은 내 질문에 눈을 세모꼴로 하고 이렇게 되물었다.

 “그 질문을 하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혹은

 “나는 모릅니다. 학교 측에 물어 보세요.”라고 답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일을 겪고 나서 나의 중국어 능력과 대만 문화 몰이해에 심하게 좌절했다.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들은 공적 업무에서 본인이 답변하기 어려우면 자기보다 윗사람에게 답변을 넘겼던 것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그녀가 회의 때마다 나를 지목하면서 “조 선생님, 질문 있어요?” 혹은 “조 선생님, 의견 있으면 함께 나눠주시죠.”, “한국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문제의 개선 사항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내게 자꾸 이런 질문을 하는 의도를 간파하지 못했다. 그냥 나의 의견을 묻는 것이라는 생각에 몇 번 더듬거리며 답변을 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나의 짧은 중국어와 나날이 늘어가는 눈치로 파악하건대, 그녀는 나의 질문이나 의견 따위가 궁금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해 본 말'이었다. 

 그러니까 “여러분, 날이 더운데 잘 지내셨죠?”라는 질문에 그 누구도 “아니, 이 날씨에 잘 지낼 수 있었겠습니까? 지구의 환경이 심히 걱정되는군요.”라고 답하는 사람이 없듯이, 그녀의 질문은 그저 “나는 회의 때 두루두루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있다”는 일종의 자기 확인 같은 행위였다. 

 그 이후로 그녀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동일했다.


 “메이요( 沒有, (의견이나 질문이 있어도 네 앞에서는) 없습니다)”




 

 사장이 화를 내는 이유는 다양했고 늘 직원들의 예상을 벗어났다. 일한 지 한 계절밖에 되지 않은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삼 년 넘은 매니저까지도 그 분노의 촉발에 대해서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렇게 사장이 언제 터질지 모르니까 매니저는 긴장했고 하지만 여기는 카페인 만큼 어떻게 해서든, 자기 기분을 속여서라도 친절은 유지하고 싶어했는데 그런 가운데 매번 문이 열릴 때마다 매니저가 외치는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따뜻하게 드릴까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음료는 괜찮으셨어요, 하는 상냥한 말들은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는 알 수 없으나 슬프고 애잔한 느낌을 주었다. 어려서 가지고 놀던 장난감의 말소리에 귀기울이다가 문득 그 반복되는 구절들이 마음을 누르면서 울어버렸을 때와 비슷했다.  
  (중략) 
 물론 규칙을 어긴다고 사장이 다른 매정한 작업장처럼 임금을 깎거나 벌점을 주지는 않았지만 불같이 화를 냈다. 그렇게 감정적으로 패널티를 받아야 한다는 건 굉장히 피곤한 일이었다. 그 외에도 내게 특히 불편한 규칙은 모자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      김금희, <사장은 모자를 쓰고 온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문학동네(2019)



 이 글을 학생들과 함께 읽고 그들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대만과 홍콩 출신 학습자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해 현재 사회인이 되었다. 모두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었고, 이들은 현재 한국을 주 거래처로 하는 대만 무역회사에 근무하는 대만인, 일본에서 근무하는 대만인, 현지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홍콩인 등이다.



<학생 1 – 대만>

알바 경험은 아니지만 다음 내용은 현재 내가 정규직으로 일하는 섬유 무역 회사에서 벌어진 이야기이다. 내 근무지 사장님의 성격도 소설 속 사장님처럼 화를 많이 내는 편이며 자존심이 강한 분이다. 스스로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무조건 먼저 직원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해 직원들보고 욱하는 상황이 많으며 후에 자기의 잘못임을 알게 되더라도 뻔뻔하게 아무일 없는 것처럼 가만히 있는다. 그런면에서 직원들이 억울하게 혼난 적은 은근 많았다. 얄미운 상사이긴 하지만 그나마 나를 예뻐해줘서 아직은 내가 욕먹은 적이 없다는 것에 가끔 다행스럽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많이 부담스러우며 불편하기도 하다.



<학생 2-대만>

 나는 대만 학원과 일본 편의점에 알바를 했다. 둘다 너무 재미있고 좋았다. 그래서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려고 한다. 

그 분은 내 직속 상사가 아니지만 가금 업무 관련에 보고하러 봐야 한다. 그 분도 소설 속 사장님처럼 언제 무엇을 때문에 화를 내는지 예측이 불하하다. 만약 그 상사의 기분이 안 좋을 때 미팅을 하면 다 같이 혼나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 우리는 잘못한 것은 일도 없었다. 그냥 그분은 화를 풀고 싶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 그 상사가 이런 분을 잘 알기 때문에 별로 속상하지 않지만 (물론 초반에는 많이 분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 팀 팀원들은 긴 시간 마음 고생을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항상 안쓰럽다고 생각하고 만날 때 응원을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의 팁은 미팅을 들어가기 전에 그 분의 팀원에게 상사의 기분을 미리 체크하고 간다. 마음 준비를 미리 할 수 있도록.


<학생 3 –대만>

몇 달 전에 학교에서 준 기회로 어느 유명한 라디오에서 입사해 단기적으로 인턴을 하게 되었다. 이번 주제 이야기를 읽자마자 회사에 있을 때 내 경험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에서는 회장님 한 분과 기타 DJ들이 계셨다. 원래 방송 산업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고 많이 생소했다. 처음엔 라디오 DJ에 대한 상상은 연예인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라디오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동안 DJ들이 모두 친절하게 차근차근 가르쳐주고 모든 것을 익혔다.

내가 생각하는 모습과는 상당히 달랐다.

가끔은 회장님이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모든 직원에게 사소한 일에 신경 쓰라고 한다. 긴 시간 그 환경에서 일하지는 않았지만,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저기압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업무 스트레스뿐 아니라 때론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는 걸 그때부터 깨달았다. 드라마에서만 봤던 장면들 실제로 내 눈 앞에 나타나 버렸다. 

내 결론은 바쁜 출근 시간에도 시간을 내서 나를 가르쳐주는 DJ들은 이 직업에 대한 열정으로 이 회사에 남아 있는 경우가 많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생 4- 홍콩>

예전에 했던 아르바이트는 조금 힘들지만 사장님들이 다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인턴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3학년때 3개월동안 홍콩에 있는 유명한 전시 센터에서 품질 관리하는 일을 했다. 함께 일한 동료들은 너무 친절하고 재미였다. 인턴 프로그램 후에도 같이 놀았고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 사장님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예를 들면 사장님이 매일 저한테 일에 대한 궁금한 거 있냐고 물었다. 물론 인턴을 할 때 열정을 질문으로 표현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근데 저는 궁금한 거 다 물었고 또 다른 질문이 진짜 없을 때 질문을 생각하는 거 제일 어려웠다. 이 3개월동안 진짜 힘들었고 다시 그 사장님을 만나기도 싫다.




어디서나 사장의 언어와 사장의 알 수 없는 분노는 유사한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인가?

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며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법은,

우리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글을 읽고

“맞아, 맞아” 서로 맞장구를 쳐 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마음 한 켠의 여유가 아닐지,


좋은 소설이란, 잊혀졌던 나의 경험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소설의 인물과 함께 대화하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좋은 공부란, 자신의 경험을 타인과 공유하며 그 속에서 배움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깨달음을 소설을 읽으며, 내 좋은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씩 찾아갔다. 



사장의 언어로 상처받는 이들과 이 글을 함께 나누며 이 뜨거운 연휴에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 대문 사진 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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