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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물 Nov 15. 2019

반만 부친 편지

네게 적는 것으로 몰래 위안을 훔쳤다

난 어떨 때 누군가에게 아주 멋진 사람이 되고 어떤 자리에서는 아득할 정도로 추한 사람이 돼.

그 사이에서 간극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고 휘청거리는데, 나를 근사하게 봐주는 사람들 곁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가도 등 돌린 사람들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져 가엾은 변명을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어 져.

내 어떤 면만 평가의 지표가 된다는 게 슬프고 사랑하는 이들의 단면만 볼 수밖에 없다는 게 안타깝다. 그러다가도 모든 면을 보이면 돌이킬 수 없을 거라는 불안감이 문득 나를 덮쳐.


나조차도 미워하는 내 울퉁불퉁한 모양들을 너에게 보였을까, 너는 실망을 쌓아갔을까 걱정했어. 내가 네 옷 뒷자락을 잡게 될까, 어쩌면 평생 네 머릿속에 남루한 단편으로 남게 될까.
잘 못됐다 여겨지는 지난 날을 되짚어 곱씹거나 반성하는 일은 꽤 피하고 싶은 일이야. 복기하는 것만으로도 두 눈이 질끈 감기는 기억들도 있으니까. 나는 자주 비겁하니까.

근데 니 정직한 문체가, 뚜렷한 목소리가 자꾸 생각나서 옮겨 적어본다. 네게 또 본의 아닌 용기를 받네. 늘 고마운 마음이야.
네 그런 강경함을 지지해.


2019년 초여름, 하루 종일 너를 떠올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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