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한 달에 얼마 버냐?”
명절 때가 되면 이런 질문을 하는 친척이 꼭 있다. 이런 질문은 유독 남자 보는 눈이 없어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고모의 남편, 즉 ‘이번 고모부’ 같은 사람에게서 듣게 되는데(내 고모부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예를 들면 그렇다는 겁니다, 에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여 나도 모르게 수입을 공개하고 나면 그는 금세 나에게 흥미를 잃고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뭐지?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왠지 모를 패배감에 몸이 부르르 떨린다. 수입이 너무 적은 것 같아 조금 불려서 말한 터라 상처는 더욱 깊다.
땡땡땡! 어느새 시합은 끝나 있다. 링 위에 선지도 몰랐는데 이미 KO 당하고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비슷한 경험은 살면서 수도 없이 반복된다. 내가 원치도 않았고, 내가 잘하는 종목도 아닌데 느닷없이 경기는 시작되고 나에 대한 평가가 내려진다. 참 서글픈 일이다.
사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남들의 평가에 패배감을 느낀다는 건 나 역시 그걸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일 거다. 어쩌면 나부터가 간절히 원하는 부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가지지 못했고, 겉으론 그것이 없어도 괜찮은 척했지만, 남이 일깨워주자 패배감에 휩싸이는 것이다. 열등감. 승부는 이미 내 안에서 나 있었다고 봐야 한다. 열등감이 없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니까.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 기준으로 삼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사람에겐 여러 가지 면이 있지만 제일 비교하기 쉽고 눈에 띄는 것으로 평가는 이뤄진다. 재력, 외모, 학벌, 스펙…… 솔직히 나도 그런 기준들로 타인을 평가해왔음을 고백한다. 아주 오랫동안. 그러니 내가 그런 기준으로 평가받는데도 할 말은 없다. 다 자업자득인 셈이다.
“저는 측면이 더 괜찮아요. 정면 말고 제발 옆모습을 봐주세요!”라고 외치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 나부터가 남들의 측면을 보려 하지 않으면서 내 측면을 봐달라 하고 있으니 이처럼 한심한 작자가 있나. 정면으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면 나부터 남들을 그것으로 평가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그건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결국 타인을 향한 잣대는 돌고 돌아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므로. 그때 느낄 패배감은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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