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J에게
잘 지내고 있나요? J 씨가 떠난 지 벌써 일 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가 어제 같은데 막상 눈떠보니 시간이 많이 흘러갔군요. 그래도 간간히 연락은 주고받고 있었습니다만 최근에는 코로나니 뭐니 해서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연락을 드리지 못했네요. 먹고 산다는 핑계로 저만 생각하는 건 결국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도 가끔씩 환하게 웃던 J 씨의 웃음이 떠오를 때가 있네요. 하지만 정말 가끔이라는 게 함정이지만요(웃음)
J 씨가 떠난다고 이야기를 들은 날은 참으로 많이 놀랐어요. 제가 팀을 떠나고 한동안 힘들어하던 모습을 전해 듣긴 했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겠지 하며 별 신경을 쓰지 못했네요. 미안도 하면서도 나도 바빴고 힘들어서 챙기지 못했다는 자기변명도 하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떠난다는 말을 한 뒤 같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미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린 모습에 많이 미안했습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겠구나 하면서 제가 제대로 못하고 갔나 싶기도 하고 미안한 생각들이 많아지더라고요.
회사든 어디든 선배와 후배는 왜 생기는 건지, 그냥 전임자와 후임자의 관계고 업무로 얽히고 풀어지는 관계 이건만 우리 회사는 전형적인 한국 문화 속에서 선후배로 엮이게 되네요. 어떤 면에서는 나름 끈끈해지는 효과도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만이 남는 것 같습니다. 선배라는 단어에서부터 이미 위치와 권력이 담겨 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갑갑한 틀 안에 갇혀 원치 않게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말은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미안하다는 허공에 떠다니는 사과인 듯합니다.
저녁을 먹으며 걱정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모질게 말했나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가장 필요한 건 위로와 격려였을텐데 현실을 빌미로 너무 날카로운 말들로 찌른 건 아닌지 지나고 나서 보니 반성할게 많더라고요. 이 회사가 뭐라고 회사를 떠나도 시간은 흐르고 다른 곳에서도 충분히 즐겁게 살 수 있는데 말이에요. 계획은 있느냐, 자신의 꿈은 명확한 거냐, 도망은 아니냐 등등... 생각해보면 이 회사를 나가서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걱정이 많았는지, 그리고 걱정이란 이름의 공격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기껏 해봐야 사표를 내는 것인데 그 사표가 내 인생의 끝을 향한 차표같이 느껴졌던 것은 왜일까요.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하고 산다고 그렇게 말하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새 회사를 나가 새롭게 출발하는 게 무서운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J 씨의 결단이 참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눈부셨으면 했던 거 같아요. 잘되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잘 안되면 어떻게 할지 걱정이 자연스레 뒤섞이며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도대체 회사란 곳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사람을 구속하게 되는지,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불합리한 것을 못 본 채 지나치고 부당함 속에 스스로도 부당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는지 가끔 두렵습니다.
계속해서 이곳에는 사람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또 다른 후배를 그리고 또 다른 선배를 보면서 저에게도 이 회사가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어느 때는 안락한 보금자리 같다가도 이대로 여기에 있음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될 것 같은 불안감도 있고요. 그런데 J 씨와 비슷한 후배들을 보니 이런 제 마음을 어느 정도 글로 남겨두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띄우게 되네요. 제 이기심만으로 이런 편지를 보내는 것에 너그러운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바라며 어디에 있든 어떤 선택을 하든 항상 자신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또 편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