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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슬비 Sep 01. 2020

내가 좋아하는 카레 집

나는 카레를 좋아한다. 엄마가 한 솥으로 해주는 노란 카레도 좋아하고 일본식 스타일인 갈색 카레도 좋아한다. 그런데 친구 중엔 돈 주고 카레를 사 먹는 것을 아까워하는 친구가 있다. 3분 카레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굳이 만원 가까이 주고 사 먹는 것이 아깝다고 했다. 요리사가 직업인만큼 그녀는 음식에 관한 원가계산이 빠르다.


그런 그녀가 들으면 놀랄만한 이야기가 있다. 나에겐 단골처럼 드나드는 카레집이 있다. 이곳 ‘닌자카레’는 카레가 한 상으로 나오는 12,000원짜리 단일메뉴만을 판매한다. 매일 새벽장을 보는 주인장의 장바구니 사정에 따라 카레는 비프카레가 되기도, 돈카츠카레가 되기도, 새우튀김 카레가 되기도 한다.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주인장의 요리 철학 인 듯 싶다. 덕분에 오늘은 어떤 카레가 나올지 기대하며 늘 신선한 카레를 먹는다.


내가 이 집을 자주 가는 이유는 카레가 맛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카레만큼이나 이 가게의 공간을 좋아한다. 가게 안은 주인장이 좋아하는 것으로 추측되는 만화 포스터, 일본 LP판, 장난감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손으로 직접 쓴 메뉴안내와 여행 중에 사용한 것으로 추측되는 일본 영수증이 벽면 곳곳에 붙여있다. 요리에 자신만의 철학이 있듯이 공간도 본인의 손길을 타지 않으면 안 되는 주인장의 세심함이 엿보였다. 이 가게는 주인장을 그대로 드러내는 곳이었다.


나는 주인장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계산대가 주방 바로 앞에 있을 정도로 그는 주방을 나오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 공간을 통해 주인장을 마주한다. 그리곤 주인장은 이렇게 말은 건네는 것 같다.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데, 너는 무엇을 좋아해? 너는 어떤 사람이야?” 카레를 먹으며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떠올려본다. 내게 공간이 생긴다면 그곳은 무엇으로 채워 넣을까. 더 나아가 나의 삶에도 좋아하는 업과 취향들로 채울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이런 생각은 상상만으로도 내 자신을 충만하게 한다. 카레 집을 나서면 배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충만해진다.


좋은 음식점엔 ‘가성비’, ‘서비스’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하지만 입맛과 허기진 배만 가성비로 채우는 음식점은 내겐 100점짜리 음식점이 아니다. 허기는 때때로 정신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할 때도 발생한다. 음식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기짐까지도 충만하게 해주는 곳이 나에겐 100점짜리 음식점이다. 바쁘게 사느라 내 자신이 무엇으로 채워져 가는지 알 수 없는 날이 있다. 배도 마음도 허기진 날엔 닌자카레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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