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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인드닥터 Feb 17. 2021

진료실 폭력

국화꽃 위에는 평소 사진을 캡쳐해서 급히 만든 듯이 희미한 그의 얼굴이 우리를 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난 어깨가 떨리고 울음이 터져 나와 꽃을 하나 그의 앞에 올려도 묵념할 수가 없었다. 유족은 고인의 몸에 모두 16군데의 자상이 있는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전해주었다. 

이 말은 웅성거리는 그 속에서 천둥소리처럼 들렸고 눈에 선배를 빼닮은 한 아이가 보였다. '그래 저 아이가 선배 아들이겠구나.' 늦게 결혼 후 득남하고 이혼한 후 노모를 모시고 아이와 살고 있었지. 충혈된 눈으로 울음을 참고 의젓하게 문상객을 맞고 있었다. 열네 살이다.


입원환자의 칼에 찔려 사망한 부산의 정신과 의사인 의국 선배에 문상을 온 것이었다. 살인자인 환자는 입원 생활에서 규칙을 지키지 않고 동료환자를 따돌림 시키며 약물을 거부하는 등 문제를 일으켜 원장인 고인이 퇴원을 권유한 터였다. 이에 앙심을 품고 자유로운 외출에서 칼을 사서 품고 들어온 것이었다.
우린 정신과 환자에 대한 사회의 편견을 바꾸기 위하여 노력해왔다. 정신과 환자들이 일반인구보다 난폭성의 비율이 높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을 괴롭히고 자기 세계에서 나오지 않기에 ​두려워 말고 혐오를 하지 마시라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수년간 몇몇 강력사건에서 범인의 조현병 등이 보도되면서 당황했다. 이 시대가 잔인해지고 이상해지니 그런 것이다.


선배의 죽음을 접한 동료 의사들은 병실운영을 포기해야겠다며 슬퍼하고, 진료 중 의사의 안전을 위해 '임세원 법'의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하였으며 고인을 기리는 추모위원회도 만들었다. 100병상 이하의 병원과 의원에는 안전지원이 열악하다. 이 사건 뒤 정부에서는 정신과 의사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모든 정신과 의원의 진료실에 비상벨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급박한 순간에 과연 경찰이 응급으로 출동해줄 수 있을까, 하는 회의의 목소리도 들린다.


선배가 다른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 환자를 붙잡고 나가지 못하게 한 것 같다는 유가족의 말을 듣고 의사자 청원을 하려 했다. 그러나 증거가 될 수 있는 CCTV 카메라가 진료실에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였다. 

나의 진료실로 돌아와 내담자를 진료하였다. 사건을 들은 환자분이 ”원장님, 조심하세요.”라고 했을 때 위로가 됨을 느끼며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고인은 카톡 상태 메시지에 "되는 일이 없다. 오늘도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더니 진료실에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갈수록 곤란해지는 병원경영의 문제는 국민 모두가 어려운 시국에서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병원에서의 폭력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 마음이 답답하다.


2019년 4월 복지부가 배포한 안전한 진료환경조성방안 자료에 나타난 경찰청범죄통계에 따르면 상해폭행협박사건 신고 건수가 의료기관 1514건, 지하철 303건, 피시방 409건으로 의료기관이 가장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발표 시점 기준 최근 3년간 병원급 370여 곳, 의원급 530여 곳에서 폭행 사건이 발생하였다. 의료진 폭행이 이뤄지면 대부분이 벌금형에 그치며 특별한 경우에만 징역판결이 나올 뿐이다.


험해지는 세상이지만 응급실이나 진료실에서 살인과 상해의 폭력이 안 되는 이유는 이곳이 무방비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청진기를 들고 가까이 다가가고 마음의 병의 사연을 듣기 위해 의사와 환자 둘만 있는 상황이다. 치료만을 생각하는 의사와 의료진은 뜻밖의 폭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어떤 형사는 환자가 다 환자가 아니라며 그들 속에 잠재적 범죄자나 전과자가 있으니 극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하였다. 

그러나 환자에게는 무조건 다가가는 것이 우리 의료진의 의무이다. 마음과 몸의 상처를 부여잡고 오는 그들의 품에 혹시 흉기가 들어있지 않는지 걱정해야 할까? 의심하며 신뢰를 깨는 치료적 관계는 싫다. 수십 년간 그들과 이어 온 의사-환자 관계가 멀어지는 건 맥이 빠지는 일이다. 폭력은 두렵지만, 보람이 무너지는 것은 더 무서운 일이다. 


(경상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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