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잠만영 Aug 13. 2021

처음 만들어 본 '달리기 모임' 월간 리뷰

지민이처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

최근에 용기를 좀 내어 모임을 하나 만들었다. 원래 나라면 모임에 참여는 해도 내가 직접 모임을 만들어 운영해 볼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내 안에 쭈구리고 앉아있던 적극적 자아가 고개를 든 것일까? 요새는 뭐가 됐든 주도적으로 하는걸 더 선호하는 편이다. 하필 이 타이밍에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은 십년 동안의 서울 생활을 잠시 접고 고향으로 다시 내려오는 삶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활 거처가 바뀌니 덩달아 마음도 새로워지고 새로운 사람들도 사귀고 싶어졌다.


활동적이면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임이 뭐 없을까 고민하다 달리기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같이 모여 뛰는 오프라인 모임이었기 때문에 가장 많이 신경쓰였던 부분은 당연히 방역이었고 그래서 철저히 마스크를 쓰고 네명 이하로만 함께 달렸다. 이렇게 모임의 호스트가 된 것은 인생 최초의 시도였기 때문에 운영에 대한 부담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한달만 시범적으로 운영해보고 모임 기간을 더 연장할지 말지는 나중에 정하자! 라고 미리 정해놓고 시작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소모임, 오픈채팅방, 당근마켓 등등 사람을 모집할 수 있는 몇 가지 플랫폼들이 떠올랐는데 그중 어떤 플랫폼으로 시작하면 좋을지 고민되었다. 예전에 독서모임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모임은 소모임 앱으로 운영을 했었다. 그때 모임장에게 들은 바로는 소모임에서 모임을 만들려면 일정 비용을 지불해야 된다고 했었다. 나는 일단 한달만 운영할 생각이었기에 소모임은 일단 제외시켜놓고 오픈채팅방과 당근, 둘 사이에서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동네 사람들과 하는 모임이고 소수로 운영할 생각이어서 당근에 모집공고를 올리게 되었다.


그리하야 당근마켓의 동네생활에 생애 첫 달리기 모임을 그랜드 오픈했는데 생각보다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았다. 채팅방에 누군가가 들어오면 '오! 들어왔다!' 하며 신기해하고 반대로 나가면 '어?어...' 하며 살짝 실망하는 감정기복을 한동안 반복적으로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되도록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모습에 서운해하지 않고 태연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이런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별 다섯개를 주고 싶을만큼 좋았다.


가장 긴장되고 떨리는 모임 첫날이 왔다. 만나자마자 뛰는 건 너무 어색하지 않을까 싶어 약속 장소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보기로 했다. 서로 얼굴을 모르니 약속시간이 다가올수록 더 초조하고 예민하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왠지 저 분일 것 같다는 직감에 쭈뼛쭈뼛 다가갔다. 혹시.. 당근? ~님? 이라고 묻자 그쪽에서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첫 달리기가 시작됐다. 우리는 1분 뛰고 1분 30초 쉬는 것을 5세트 반복하는 시퀀스로 해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뛰려니.. 모래 주머니를 찬 것 마냥 다리가 무겁게 느껴졌다. 겨우 1분씩 뛰는 건데도 뭐이리 힘든지.. 혼자 뛰었다면 분명 도중에 포기하고 그냥 걸었을 것이다. 최근들어 가장 숨가쁘게 심장이 요동치는 걸 느꼈다. 마스크 안은 작은 한증막이라도 된 것처럼 금새 뜨거운 열기로 가득찼다. 인중에도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게 느껴졌다. 입으로 숨을 들이킬때마다 일회용 마스크가 입술에 붙었다 떨어졌다. 길은 어느새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날파리가 한두마리씩 눈 앞에서 알짱대길래 무심코 팔을 휙휙 저었는데, 움직이는 팔 동선따라 날파리들이 다다다닥 피부에 부딪치는 게 느껴졌다. 예상 밖의 날파리 수에 화들짝 놀란 우리는 다시 왔던 길로 급턴하여 최대한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갔다(그 뒤로 한동안 그쪽으론 절대 가지 않았다는..ㅎㅎ). 그렇게 놀란 가슴 부여잡으며 우리들의 첫 달리기가 무사히 끝이 났다.

 

한 일주일 정도 셋이서 달리기를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걷고 뛰는 구간에 맞춰 스탑워치를 동작시켰다. 그러다보니 구간이 바뀔때마다 매번 스탑워치를 눌러줘야만 했다. 정신없이 뛰는 와중에 흔들리는 액정을 부여잡으며 땀난 손으로 스탑워치를 누르는 것은 의외로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비슷한 시기에 새롭게 참여하게 된 달리기 인증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런데이 앱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 앱을 알게된 것은 정말 신의 한수였던 것 같다. 앱에는 이미 검증된 운동코스들이 내장되어 있었고 운동 횟수가 거듭될수록 점진적으로 운동 강도를 높여주는 방식이었다. 분명 힘든건 맞는데 그래도 버틸만한 수준으로 꾸준히 난이도를 올려주니깐 그냥 믿고 따라하다보면 한번에 달릴 수 있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하게된다. 이 앱은 언제부터 우리가 뛰어야되고 걸어야되는지를 음성으로 알려줬다. 그 덕에 나는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쿨다운까지 다 끝나고나면 운동 코스나 시간, 거리, 속도 등등 운동했던 정보들이 자동으로 앱에 기록 됐고 그날 찍은 예쁜 사진과 함께 운동 기록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



모임을 운영하면서 가장 신선하고 흥미로웠던 경험은 방장이라는 포지션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교감하고 그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겪어본 결과 대체로 사람들은 부끄럼이 많은 것 같았다. 채팅방에 들어오고 낯선이들과 대화하고 그리고 실재로 모임에 나오기까지 사람 성향에 따라 각 단계마다 크고 작은 용기가 필요한 듯 보였다. 


우리 채팅방에는 총 8명의 멤버들이 있었는데 그중 4명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유령회원들이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들어왔다 나간 사람들도 꽤 있었다. 맨 처음에 채팅방에 들어온 사람은 말도 많고 '모집안되면 둘이라도 하죠' 라고 할정도로 열정적이어서 당연히 자주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거의 참여하지 못했고 결국 어느날 보니 방을 나가 있었다.


또 가끔 당일 참석한다고 했다가 급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중 최고봉은 만나기 30분 전에, 시간되니깐 나가기 귀찮아졌다며 저는 패배자인가봐여 라는 글을 남기고 갑자기 방을 떠난 경우였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멤버들이 이건 뭐지? 하는 반응들을 보이며 잠시 톡방이 뜨거워졌다. 나도 처음에는 맥락없는 그의 변심에 황당했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그 마음이 이해됐다. 일전에 본인이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떠올랐다. 막상 모르는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니 긴장감이 밀려와 도망쳐버리고 싶었던게 아닐까.


약속한 한달이 다다를 무렵 조용히 지켜만 보던 멤버 한 명이 용기가 생겼는지 나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오겠다고 하고 불발된 경우가 종종있어 큰 기대는 안했는데 정말로 약속한 시간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날은 다른 멤버들이 못나와 둘이서만 뛰었는데도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고 재밌었다. 또 한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매일 달리기를 하다보니 그날 그날 나오는 멤버 구성이 달라졌다. 자칫 뻔한 하루일과로 전락하기 쉬운 매일 저녁 달리기는 오히려 이런 변동성으로 인해 늘 새로운 데일리 이벤트로 다가왔다.


모임을 운영하면서 톡방에서 가장 많이 썼던 말이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 였다. 나는 멤버들이 참여에 대한 부담으로 달리기 활동을 숙제처럼 느끼질 않길 바랐다. 모임에 참석하기위해 어렵게 용기를 낸 사람들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되도록이면 멤버들이 우리 모임을 편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달리기 모임 활동을 한 7월은 장마철로 인해 한동안 비가 많이왔다. 날씨가 이래서 모임을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만하면 나와서 함께하려는 멤버들이 있었기에 모임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가끔은 방장인 내가 불참하더라도 다른 멤버들끼리 만나 뛰기도 했다. 활동 멤버는 소수였지만 소수여서 더 좋았던 점들도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운동하러 나가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는데 마지막 주에는 처음 목표했던 것처럼 매일 쉬지 않고 운동하러 나갔다. 런데이 앱 달력에 운동 인증 도장이 찍혀나가는 걸 보면서 아주 흐뭇해했다.



약속한 한달이 다 되어갈쯤 멤버들에게 우리 모임을 계속 이어나가는게 좋을지 물어봤다. 모두들 모임이 이대로 끝나면 아쉬울 것 같다고 얘기해줬다. 멤버들이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실은 나도 많이 아쉬울 것 같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큰 고민없이 모임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연장을 결정하면서 모임을 좀 더 확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근마켓은 모임을 확장하고 지속적으로 운영하기에는 여러가지로 불편한 부분들이 많은 플랫폼이었다. 그래서 이번달부터 오픈채팅방에 우리모임의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기존에 활동했던 멤버들은 이사 첫날 모두 새로운 둥지로 무사히 안착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익숙한 닉네임의 누군가가 톡방에 들어왔는데 나는 보자마자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바로 당근시절부터 함께했던 유령 멤버 중 한명이었다. 아주 가끔 '그래도 꾸준히 열심히 하시네요' 와 같은 응원의 메세지를 툭 던지고 사라지는 멤버였다. 모임 마지막날 당근 채팅창에 그동안 우리 모임에 참여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제 우리 모임은 오픈채팅방으로 이사합니다 라는 공지를 남겼었다. 그때도 그가 응원의 이모티콘을 보내줬는데 마침 다른 멤버가 그걸 보고 '~님두 오세요' 라고 한 것이다. 그 순간 나도 뭔가 그에게 용기를 주고싶다는 생각이 불끈들어, '~님 눈팅만 해도 괜찮으니 부담갖지 말고 넘어오셔두돼요' 라고 용기내어 말을 꺼냈는데, 알고보니 그 말에 힘입어 넘어온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둥지에 다시 나타난 그를 보니 더더욱 반가웠다. 그리고 왜 그가 그동안 모임에 참석을 못했는지 알게되었다. 최근에 부상을 당해 현재 재활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재활이 끝나기 전까지는 달리기 모임에 나올 수 없지만 달리기를 좋아해 우리 모임에 들어와 봤던 것이다. 그 사정을 알고나니 더욱 그가 궁금해지고 한편으론 고맙고 기뻤다. 


그의 서프라이즈 등장 덕에 한층 더 기분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병아리 방장의 행보는 한동안 더 이어질 전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바꾸는게 어렵다면 차라리 나를 유혹해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