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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하루 Sep 28. 2023

비행기 조종사가 될거야

말 많은 말띠 아이의 말말말

"엄마. 세진이도 새처럼 날고 싶어." 

"저는 이담에 커서 비행기 조종사가 될거예요." 


어린이집에서 장래희망에 대해 배웠던 날, 세진이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부쩍 하늘을 날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더니. 울트라맨이 되고싶다던 녀석이 비행기 조종사로 옮겨갔으니 그나마 다행인건가?  뭐가 되든 좋으니 꼭 만족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뭘 하겠다 하든 다 응원해 줄 수 있으니.


-  2005년 9월 어느날의 기록.



하루가 멀다하고 장래희망이 바뀌던 시기였다. 어느날은 울트라맨이 되겠다고 했고, 또 어떤날은 기관사가 되고싶다고 했다. 화가가 되었던 날도, 작가가 되었던 날도 있었다. 과학자는 기본으로 거쳐갔고, 고생물 학자, 생명공학자가 되었던 날도 있었다.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의 꿈은 계속 계속 달라졌다. 


명절에 어른들이 많은 자리에서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한마디씩 보탠다. 


"작가 하면 굶어죽어"

"기관사보다 더 좋은 직업 많은데?"

"화가? 뭐먹고 살라고?"


이제 겨우 다섯살짜리 아이에게,  심지어 울트라맨이 되겠다고도 하는 아이에게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루어질 못할 꿈일지언정 그냥 응원을 해주면 안되었을까? 알아듣지도 못할 아이에게 부정적인 이야기를 해야만 했던걸까?


나만큼은 아이의 꿈을 지지해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내가 하고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을 아이는 다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아닌, 아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고 응원해주고 싶었다. 


중학교 2학년, 아이가 말했다. 

"나 특성화고등학교 갈래. 인문계 가서 필요도 없는 공부 하느니 일찌감치 내가 하고싶은 공부 할래"


학교를 알아보고, 입학설명회를 다녀오고, 아이가 학교를 결정했다. 성적이 좋아야 갈 수 있는 곳이다보니 아이는 안하던 공부를 바짝 해서 성적을 올렸고 면접까지 통과 후 원하던 학교에 합격하고 입학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이 진도가 너무 빨라서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어.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대학졸업장 필요 없으니까 대학 안갈꺼야. 대학 안갈꺼니까 내신도 그냥 신경 안쓸게." 


내신은 포기하고. 3D를 배우기 위한 학원만 등록해서 다녔다. 하지만 학원 역시 본인에게 잘 맞지 않았는지 시들시들, 진짜 어쩔수 없이 다니고 있음이 눈에 보였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특성화 고를 간다 했을 때도, 내신을 포기했을 때도, 큰돈 들여 보내는 학원을 대충 다닐때도 입다물고 있었다. 그동안 쭉 해왔던 말이 있기에.

"네 인생이니 네가 선택해서 해. 대신 그에 대한 책임도 네가 져야해." 


본인이 선택한대로 잘 보내고 성인이 된 아이는 취업 할 생각은 안하고 1년을 한숨을 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물었다.  왜 그렇게 살고 있는 건지. 


너무도 하고 싶었던 일이었고 그걸 하기 위해 시간을 보내왔는데 막상 해보니 본인의 적성에 너무 안맞는다고. 그래서 취업을 해서 일 할 자신도 없고 하고싶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그 말을 엄마에게 할 수는 없었다고. 


해봤으니 적성에 안맞는걸 알게 된거고 안해봤다면 여전히 그 꿈에 매달려 있을테니 빨리 깨달은게 다행이라 했다. 그럼 뭘 하고 싶냐고 물었다. 


"글 쓰고 싶어."


" 글 써. 쓰면 되지. 대신 밥벌이는 하면서 써."


아이는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열심히 벌면서 글을 쓰고 있다. 물론 엄마인 내 눈에는 여전히 게을러 보인다. 노력을 안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렇게 해서 될까 싶다. 하지만 지금도 입 꾹 다물고 있다. 본인의 선택이니 이후의 일들 또한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2005년, 아이의 말과 내가 했던 말들을 기록해둔 걸 보니 생각해왔던 대로  내가 잘 해왔구나 싶어서 다행이었다. 아이가 자라면서 많은 변수들이 생기지만 그래도 내가 아이를 키우면서 꼭 가져가고 싶었던 생각이나 가치관들은 잘 지키고 있는 듯 해서. 


이제 겨우 20대 초반이니 아이의 꿈은 또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나 역시 이 나이가 되도 갈팡질팡인데 당연한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많이 바뀌고, 많은 것을 더 해봤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경험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무얼 하든, 뭐가 되든, 꼭 행복할 수 있는 것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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