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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라 Mar 02. 2024

꿈을 강요하는 시대에 진짜 꿈을 잃다

<욜로하다 골로갔네> 미리보기 02

꿈을 강요하는 시대에 진짜 꿈을 잃다

  

함께 동네 놀이터를 휘젓던 아이들은 어느새 하나 둘 씩 안 나오기 시작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자 친구들은 학원엘 다니기 시작했다. 홀로 남겨진 나는 방구석에 누워 TV 만화에 빠져들었다. 


제목은 기억 안나지만 어렸을 적 감동 깊게 본 만화가 있다. 파병을 마치고 온 청년이 마을로 돌아오자 황폐화 된 고향을 보고 절망에 빠졌다. 이 때 뫼피스토 같은 악마가 등장해 청년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만약 두꺼운 코트를 입고 7년을 떠돈다면 내게 천금을 주지. 그러나 코트를 벗고 방랑을 포기한다면 자네 목숨은 내 것이 된다는 악마의 유혹이었다. 만화의 결말은 온갖 고난 속에 코트를 벗지 않았고 7년을 버텨 청년이 승리한다. 그리고 악마로부터 어마어마한 황금을 얻는다는 해피엔딩 스토리. 


만화 속 주인공이 나였다면 어땠을까? 여름에도 더운 코트를 입는 건 고역이지만 7년 간 방랑하는 건 페널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좋은 거 아냐? 7년이나 세상을 떠돌 수 있다니!’ 그만큼 어른이 되면 세상을 돌아다니길 갈망했다. 

중학교 3학년에 살던 동네를 떠났다. 이사를 하고 전학 간 곳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어렸을 적 세상을 떠돌고픈 꿈은 잊혀졌다. 고1 때 미래 꿈을 적어 제출하라는데 무엇도 떠오르지 않았다. 사회에서 꿈이란 하고 싶은 일이 아닌 돈 버는 직업을 의미했다. 꿈은 학생이 가진 고유의 가능성이 아닌 환경이나 성적 따라 골라야 하는 매우 부담스러운 가상의 신분증이었다. 


‘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돈 버는 직업이 뭐 있을까?’ 곰곰히 생각했다. 어렸던 내 머리로는 전혀 감이 안 왔다. 마땅히 정보를 구할 곳도 없었다. 당시 인터넷도 처음 보급되던 시기라 온라인에는 양질의 정보가 없었다. 그나마 머리를 굴려 어울리는 직업은 기자였다. ‘기자는 사건 현장을 많이 돌아다니잖아. 오 기자가 딱이군!’ 그래서 고1 가정통신문 희망 직업 빈칸에 기자라고 썼다. 


돌이켜보면 기자는 글쓰는 직업이지 돌아다니는 직업은 아니지 않던가. 만약 누군가가 ‘트럭 운전기사는 전국을 돌아다녀.’ 라고 바람을 넣었다면 졸업하고 바로 대형 면허를 땄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직업에 대해 잘 모르고 어리석은 시절이었다.  


학교에서 희망 직업을 써오라 했을 때 솔직히 무언가 되고픈 꿈은 없었다. 그저 편하게 방에서 만화책과 비디오를 보며 뒹굴면서 놀고 싶었다(만화책 대신 웹툰을, 비디오 대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 지금의 나는 욜로하다 골로 가버린 바람에 진짜 그런 어른이 되고 말았다!). 사실 고등학생 시기에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알기란 어렵다. 한 때 선망받았던 9급 공무원이 현재엔 비선호 직업이 된 것처럼 급변하는 시대에 미래 직업 전망을 예측하긴 쉽지 않다. 진로 교육은 필요하나 너무나 큰 결정이라 마음의 부담을 주었다. 


고2가 되자 다시 희망 직업을 적으라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다시 고민했다. ‘음.. 뭐가 되면 좋을까…’ 1학년 땐 대충 기자라고 썼는데, 알고보니 기자되기란 대기업 입사하는 것 만큼 어렵고 결정적으로 내 글이 형편없다는 걸 깨닫고 깔끔히 포기했다. 무얼 할까 고민하다 학교에서 본 직업 검사 결과지를 유심히 관찰했다. 나에게 적합한 많은 직업 중 눈에 띄는 직업을 발견했다. 


‘선생님? 오, 나의 적성에 잘 맞을거 같은데.’ 교사는 예나 지금이나 착하고 성실한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직업이다. 거창한 야망이나 돈 욕심 없는 나의 성향과 친절한 성격이 교육계나 서비스업에 잘 어울렸다. 다른 이유는 지난 시절 공부를 모르고 무지한 채로 살 땐 그저 ‘어떻게 되겠지’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공부를 해보니 흘러가는대로 사는 게 아닌,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고,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10대 다운 순수함이었다. 전공 과목은 당시 좋아하던 국어, 사회, 윤리 중 관심가던 과목인 윤리를 선택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범대 윤리교육과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의 한 순간이 기억난다. 당시 교실엔 에어컨이 없었다. 더운 여름에는 복도를 포함한 모든 창문을 개방했다. 교실 창 밖 약 2~3km 멀리에 강원도로 가는 새마을호 기차가 다녔다. 35명이 앉아있는 좁은 교실에서 학생들은 모두 책상의 문제집을 바라볼 때 나 혼자 고개를 들어 창 밖의 기차를 바라보다 글이 떠올랐다. 뭐라 썼는지 기록이 남아있진 않지만 흐릿한 기억엔 다음과 같았다. 


‘철컹- 철컹철컹- 자유를 향해 가는 기차에 이내 몸도 싣고 가고파.’ 


이런 느낌의 글이었다. 마음속으론 머나먼 어딘가로 떠나고픈 욕구가 있었다. 그러나 책상 밖을 나갈 아주 작은 용기도 없었다. 세상을 떠돌고픈 꿈은 완전히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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