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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J K직장녀 May 09. 2023

여러분 이건 절대로 슬픈일이 아닙니다

나의 애도일지 0편

나의 애도일지를 시작하며

이것은 자전적 소설이다. 내가 경험하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하여 구성한 허구이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상상에 맡기고 싶다. 외롭고 긴 터널같은 시간이 있었고, 이후에 별거를 하고 홀로 지내며 어느 소설의 제목과도 같은 아주 시끄럽지만 고독한 시간을 보냈다. 그 속에 다양한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했으며 나는 뭐든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아는 지극한 경험주의자기에 그 모든 경험에서 나름대로의 깨달음과 소득을 스스로 연결지었다. 모든 경험에는 정말 그 나름대로의 배움이 있었다.


그것들은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이 사라졌음에 슬퍼하고 절망하고 별거를 하고 이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겪은 상실감과 외로움 동시에 자유로움, 또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까지, 이 모든 것은 내 젊음과 그 젊은 시간에 바쳐진 결혼 생활에 대한 애도였고 나는 가장 춥고 길었던 이 겨울부터 어떤 기간을 애도 기간으로 지정했다. 아니, 지정해야만 끝도 있을 것 같아 애도 기간으로 부르기로 했다.


현재에도 애도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제 많이 쌓인 감정이 해소되었고 잦아드는 느낌이다. 동시에 프랑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나는 그녀를 우스개소리로 친구들과 진짜 ’난년‘이라고 부르곤 하는데)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 ’단순한 열정‘과 그 시기의 일기를 기반으로 한 ’탐닉‘을 접하게 되었다. 그렇게 과감한 글을 쓴 그녀가 나에게 글쓰기의 열망을 주었음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 그녀처럼 이 애도기간의 디테일이 희미해지기 전에 반드시 글로 남기고 싶었다.


법적 서류 정리가 끝나고 한달즈음 지난 어느 날, 반년 가량의 시간동안 늘 가장 큰 지지가 되어줬던 친구 둘과 마지막으로 결혼 당시 남편이 선물해 주었던 스와로브스키가 전체에 고루 박힌 수제 드레스와 웨딩 슈즈를 신고 의미 있는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 샴페인을 터트리며 이혼 파티를 했다. 나름대로 ‘정말로’ 법적으로 그리고 글자로 정리하고 확인한 것 뿐 만 아니라 나 스스로 마음에 와닿게 정리하기 위한 의식적인 세레머니였다. 그러고 심호흡을 한 후 SNS에 업로드 버튼을 눌렀다. 사진 속 나는 매우 자유롭고 행복해보였다.  


이것은 우리에게 결코 슬픈일만은 아니기에, 어쩌면 나중에 70세가 되었을 때쯤 그저 찐한 연애 정도로 기억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으로 남기고 싶기에 부정하고 싶지도 않으며 직접 이야기하고 싶었다. 실제로 좋은 사이로 마지막을 마무리 하기 위해 우리는 치열하게 노력했으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가정 법원에서 다정하게 서로를 위로하는 부부는 우리 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데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지만 탈고하는 데에는 2개월이 넘게 걸렸다. 그 동안 소용돌이 같은 감정의 변화가 늘 함께했기에 그에 따라 수정하고 또 수정했다. 글을 올리고 나자마자 그는 연락이 왔고, 너무 당신 답게 당신 스타일대로 마무리를 한 것 같아 좋다고 했으니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참 이상한 날이었다.

오랜 시간 생각하고 떨어져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그동안 서로가 수없이 외쳤던 끝을 마침내 확인받는다는 것. 선고는 7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난생 처음인 그리고 앞으로 없을 생경한 느낌에도 우리는 처음으로 비슷한 마음으로 각자 흩어졌다. 우린 가족보다 가까운 사이였음과 동시에 가장 먼 사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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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무겁지만 마냥 무겁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짧은 연애를 포함한 6년의 시간을 종료했습니다. 별거 후 지난 4달은 인생에서 가장 춥고 긴 겨울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성적으로 결정했다고 생각했었고 이후에는 세상이 무너진 듯 서럽게 울었으며 또 마침내는 서로를 처음으로 이해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홀로 지낼 곳을 찾으면서는 이제 다시 혼자라는 것이 실감이 나서 참 쓸쓸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봄은 왔고 끝과 시작도 함께 왔습니다.


결혼 생활은 때때로 소소하게 행복했습니다. 우리의 여행은 늘 다채롭고 반짝거렸으며 순간순간의 사랑도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시간 함께가 아닌 각자의 방법대로 노력을 했고 그 방식과 기대는 그저 너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27살의 어린 저로 돌아간다 해도 동일한 선택을 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겪지 않았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기에 후회와 부정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이후에 반드시 행복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평온하고 편안하기 위해 이기적일지라도 각자와의 관계만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런 그와 제가 정말로 그렇게 평안하길 바랍니다.


지난 2018년 화창하고 아름다운 가을날 여의도 63빌딩을 찾아 저와 남편을 축복해주셨던 모든 분들, 그 동안 부부로서 연을 맺고 소중한 시간을 공유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사실 변한 것은 거의 없어요!

저는 여전히 여러분이 아시는 바로 그 햇살처럼 밝은 사람, 때론 너무 급하고 불같아 상대를 놀래키곤 하지만 알고보면 엄청난 츤데레인 사람, 맥주 한잔이면 다운된 기분이 풀려 아이처럼 웃고 마는 그런 사람으로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앞으론 저의 견고했던 틀을 깨고 몰랑몰랑한 사람이 되는 것이 소망이자 목표입니다. 그러니 우리 언제라도 웃으면서 만날 수 있음 좋겠습니다. 저는 잠깐 쉬러 가요. 이후에 언제라도 서울에서 가볍게 연락주셔요.


- SNS에 올린 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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