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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TJ K직장녀 May 17. 2023

알코올과 요가, 걷기의 삼각관계

나의 애도일지 3편

지독하게 불편한 동거와 낯설고 편안한 별거가 계속된 12월 내내 나의 머릿속은 별의별 생각으로 가득 차 잠을 이루지 못하곤 했다. 기질 상 내가 결정한 사안에 대한 모든 디테일을 다 알고 있다 확신하고 계획하고 그렇게 완벽하였다 생각해야 직성이 풀리곤 하는데, 어느 것 하나 명확하거나 손에 잡히는 것이 없으니 불안하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또 이미 오랜 시간 외로움과 의문으로 다져진 가슴은 날이 갈수록 더욱 답답해지기만 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가장 쉬운 방법인 알코올을 찾았다. 혼자 있을 때면 술을 마시고 취하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미쳐버릴 것 같은 날들이었다. 술은 강력한 수면제여서 술에 취해 잠을 이루면, 새벽 5~6시경 강력한 수면 효과가 다한 탓에 깨곤 하여 무수한 후회와 더불어 낮에는 더 피곤한 날들이 지속되었다.


나는 술을 좋아한다. 중독되기 쉬운 것들은 언제나 매력적이지 않은가. 어른이 되고서 술을 늘 좋아해 왔고 또 꽤나 잘 마시니 아니 마실수가 있는가. 맥주와 와인의 세계에 빠지는 것도 재미있고 무언가 예술적이라고 느끼곤 했다. 또 내 사람들과 양질의 시간을 보내며 에너지를 얻는 편이기에 술자리도 좋아라 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술을 가장 가까운 사람과 함께 즐기고 싶었는데, 남편은 애석하게도 술을 마시면 분해를 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결혼 이후 내가 마시는 술은 종종 문제가 되었고, 나는 그런 술을 좋아하면서도 내 모습을 남편이 미워하니 나마저도 그런 나를 미워하게 되었다. 연애하기 전에는 내가 그를 불러놓고 생맥주 500cc를 원샷하는 모습을 보고 반했다더니,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다니 그게 억울했다. 그는 내가 만취하는 것과 함께 반주하는 것을 싫어했고, 점점 집에서 홀로 마시는 '혼술'의 시간이 늘어갔다. '혼술'이 알코올 중독의 지름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이었다. 일주일에 약속과 혼술을 합쳐 4번 이상 술을 마시는 날들도 있었고 그런 나를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외로워서 내가 술을 마시는 건지 술이 내 외로움을 만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도 술 마시는 나를 비난하며 줄곧 ‘끊는다 끊는다’ 말만 하던 담배를 피워대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지금 우리가 오랜 시간 서로를 이해 못 한다고 외쳐대고만 있었던 시간을 되짚어본다.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나는 유일하게 내가 무식하게 잘하고 몰두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다. 그것은 '요가'와 '걷기'였는데,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이 모든 시간을 절대 지나오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후에 상담 선생님은 내가 본능적으로 어떻게든 살길을 찾기 위해 내 나름대로 애를 써서 이러한 것들을 해 온 것 같다고 하셨다. '요가'와 '걷기'의 가장 큰 공통점은 '현재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는 따라서 동시에 깊은 명상이기도 하다. 나는 대학을 졸업할 즈음부터 힘이 들 때면 제주도에 내려가 무작정 걷곤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제주도와 부속섬을 합쳐 약 500킬로미터 올레길을 2번이나 걸어서 완주한 베테랑 올레꾼이 되었다. 걷다 보면 실타래처럼 꼬이고 쌓인 생각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현재에 자연스레 집중하게 된다. 요가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부터 나는 공부는 줄곧 잘했는데 운동신경이 없어서 체육은 늘 양가양가였다. 그런데 요가는 달랐다. 잘하진 못했지만, 압구정에서 제대로 된 요가 수업을 한 달 즈음 들었을 때였나, 직감적으로 느낌이 왔다.


"아, 이건 내가 평생 할 수 있겠구나."


요가는 그렇게 뭐든지 쉽게 실증을 느끼곤 하는 내가 평생 하고 싶은 몇 안 되는 일이 되었다. 수련을 할 때면 오로지 수련을 하는 순간의 호흡과 동작 그리고 나의 내면과 이 순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특히 아쉬탕가 요가의 우짜이 호흡과 하타 요가 특유의 후굴은 내 가슴을 펴 주어 오로지 그 순간만큼은 하루 24시간 중 유일하게 가슴이 답답하지 않다고 여겼다. 나의 증상과 병명은 늘 화병에 가까웠다. 겉으로 보기엔 누군들 부러워할 내 결혼 생활이 실제론 늘 불행하고 외롭다고 여겨온 한 즈음부터는 가슴의 갑갑증이 더욱 심해져 종일 가슴을 주먹으로 치거나 한숨을 쉬곤 했는데, 그런 내게 요가는 구원이었다. 또 요가에 매료된 것은 수련은 오로지 나와의 싸움이지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었다. 도반들과 한 공간에서 호흡하지만, 그저 어제보다 조금 달라지고 나아지는 나에게 집중하고 그런 나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의미이냐면 현대사회의 내가 이 차가운 도시 서울에서 너무도 작은 것조차 쉽게 이루어내는 것이 거의 없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힘들고, 벌써 실패작이 되어버린 내 결혼과 사랑을 이미 깨닫고 슬피 바라보는 내게 하루 중 유일하게 어제보다 나은 나를 '성취'하는 시간이었다.


'선생님, 가슴이 답답해서 미쳐버릴 것 같아요. 도대체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선생님은 간단하게 말씀하시곤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그리고 과거에 대해 곱씹는 생각들 대신에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 내겐 유일한 처방이라고. 머릿속에 온통 가득 찬 의문과 후회의 덩어리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답도 없는 시나리오를 짜고 또 짜는 생각만 순간 내려놓아도 답답함이 덜어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생에 가장 길고 추운 이 겨울 내내 눈이 오든 바람이 불든 손이 얼어 터질 것 같아도 무식하게 서울 고등학교 운동장을 반복적으로 걷고 방배동 일대를 배회하고 또 그 길로 7~80분씩 수련을 하고 돌아가 혼자만의 집에서 곯아떨어지곤 했다. 저녁은 오로지 걷기와 요가 수련으로 가득 찼다. 그게 내 유일한 생존방식이었다.  


후에 개인 상담을 하던 중 내 삶의 구원으로 시작해 이제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된 환갑이 넘으신 이 상담 선생님은 나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자기애'라고 했다. 인간이 힘든 일을 겪으면 보통 쉽게 포기하고 숨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용을 쓰는데 나는 언제나 늘 후자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호주로 떠나와 이 글을 쓰고 있는 행위에 내가 의미 부여를 하는 것 자체가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어떻게든 스스로를 치유해 보려고 노력하는 나의 자기애의 총집합적 결과물이다. 27살부터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아로새겨져 함께 해온 그와의 시간, 내게 타지인 서울은 그저 그로 가득했다. 설레는 연애와 사랑에 빠졌던 순간, 때때로 찬란했던 여행과 행복의 기억, 그리고 모두 재가 된 사랑의 감정과 가장 이뻤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지금은 때때로 실패로 여겨지는 별거와 이혼, 이 모든 것을 풀어내지 않으면 내가 도저히 내가 살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결코 이 긴 이야기의 끝을 못 맺을 것 같아서 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글쓰기는 내가 쓰면서도 놀라운 치유효과를 느낀다. 한 대목, 내 기억과 마음  저편 너머의 흩어져있거나 여러 모양으로 꼬여 있는 주제를 풀어 내고 나면 그 부분은 완전히 접어서 서랍에 넣고 보관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한장 한장 내 인생에 녹아든 그를 보내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시간이 지나 다른 삶을 살 때 다시 꺼내 볼 즈음이면 마치 다른 사람의 인생을 관찰하는 듯 그저 애잔하면서도 무심하기를. 나는 꼭 이렇게 해야만 한다. 나는 그냥 원래가 이런 사람이라, 그래서 더 그와 사는 동안 늘 혼자서 애를 써서 에너지가 고갈되고 스스로 힘들었기도 했겠다.


또 자기애의 비슷한 말은 이기심이기도 하다. 나는 언제나 이기적이어서 나 밖에 모르고 무슨 일이 생기면 그저 내 안위와 회복만 놓고 세상을 내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주변의 삶을 할퀴곤 했다. 그것은 때로는 부모였으며, 여동생이었고, 근 5년은 내 유일한 가족인 남편이었다. 그래서 '이기적인 자기애'로 가득 찬 내 확신에 찬 행동에 늘 착한 그는 많이도 질렸으리라. 참 웃기고 아이러니한 것이 인간은 정말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모든 일을 겪고 이혼을 한 지금에도 나는 또 같은 방식으로 대응 중이다. 이곳에서도 나는 바보같이 비를 맞으며 5킬로미터 떨어진 아울렛을 미친 사람처럼 생각에 빠져 걸어가기도 하고, 오전에는 혼자 야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요가 수련을 하고 또 저녁에는 쇼비뇽 블랑과 피노 누아를 따라 놓고 글을 쓴다. 이 요가, 걷기, 알코올의 삼각 컬래버레이션 없이도 가슴이 답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로지 나만 생각하고 나만 치유하고 애도해야 해서 그로 가득 찬 서울을 떠나와야만 했던 내가 그런 모든 환경적 장치 없이도 편안에 이를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며 내가 이겨내려고 애썼던 방식에 대한 서술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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