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을 집 안에 사로잡아두고는 계절이 지나는 내내 보았다. 책상에 앉아 작업할 때도, 침대에서 하루 종일 뒹굴 때도 나무는 모든 시선의 배경이 되었다.
시원하게 뻗은 가지를 뽐내며 새 봄을, 지난한 겨울이 갔음을, 새싹이 피어오르는 자연의 새해가 시작되었음을 온몸으로 알렸다.
조팝나무의 꽃은 '꽃'이라기보다 '꽃망울'에 가깝다. 작고 동그랗게 퐁퐁거리는 꽃망울이 옹기종기 모여 가지에 열린 모양이 꼭 커다란 트리에 감은 꼬마 알전구처럼 보인다. 누가 이렇게 이름을 잘 지었는지, 별사탕 같기도 팝콘 같기도 한 꽃봉오리들이 팝 팝 저들만 아는 대화를 나누며 재잘재잘,곁에서 피어났다.
기운 차릴 요령으로 식물을 들일까 하고 데려온 나무였는데, 내가 생기를 찾을 때 까지는 좀 더 걸렸다.
미쳐 살피지 못하는 동안 나무가 말라갔다. 나름 주기적으로 물을 준다곤 했지만 생명이란 늘 그렇듯 기계적인 한 가지 보살핌으로는 살아지지 않았다.
봄이 다 지나고 있는데 새 잎이 돋지 않기에 꽃을 짚어보니 바스락 소리가 났다.
바스락, 산 것을 만질 때는 나지 않는 소리.
생기와 수분을 더 이상 흡수하지 않는 죽은 자들이 내는 소리.
떨어질 때를 놓쳐 메말라 달려있는 꽃봉오리들을 가지마다 손으로 쓸어내렸다.
눈 같은 꽃잎이 흐드러지며 내렸다.
질 때조차 하늘거리는구나. 서두르지 않고.
우아하게 내려앉는 꽃잎을 한참 물끔 봤다. '툭'이나 '틱' 같은 무심한 의성어와는 거리가 먼, 낙하할 때조차 아름다운 자연을.
쌓인 눈송이를 쓸어다가 버렸다. 처음 데려올 때처럼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다.
스스로를 살피지 못하다가 수하에 있는 것들이 생기를 잃으면 그제야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닫는다. 삶이 무거워서 뭔지도 모를 막막함을 질질 끌며 살아낼 때에는 화분도 어째 시들하고 고양이들의 불안한 투정이 늘어났다.
나의 안위는 그들의 안위. 내가 건강을 잃으면 주변은 귀신같이 알아내 저도 나를 따라 풀 죽었다.
새 순이 자랄 수 있을까? 또 한 발 늦은 관심을 쏟으며 걱정한다.
죽지 말자. 네가 기운을 차리면 나도 덩달아 신이 날 것 같아. 우리 같이 해 보면서 살자. 말을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