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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Aug 07. 2017

지중해의 길냥이들 열여섯 번째 이야기

우리 집 계단 밑에 길냥이가 산다

사람과의 인연이 그렇듯 동물과의 관계도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열다섯 번째 이야기에 등장하는 태비는 너무나 순둥이라 걱정이 앞을 가려 어떻게든 입양을 해보려고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녀석은 생각지도 않은 부상을 당한 뒤 사라졌고, 집 앞에서 태비에게 먹이를 줄 때 난데없이 나타나 태비의 먹이를 빼앗아먹던 사납던 고양이가 태비의 자리에 불쑥 들어앉았다.   

두 녀석이 차 밑에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먹이를 먹고있다.
집 앞에 나타난 두 마리의 길냥이 


만두라는 이름을 지어준 사납던 고양이는 태비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한 지 1주일쯤 후에 집 앞에 나타났다. 태비에게 먹이를 주면 번개처럼 달려가서 하악질을 하며 태비를 쫓아버리고 먹이를 차지했다. 그런 녀석이 솔직히 이뻐 보이지는 않았지만 녀석도 살자고 그러는 것 아닌가? 

녀석도 누군가의 관심과 도움을 받고 있다면 저런 행동을 할 리는 없는 것이다. 결국 두 녀석 모두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사나운 만두에게 먼저 먹이를 주고 아주 약간의 거리를 둔 곳에 태비의 먹이를 챙겨 주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두 마리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만두는 거칠고 힘든 나 홀로 길냥이의 생활을 해 왔던 듯 먹이에 대한 집착이 유독 강해서 두 마리에게 주는 먹이 사이를 뛰어다니며 혼자 차지하려 들었다. 하지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먹이를 탐하던 만두도 어느 순간 자기가 크게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는 자기의 먹이에만 집중하며 태비와 공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의 포스팅에 언급했듯이 태비는 생각지도 않은 사고로 사라져 버렸고, 만두만이 덩그러니 차 밑에 남게 되었다. 

 

마당 안으로 


영하로 떨어지지는 않지만 비가 자주 와서 으스스 떨리는 바르셀로나의 겨울...

날씨가 추워지며 소낙비가 자주 내리기 시작하자 집 밖에서 녀석의 먹이를 주는 것이 쉽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스페인을 떠날 때를 생각하면 녀석을 쉽게 대문 안으로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날마다 차 밑에서 쭈그리고 있다가 우리가 나타나면 얼굴을 빼꼼 내밀고 "야옹야옹" 우렁차게 울어대는 녀석을 무작정 그 밑에 둘 수만도 없었다. 


우선 먹이라도 편하게 대문 안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두를 천천히 마당 안으로 유인했다. 경계심이 심한 길냥이를 마당 안으로 들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대문을 열어놓고 밖에서 훤히 보이는 곳에 먹이 접시를 놔둔 뒤 멀리 물러나 있으니 조심스레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거리에 지나는 차들, 사람들, 개들... 등 많은 방해물들로 인해서 후다닥 차 밑으로 도망치는 일들이 빈번했다. 그래도 꾸준히 기다려주자 마당 안이 안전하다는 것을 느낀 어느 날부터 녀석은 대문이 열리면 쪼르르르 먹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여전히 경계심이 가득한 얼굴이라 녀석이 먹이를 다 먹고 나갈 때까지 대문을 닫지 못했었다. 

달리는 차들도, 으르렁 거리는 개들도 없는 평화로운 마당에서 걱정 없이 먹이를 즐기기 시작한 만두는 천천히 마당 안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녀석이 자리를 잡게 되자 우리도 대문을 닫고 우리의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고, 녀석은 자기 원할 때면 담을 넘어오거나 차 밑에서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면 후다닥 마당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녀석은 담벼락에 앉아서 주방에서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즐기고는 한다.
계단 밑에 길냥이가 산다

떠날 때를 염려해서 만두를 집안에 들이지 말자고 하던 신랑은 만두가 계단 밑에 자리를 잡자 급 돌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잠자리가 딱딱하다" "너무 춥다" 라며 만두를 위해 고양이 바스켓을 사 오고 장롱에서 남는 담요를 꺼내 녀석의 바스켓 위에 깔아주는 등 앞장서서 만두가 계단 밑에 자리 잡는데 일조를 했다. 

우리 집 계단 밑에서 한겨울을 난 만두!!

식사 시간에는 우리 집 현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놀고 와서는 계단 밑 바스켓에서 아기처럼 곯아떨어진다. 

때때로 현관 앞에 붙박이가 되어서 말 걸어 주기를 기다리고, 말을 걸면 귀를 쫑긋 세우고 내가 하는 말을 경청하다가 미소를 지으며 눈 앞에서 졸기도 한다. 그러다 마음이 내키면 살짝 집안으로 들어와 우리가 사는 모습을 구경이라도 하듯이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다시 계단 밑으로 돌아간다.

 

오랜 시간 사람들과의 관계가 없었던 녀석이라 마음은 있으면서도 다가오는 법을 모르기에 언제나 한 발자국, 딱 한 발자국의 거리가 있지만 경계의 눈빛은 사라진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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