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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물 Nov 30. 2019

제주사람

우리가 겹친 점은 제주에 있었고

제주에 왜 혼자 왔냐 묻기에 그게 제일 중요했거든요, 답했다. 첫날은 하도 말을 안 했더니 입이 바짝바짝 말랐고 둘째 날은 모르는 사람 차를 타고 우도를 여행했다고, 그 사람이 나를 여기로 데려다줬다고 소상히 설명했다. 한은 남자 만나러 왔네~ 섣불리 능글거렸고 그게 이상하게도 무례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그저 웃으며 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한이 내 온 음식이 죄다 맛있었고 직접 손봤다는 집이 매력적이었으며 눈매와 턱수염이 마음에 들었기에 내 인심이 그 사람 한정으로 후해진 것이었다. 그 밤 한과 나는 끊임없이 얘기하고 편의점에 춤을 추듯 뛰어가 모자란 알콜을 보충하고 기타 치고 허밍 했다. 둘은 서둘러 우리로 엮여서 셋째 날과 예정에 없던 네닷째날은 그와 보내게 되었다.


한은 나를 귀여워하는 동시에 나이보다 어른스럽다 말했다.

그래서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요, 너처럼요. 한 마디 거들어 거드름을 피워보려다가 그간의 경험을 떠올리며 얌전히 말머리를 삼켰다. 대신 눈을 둥글게 굴려 웃는다든지 그의 눈썹에 키스하는 것으로 답했다.


한과 나 사이에는 제주가 있었다. 여행지나 바다가 주는 마법은 사랑과 품을 넉넉하고 느긋하게 만들었다. 제주 하늘의 그런 버프에도 불구하고, 한을 만나러 세 번째 내려갔을 때에 제멋대로인 그를 참지 못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나흘 째 속이 차곡차곡 상하던 중이었다. 공항 근처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어두고는 잠은 모르는 남자와 모텔에서 잤다. 낭만적인 시작과 좆같은 마무리가 찰지게 버무려진 여행이었다.

한은 비료가 되었고 발판이 되었다. 나는 경험을 야무지게 데쳐서 써먹는 데에 소질을 찾았고 관계에서 큰 어려움 없이 애정을 구걸해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 때, 친구와 제주에 내려갔다 온 지 이틀 만에 한에게서 연락이 왔다.


- 너 만한 사람이 없더라.

- 웃기다 오빠, 저 며칠 전에 제주 갔다 왔는데. 나 같은 사람 이제 서울 올라왔어요.


한은 제주에 다시 내려오라 졸라도 보고 김포에 올라오겠다 나름 진지하게 계획까지 세우다 잠들었다. 그게 귀엽고 웃겨서 한참 웃다가 그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적당히 들은 후에 전화를 끊었다. 얘는 덩치페어링 안되게 얌전히 잔단 말이야. 취기에 객기 약발이 다 떨어진 제주 숫 짐승이 숙취로 가는 과정을 귀로 관람한 느낌이었다.

한은 내게 제주여서 낭만이었고 호기심이었고 그리운 유흥이었기에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며칠을 연락하며 지내는 데 이상하게 뒤가 켕겼다. 웃으며 통화하는 와중에도 내가 왜 얘 손을 뿌리치고 올라왔었는지 기어코 상기시켜 내었다.

그에게는 말 잘 듣는 여자가 필요했다. 고분고분하고 귀여워서 애완견 같은. 한과 같이 있으면서 내 두 귀가 쫑긋해지는 것 같고 입부리가 나오는 듯했으며 코가 둥글고 까매질 것 같아서 올라온 거였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나는 단번에 휴먼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한은 삼 백마일 너머의 입양 후보견이 사실은 지랄견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서둘러 입양을 철회했다. 나는 원래 개 같은 타입이라 그에게 귀엽고 고분 한 것도 상관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앉아나 손을 깨우치고 간식이나 처먹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한이 그걸 이해했을까? 그게 궁금해서 언팔했던 한의 sns를 종종 검색해 본다거나 한이 차린 가게 후기 따위를 깨나 오랜 기간 찾아봤다.


몇 년이 흘렀고 한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 나는 그와 비슷한 사람과 비슷한 만남과 전혀 다른 사람과 애매하게 겹치는 만남 같은 걸 바지런히 하면서 기억의 저편으로 그를 던져놨다. 친구들과 제주 얘기를 하다가 가끔 등장하는 게 아니면 이제는 인생의 주마등이 스친다 해도 걔의 커다란 얼굴은 나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다 어떤 오후 집에 가는 버스 안, 아는 사람의 피드에서 그를 봤다. 지인이 기념일에 간 식당이 한의 가게였다. 그 이름의 식당을 차리고 싶다더니. 이상하고 반갑고 웃기고 낯설었다. 내가 만지던 것과 같지만 다른 너른 등판이 괜히 차분해 보였다. 가정과 안정이 양 어깨에 소복하게 내려앉은 뒷모습에 이질감이 느껴져서 핸드폰을 내 던지고 싶었지만 짧은 동영상 안에서 재료를 손질하는, 15초마다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는 그를 수십 번 훔쳐봤다. 영상이 찔러대는 왠지 모를 막막함을 자꾸만 확인해야 했다.

그 오후는 제주에서 한과 노닥거리는 바닷바람을 맞은 지 3년 차의 낮이었다. 나는 관계에 여전히 앓았지만 잘 깝치는 개로 성장했으며, 나를 귀엽고 고분 하게 보는 어떤 남자에게 깝치는 개로써 얌전히 앓고 있는 와중이었다. 어째 한이나 얘나 비슷하네. 나는 또 여전하고.

그새 버스 창문 너머의 풍경이 흐려졌다. 모든 것이 느리게 움직이거나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어디 한 군데 정착하지 못한 채 얼른 바퀴를 굴려 다음과 여기와 저기를 기웃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아이 잠깐만 좀 멈춰봐, 저거 좀 보자. 버스는 멈추지 않는다. 겨우 빨간불에 걸려 선 풍경에는 마음 둘 곳이 없다. 느긋하게 달리다 멈춰 선 모든 곳이 볼 만했던 제주와 여기는 많이 다르다.

각자의 궤도를 그리다가 어떤 지점에서 만난다. 같거나 비슷하거나 가까웠던 사람과 함께 멈춰 섰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자신의 곡선으로 시선을 튼다. 그렇게 여기저기 머무르다 때때로 다시 마주치기도 한다. 아주 달라지거나 그대로인 그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페달을 밟는다. 그들도 땅이든 액셀이든 뭔가를 밟아나가겠지.


버스가 흔들렸다. 제주에 내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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