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떤하루 Sep 24. 2023

가을아, 딱 기다려

오늘의 장면



화창한 가을날, 이번달은 꼭 출사를 나가겠다고 결심했던 것이 무색하게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20일이 훌쩍 지나버렸다. 내일부터 흐리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확인 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산책로로 목적지를 정하고 카메라의 먼지를 털어낸 후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누가 봐도 가을인 하늘. 뭉게구름이 아닌, 솜털이 날리는 듯한 구름. 투명한 햇살까지. 사람들이 왜 하늘도 안 보고, 사진도 안 찍고, 그냥 땅만 보고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걷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안 볼 수가 없는 풍경인데? 그렇게 도착한 산책로. 호기롭게 카메라 버튼을 on으로 돌리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찍으면서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역시나 결과물을 보니 엉망진창. 구도는 왜 이 모양이고, 도대체 뭘 찍으려 한건지 알 수도 없는 사진. 아무리 몇 년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걸 쉬었다고 해도 이정도라니. 사진을 찍은 세월이 얼마인데.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사진을 찍었다. 결혼 전에도 카메라가 가득한 환경에서 자라고 살아왔다. 아빠가 사진 찍는 걸 좋아하셔서 나의 어린시절은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겨져 있다. 사진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어린시절을 그렇게라도 다시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남동생 역시 한동안 사진에 푹 빠져 지냈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면 카메라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리고 바디도 렌즈도 계속 사게 된다. 문제는 금액이 만만치 않다는 것. 그래서 늘 다양한 바디와 렌즈들이 집에 있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또 새로운 것들이 생겨났다. 이런 환경에서 쭉 살아왔기에 나 역시 사진 찍는 것은 그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의 모든 시절이 사진으로 남아있듯 내 아이의 자라는 시간들도 남겨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이의 기록으로 시작된 사진 찍기는 아이가 자라며 대상이 풍경으로 바뀌었다.  사진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해줬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 들에도 관심을 갖게 해줬다. 잠시 잊고 지냈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주고, 좋아하고 사랑했던 그 순간들을 오래 간직할 수 있게 해줬다. 


집에 일이 생겨 한동안 카메라를 놓았던 시기. 오래 사진을 찍었지만 한번 놓으니 또 다시 손에 잡지 않게 되었고, 핸드폰 카메라가 점점 좋아지니 굳이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나가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어느 순간 카메라는 옷장 속 한구석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다가올 때면 항상 생각하고 다짐한다. 이번 가을에는 사진을 많이 찍겠다고. 카메라를 들고나가 가을을 한껏 담아오겠다고. 더 이상 카메라에 먼지가 쌓이게 두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만 하길 또 2년. 안되겠다 싶어, 카메라를 눈에 아주 잘 보이는 곳에 꺼내 두었고 오늘 아주 오랜만에 들고 나갔으나 오래 쉬었기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내가 어떤 구도를 좋아했었는지, 어떤 촬영모드로 찍는 걸 마음에 들어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났다. 마구잡이로 셔터를 눌러대니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래 쉬긴 했지만 이정도라고? 또 한가지, 커다란 핸드폰에 익숙해져서인지 카메라의 작은 뷰파인더가 너무 답답했다. 그 안에 담기는 풍경이야 다르지 않겠지만, 대상을 보고 뷰파인더에 담고 셔터를 누르기까지의 그 순간이 너무도 답답했다. 화면을 더 키우고 싶었다. 


이렇게 오늘의 출사는 막을 내렸다. 실망한 마음만 한가득 안은 채로. 누굴 탓 할 수도 없는 일이라 더 화가 났다. 그리고 또 한번 다짐 했다. 이번 가을에는 진짜, 진짜, 카메라 안에 가을을 최대한 담아보겠다고. 물론 눈에도 마음에도 담겠지만, 그 기록 역시 많이 남겨두겠다고. 꼭. 



작가의 이전글 다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