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감정에도 유통기한이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시리얼을 담은 그릇을 빤히 바라보며 맥없는 손짓으로 숟가락을 빙글빙글 돌렸다. 기억들도 적정 기간이 지나면 잊히는 때가 잊는 걸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나 나도 모르게 응어리진 말들, 이따금 트라우마로 남아 괴롭히는 사건들도 있는 마당에 사랑도 그럴 수 있는 거 아닌가.
시간이 약이라고들 한다. 그 말마따나 효과가 있던 적도 아예 없진 않았다. 솔직히 옛 연인들도 절대 잊지 못할 거라 호언장담했으나,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자연스레 희미해졌다. 완벽히 지워지는 사랑은 없다 한들 전부 흐릿해져 ‘이때 이랬나?’싶을 정도로 긴가민가해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나 그렇게 되지 않으려나. 나름 호기롭게 말했다. 다 괜찮을 거라고, 나 없이도. 그 말을 내가 지키지 못하는 중 아닌가. 꼭 그러고 싶어서 했던 말 같다. 한껏 불안해하는 당신의 눈동자 앞에서 나 또한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솔직히 나야말로 정말이지 괜찮고 싶었다. 당신이 빠져나간 세상이 허물어지지 않기를 원했다. 더 이상 무언가에도 연연하지 않으려고. 무엇도 잃지 않고 지켜야 할 것들을 직시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게 바로 엊그제 일처럼 여겨지는데. 벌써부터 이럴 수가 있나. 얼마나 더 당해봐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으려나, 골몰했다.
물론 당신은 어떤 이들과 동일하지 않을 거였다.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였다. 믿어도 될 거라고 믿고 싶었다. 내가 당신을 실망시킬 일 없고 당신 역시 나를 무너지게 하지 않을 거라고. 다른 이들과는 진짜 다른 인간이라고. 무한한 신뢰를 하고 싶었다. 전부 다 꿈인 양, 나쁜 꿈을 꾼 것이라고 되뇌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짓은 이제 다신 할 일 없을 거라고 당신을 통해 알고 싶었다.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다. 아니 또 틀리면 어떠한가, 갈팡질팡하던 사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서 너무나도 선명했던,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귀결되던 찰나의 모든 순간들.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이 하루 중 대부분이 되었다.
의자를 끌며 일어나 싱크대 안에 시리얼을 죄다 쏟아부었다. 우유와 시리얼 알갱이들이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울컥 울음이 차올랐다. 자리에 서서는, 한참을 진정할 수 없었다. 지울 수 있을까.
진심으로.
투명하게 좋아했는데.
가식 따윈 일절 허용되지 않는 마음이었는데.
보기 좋은 말과 행동으로 치장되지 않은,
오로지 순수한 사랑이었는데.
진짜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