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이처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
모임을 운영하면서 가장 신선하고 흥미로웠던 경험은 방장이라는 포지션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교감하고 그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동안 겪어본 결과 대체로 사람들은 부끄럼이 많은 것 같았다. 채팅방에 들어오고 낯선이들과 대화하고 그리고 실재로 모임에 나오기까지 사람 성향에 따라 각 단계마다 크고 작은 용기가 필요한 듯 보였다.
우리 채팅방에는 총 8명의 멤버들이 있었는데 그중 4명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유령회원들이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들어왔다 나간 사람들도 꽤 있었다. 맨 처음에 채팅방에 들어온 사람은 말도 많고 '모집안되면 둘이라도 하죠' 라고 할정도로 열정적이어서 당연히 자주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거의 참여하지 못했고 결국 어느날 보니 방을 나가 있었다.
또 가끔 당일 참석한다고 했다가 급 취소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중 최고봉은 만나기 30분 전에, 시간되니깐 나가기 귀찮아졌다며 저는 패배자인가봐여 라는 글을 남기고 갑자기 방을 떠난 경우였다. 그 모습을 보며 다른 멤버들이 이건 뭐지? 하는 반응들을 보이며 잠시 톡방이 뜨거워졌다. 나도 처음에는 맥락없는 그의 변심에 황당했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니 그 마음이 이해됐다. 일전에 본인이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밝힌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떠올랐다. 막상 모르는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 다가오니 긴장감이 밀려와 도망쳐버리고 싶었던게 아닐까.
약속한 한달이 다다를 무렵 조용히 지켜만 보던 멤버 한 명이 용기가 생겼는지 나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나오겠다고 하고 불발된 경우가 종종있어 큰 기대는 안했는데 정말로 약속한 시간에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날은 다른 멤버들이 못나와 둘이서만 뛰었는데도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고 재밌었다. 또 한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매일 달리기를 하다보니 그날 그날 나오는 멤버 구성이 달라졌다. 자칫 뻔한 하루일과로 전락하기 쉬운 매일 저녁 달리기는 오히려 이런 변동성으로 인해 늘 새로운 데일리 이벤트로 다가왔다.
모임을 운영하면서 톡방에서 가장 많이 썼던 말이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하세요' 였다. 나는 멤버들이 참여에 대한 부담으로 달리기 활동을 숙제처럼 느끼질 않길 바랐다. 모임에 참석하기위해 어렵게 용기를 낸 사람들도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되도록이면 멤버들이 우리 모임을 편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
달리기 모임 활동을 한 7월은 장마철로 인해 한동안 비가 많이왔다. 날씨가 이래서 모임을 지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만하면 나와서 함께하려는 멤버들이 있었기에 모임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 가끔은 방장인 내가 불참하더라도 다른 멤버들끼리 만나 뛰기도 했다. 활동 멤버는 소수였지만 소수여서 더 좋았던 점들도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운동하러 나가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는데 마지막 주에는 처음 목표했던 것처럼 매일 쉬지 않고 운동하러 나갔다. 런데이 앱 달력에 운동 인증 도장이 찍혀나가는 걸 보면서 아주 흐뭇해했다.
약속한 한달이 다 되어갈쯤 멤버들에게 우리 모임을 계속 이어나가는게 좋을지 물어봤다. 모두들 모임이 이대로 끝나면 아쉬울 것 같다고 얘기해줬다. 멤버들이 그렇게 말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실은 나도 많이 아쉬울 것 같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큰 고민없이 모임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연장을 결정하면서 모임을 좀 더 확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근마켓은 모임을 확장하고 지속적으로 운영하기에는 여러가지로 불편한 부분들이 많은 플랫폼이었다. 그래서 이번달부터 오픈채팅방에 우리모임의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기존에 활동했던 멤버들은 이사 첫날 모두 새로운 둥지로 무사히 안착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익숙한 닉네임의 누군가가 톡방에 들어왔는데 나는 보자마자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바로 당근시절부터 함께했던 유령 멤버 중 한명이었다. 아주 가끔 '그래도 꾸준히 열심히 하시네요' 와 같은 응원의 메세지를 툭 던지고 사라지는 멤버였다. 모임 마지막날 당근 채팅창에 그동안 우리 모임에 참여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이제 우리 모임은 오픈채팅방으로 이사합니다 라는 공지를 남겼었다. 그때도 그가 응원의 이모티콘을 보내줬는데 마침 다른 멤버가 그걸 보고 '~님두 오세요' 라고 한 것이다. 그 순간 나도 뭔가 그에게 용기를 주고싶다는 생각이 불끈들어, '~님 눈팅만 해도 괜찮으니 부담갖지 말고 넘어오셔두돼요' 라고 용기내어 말을 꺼냈는데, 알고보니 그 말에 힘입어 넘어온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새로운 둥지에 다시 나타난 그를 보니 더더욱 반가웠다. 그리고 왜 그가 그동안 모임에 참석을 못했는지 알게되었다. 최근에 부상을 당해 현재 재활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재활이 끝나기 전까지는 달리기 모임에 나올 수 없지만 달리기를 좋아해 우리 모임에 들어와 봤던 것이다. 그 사정을 알고나니 더욱 그가 궁금해지고 한편으론 고맙고 기뻤다.
그의 서프라이즈 등장 덕에 한층 더 기분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병아리 방장의 행보는 한동안 더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