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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Jun 24. 2024

여기서 더 나빠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눈물이 쏟아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온 울음은 좀처럼 막을 방법이 없고 마냥 울다가 지쳐 잠이 드는 수밖에 없었다. 꿈에서도 기분이 나빴다. 다음날이면 퉁퉁 부은 얼굴과 대충 차려입은 모양새를 가다듬고서 밖을 나섰다. 영양제는 깜빡했다. 음악을 듣다가 껐다. 주변은 봄이라며 한껏 들떠 있는데 나만 시리고 한 겨울이었다.


이젠 누가 나를 알까 숨죽인다고 했다. 그래서 하고자 했던 일 전부 하기 싫어졌다고. 아이패드는 동생을 빌려줘버렸고 학생 때부터 꾸준했던 그림 그리기를 완전히 손놓았다. 책도 읽지 않는다. 되려 모아둔 책을 가져다 중고 서점에 갖다 팔거나 버렸다. 꿈도 사라졌고 되고픈 것보다는 되지 않으리란 생각을 했다.


뭘 먹어도 잘 체한다. 여전히 약을 달고 살고 어쩌면 전보다 약을 찾는 횟수가 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으로 구원받을 수 없단 걸 알면서도 사람을 만나 시답잖은 얘기를 늘어놓았다. 사람이 제일 싫다면서도 그랬다. 매 순간 기록함과 동시에 기억하던 나는 더 이상 무엇도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하루가 끝나면 통째로 잊고 만다. 무기력하게 누워 마무리되기만을 기다렸다. 멀리. 가능한 아주아주 멀리 달아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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