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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Aug 09. 2020

닭 모가지 때문이 아니야

너를 보았다.

다소곳하게 앉은 채 눈을 감고 있던 너,

나는 두려웠다.

너의 감은 눈, 작은 머리, 그 위의 뿔 모양의 장식들, 모두가 누렇게 익어 있었으니,

너의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기름을 땀처럼 흘리며 앉아있는 너를.




대만 남부 타이난에 온천으로 유명한 관즈링이라는 곳이 있다. 타 지역 온천과는 달리 피부미용에 좋다는 머드가 유명했고, 접근성이 떨어져 현지인이 아니면 가기 힘든 곳이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그곳을 가족 여행지로 잡았다. 가오슝 기차역에서 타이난 기차역까지 일반 열차를, 역에서 숙소까지는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대관령 고개를 넘듯 구불구불 험준한 산등성이를 올라 숙소에 도착했다. 온천탕이 숙소에 달려 있었다. 급한 마음에 욕조에 물부터 채우기 시작했다. 수도꼭지에서 뜨거운 온천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커다란 온천탕에 몸을 담갔다. 숙소에서 제공한 머드도 얼굴에 발랐다. 물이 뜨거워지자 욕실의 온도는 금세 올라갔고, 얼굴의 진흙은 서서히 굳어갔다. 


온천욕을 마치니 허기가 몰려왔다. 카운터에 연락해 닭 배달을 시켰다. 잠시 후, 그 유명하다는 현지 토종닭(통닭)이 배달되었다. 접시 위에 올려진 은색 둥근 뚜껑을 열었는데, 


 닭이 앉아 있었다!


자고로 닭이란, 다리가 꼬인 채 탕 속에 있거나, 목이 잘린 뒤 엎드려 있거나, 토막 나 박스 안에 들어 있어야 했다. 더군다나 내게 배달된 닭은, 머리 아니 벼슬부터 발끝까지 온전한 형체를 유지한 채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닭의 평온한 얼굴을 보니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었다. 혹시라도 얘가 눈을 번쩍 뜨고, 모가지를 길게 빼고는 “꼬기오”하고 외치면 어쩌나. 몸통에 붙어버린 날개가 움직이기라도 해서 “발 없는 닭이 천리 간다”면 어쩌나. 그러기 전에 얘를 내 옆자리 의자에 앉혀 주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그리고는 그에게 “네가 익어가는 동안 일어났던 일들 좀 얘기해 주렴”이라고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건네야 하나, 뭐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


애초에 생각 따위는 필요없었다.

나는 너를 먹어야 한다.

자, 이제 시작하겠다.

닭이 깔고 앉은 은빛 방석 옆에 면장갑과 비닐장갑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손에 끼고 어깨를 쭉, 폈다. 왼손으로는 닭의 몸통을, 오른손으로는 닭 대가리를 잡았다. 그리고 모가지를 비틀었다. 


대가리, 성공적. 

머리와 목 분리는 생각보다 금세 끝났다.  

대가리는 비닐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철제로 된 통에서 “퉁”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자, 먹자”

 나는 닭다리를 뜯어 우리집 남자들에게 하나씩 주었다. 

 닭다리는 자고로 남자들이 먹는 거라던 할머니의 오랜 가르침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며 “너는 모가지 먹어라”던 그 분의 말씀도 기억했다. 밥상머리 교육에 따라 나는 닭 모가지를 들었다. 촘촘한 뼈 사이에 밝힌 얇은 살점들을 앞니로 조금씩 떼어 먹었다. 


왜일까, 

닭 모가지를 뜯으니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는 나와 72세 차 띠동갑인 이북 출신 할머니가 아니다. 비 오는 어느 날, 함께 치맥을 하던 나의 오랜 동료였다.




치킨 껍데기 벗겨먹던 A 옆에서

거울을 보며 피부 트러블을 얘기하던 B 앞에서,

맥주 2천 CC로는 부족하지 않겠느냐는 C 곁에서

당신은 닭 모가지 뜯으며 말했어,

…… 닭 모가지 많이 먹으면 팔자가 드세대

 

살코기만 골라먹던 여자도,

피부과 의사랑 결혼을 생각하던 여자도,

거품 없이 맥주를 따르던 여자도,

아니라고, 아니라고,

모가지 먹으면 노래를 잘하는 거라 했지만

당신은 또 다시 말했지

…… 닭 모가지 많이 먹어 내 팔자가 이 모양 이 꼴이야

 

아니야, 아니야, 

닭 모가지 때문이 아니야

당신의 구직,

당신의 이사,

당신의 남편,

닭 모가지 많이 먹어 그런 게 아니야

 

우리가 사는 게

닭 뜯어먹는 꼴 같아 그래

다리도 날개도 가슴팍도 둘인데, 하필이면 하나뿐인 그걸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 아까워서 먹고, 아쉬워서 먹고

촘촘한 뼈 사이에 또 뭔가 있을까 싶어 먹고, 또 먹고, 내려놓으려다 또 먹고

좁고 짧고 텅 빈, 그게 또 나 사는 꼴 같아 물어뜯고, 그래, 

그런데 그게 아니야,

 

당신이 힘든 건 닭 모가지 때문이 아니야 

인생이란 좁다란 모가지에 

잠시 사레들었을 뿐

꽉 막힌 목구멍에서 새어나오는 소리 조용히 삼키려다

저도 모르게 켁켁, 하다 눈물도 찔끔 흘렸을려나

 

나는 여전히 당신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게 닭 모가지 때문이 아니라며

당신 등을 몇 번 두드려 주었다고, 맥주 한 잔 권했다고 

나아질 리 없겠지만, 당신, 

그래도 닭 모가지 때문은 아니야, 아니야, 

당신은 조금씩 아껴 먹었던 거야 

세상을, 당신의 인생을, 그러니까

아직 많이 남았어, 더 먹을 수 있어, 닭도 삶도 그렇게

 



 

7년 전쯤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쓴 글이다.

나는 이 시를, “닭 모가지 많이 먹어 사는 게 이 모양”이라던 그녀를 위해 썼다. 

이 시를 그녀 앞에서 읽어 주었다. 마침 그날은 교무회의가 열린 날이었다. 

누구는 “한국어 교수법의 현황”에 대해, 누구는 “반 편성 배치고사 변경 사항”에 대해 발표를 했고, 나는 “닭 모가지 때문이 아니야”를 발표했다.

 


그녀는 지금 아주 잘 지낸다.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그녀를 나는 언제나 응원하고 있다. 

비가 오는 저녁, 닭다리를 뜯으며 맥주를 들이켜며 오래 전 쓴 이 시를 꺼내본다.


아직도 비가 온다. 

 



* 대문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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