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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닥터 Feb 14. 2021

호모코르

                 
  우리 인류를 이름 짓는 용어 중에 호모사피엔스는 생각하는 인간이란 의미이다. 현생인류는 사고능력으로 도구를 사용하여 다른 유인원을 궤멸시켰고 수많은 생물 종을 없애고 지배하며 지구의 최종 포식자, 호모 데우스(神이 된 인간)가 되었다. 생각이 지나쳐서 병에 이른 분들을 정신과 의사로서 보고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이성적인 인간인 동시에 생각에 눌리고 갇힌 사람일 수도 있다. 2019년에는 집착을 줄일 수 없는 병인 강박증 환자가 크게 늘었다. 나 또한 생각을 줄이려고 애쓰는데 생각이 너무 많은 분이 찾아온다.

  대기명단에서 그분의 이름을 보자 나도 모르게 책상의 물건이 정돈되어 있는지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들어와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그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가. 이전의 그녀는 들어오면 진료책상 위를 살펴보고 명함 중 삐죽 나와 있는 것을 밀어 넣는 등 정렬되지 못한 상태를 견디지 못했었다. 이 미시즈 강박은 두 아이와 남편의 청결하지 못한 행동에 짜증 내고 분개했었다. 그 손과 옷에 더러운 세균이 득실거리는 것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다소 나아졌다.


  강박증은 원치 않는 생각과 행동이 반복되는 불안증이다. 청결함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보여 결벽증세도 있다. 더럽다는 느낌을 견딜 수 없어 계속 씻어대니 손이 만성습진 상태이다. “이 정도면 깨끗해, 내일 또 할 거니까 쉬어도 돼, ”,라는 합리적인 마음이 고개를 들지만, 불안과 찝찝함이라는 철퇴에 바로 꼬리를 내리며 그녀의 손은 청소기를 잡는다. 이번이 네 번째로 공시에 도전하는 다른 여성은 절박한 상황인데 공부를 못하겠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뇌리에 길에서 언뜻 들었던 음악 한 소절이 종일 반복되며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멈추지 않는​ 생각과 그칠 수 없는 확인 행동을 하는 이 강박 불안증은 호모사피엔스의 어두운 얼굴이다.


  그녀는 나아지다가 더 진전되지 않았고 정체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약물과 증세 상담 이외에 교감과 라포가 깊어져야 치유에 이른다. 의사-환자의 치유적 교감은 벽에 막힌 느낌이었다. 이분은 대개의 강박증 환자가 그렇듯이 치열한 생각이 감정을 둘러싸고 있었다. 감정이 굳어 있으니 냉정하고 정확하기만 한 호모사피엔스이다. 그 차가운 벽을 녹이려고 노력해왔으나 마음을 열지 않아 고민이었다. 그러다 내가 분노가 치밀어 얼굴이 굳어질 때가 있었다. 가족이 사랑의 보금자리이면서 상처의 근원, 이라고 확신하는 나는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를 보면 미워져서 감정조절이 힘들다. 아이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를 듣는 동안 지어지던 내 표정을 그녀가 보았을 것이다. 이래저래 치료는 난관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녀가 나가면 강박의 틀에 갇혀 있느라 분노와 자책을 반복하는 이를 다독거려주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하였다. ​내 생각의 틀에 갇혀 치료자의 관용이 부족한 것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앉은 뒤 어떻게 지냈냐는 나의 인사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우리는 침묵했다. 그러다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 둘째에게 야단을 쳤어요. 제가 깨끗이 청소한 거실이 어질러진 것을 보자 아이를 심하게 혼냈어요. 그때 아이의 표정이 잊히지 않아요. 난 정말 나쁜 엄마예요.”
그래 당신은 나쁜 엄마가 맞아, 자신의 높은 기준에 따라오지 못하는 어린아이를 다그치다니, 엄마의 표독한 표정은 아이에게 평생 남을 수도 있는데, 하며 비난하는 마음이 불쑥 또 올라왔다. 하지만 반복하며 후회하는 이 패턴은 그녀 자신도 어쩔 수 없고 이것을 찾아 없애주는 것이 나의 일이다. 나쁜 엄마 패턴은 성장 과정에서 새겨지는 나쁜 유산이다. 뿌리 깊은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면 반복된다.
 

 난 그녀가 그동안 꺼리던 자세한 성장 과정을 말해주기를 부탁하고 기다렸다. 드디어 그녀는 털어놓았다. 아버진 철도공무원이셨는데 꼼꼼하고 과묵하며 자신의 고민만 안고 살면서 가족에 차가운 분이었다. 어머니는 직선적이며 감정 기복이 컸다. 이런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그녀는 성장했다. 부모의 충돌과 전쟁의 기억만 가득한 어린 시절이었다. 순종적인 언니와 달리 고집이 세던 그녀는 어머니와 각을 세우며 반항적이었다. 옛날을 떠 올리던 그녀는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라는 어머니의 말을 되새기며 펑펑 울었다. 아버지의 강박성을 그대로 받았고 엄마의 감정 기복을 닮았다며, 부모의 문제가 있는 성격을 물려받은 자신은 삶에 으르렁거리며 살아왔다고 했다.
  

그리 울고 난 이후로 우리 사이에 치료적 교감이 생겼고. 그녀는 내밀한 속내를 말하게 되었다. 항상 불안하였다고 한다. 초조 불안증은 청결하지 못하면 안절부절못하게 했고 수많은 걱정의 연기를 피워서 마음을 흐리게 한 것이다. 우리는 그녀 마음속 깊은 곳에 부모로부터 버려질 거라며 떠는 여자아이를 찾았다. 그 뒤 불안과 걱정에 끌려가지 말고 가만히 마음을 지켜보는 노력을 해 왔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다독거리며 진정하도록 집중하였다. 심장을 안정적으로 박동시키는 최고의 방법은 깊은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다. 강박적 생각의 연기가 밀려오면 복식호흡을 하며 심장도 나쁜 감정으로 날뛰지 않도록 조율했다. 곤두선 두뇌보다 심장으로 마음의 균형을 잡으려고 지금까지 애쓰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은 그녀가 부드럽고 밝아졌다며 너무 좋아하였다. 나 또한 흐뭇하다. 하지만 강박 불안이라는 양날의 칼이 또 그녀를 날 서게 하지 않을지 염려가 된다, 삶은 꽃길이 아니기에.

  고민하고 울고 웃는 내담자들은 생각이 많은 나를 안타깝게 하고 감동을 준다. 지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나 또한 생각으로 곤두선 삶보다 몰입하고 취하는 삶을 살아보리라. 이렇게 심장으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호모코르(cor=심장)란 신조어를 만들어 본다. 심장의 두근거림이 코러스(합창) 하는 화음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울산수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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