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리봉 Jun 02. 2020

소소하지만 착실하게

친애하는 J씨에게


요즘은 가끔씩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것 같아요. 오늘도 갑자기 흐려지더니 점심 때는 비가 내리더군요. 비가 오면 나가서 먹는 것도 귀찮아지니 회사 식당에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도 많이 있더라구요. 역시 비 오는 날은 뭐든 하기 싫어집니다. 일하는 것도 만사 귀찮아지는 것 같아요.


어느덧 봄은 끝나고 여름이 다가오네요. 저희 부서에 온 신입 직원분은 어느덧 능숙함을 뽐내며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뭐 도와주는 것은 하나 없는 선배지만 옆에서 보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구요. J씨도 참 열심히 하는 후배였어요. 모든지 열심히 모습이 참 예쁘면서도 안타깝기도 하고 그랬네요. 회사 특성인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여기는 잡일부터 시작해서 돈 계산이 너무 많잖아요. 그리고 시스템도 매우 낙후되어 있어서 문제가 일어날 일도 많고요. 어른들은 옛날 생각만 해서 '옛날엔 안 그랬어', '이렇게 처리하지 않았어'라고 예전 기준을 가지고 와서 혼란스럽게만 하고 그 사이에서 많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참 안쓰러웠어요. 


사실 우리는 별거 아닌 일을 하고 살아요. 뭐 몇 년 지난다고 해서 제가 차장, 팀장이 된다고 해도 별거 아닌 일을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멋들어진 말로 자신의 일을 뽐내고 허세도 부리겠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내 일이 참 보잘것없다는 하나의 거짓말을 안고 살아야 할 것 같다는 기분이 듭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이런 마음은 더 커질까요? 우리의 일은 너무 보여주기 위한 일이 많아요. 상사에게, 임원에게, 정부에게, 고객들에게 너무 우리는 비위를 맞추기만 하니 업무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네요.


이렇게 자존감이 떨어질 때면 항상 저는 소소한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글을 쓴다든지, 아니면 주변 정리를 한다든지, 밀려있던 단순 작업들을 하는 편이죠. 열심히 하지 않아도 좋은 일을 무덤덤하게 하다 보면 어느덧 소란스러웠던 생각들이 가라앉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저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소소한 일들이 주는 즐거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합니다. 


소소한 일은 누구에게 보이지 않는 일이라 오직 나만 알 수 있는 일들이지요. 그래서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지만, 잘 해낸다면 오롯이 혼자만 느낄 수 있는 뿌듯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물론 남들은 이러한 내 모습을 보고 왜 저럴까 하는 눈빛으로 보겠지만요. 하지만 성과도 보여줘야 하고, 능력도 보여줘야 하고, 나란 사람은 누구에게 보여줘야 하는 삶 속에서 온전히 나만 알 수 있는 소소함은 '나를 나답게 지낼 수 있게 하는 나침반'과도 같아요. 소소함 내가 생각하는 나의 기준을 넘기기 위한 노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소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저는 좋습니다. 누구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이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법을 아는 사람이니깐요. 그리고 이러한 소소한 일들 하나하나 해나가면서 별거 아닌 내 일상과 업무와 삶도 그래도 나를 위한 시간으로 변화하는 것 같아요. 별것 없어 보이는 내 업무도 나를 위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또 그런 게 이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위한 일이 되기도 하니깐요. 흠.. 내가 내 업무가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건 나 역시 너무 평가에 신경 쓰다 나를 놓쳐버렸기 때문에 생기는 틈새일 수도 있겠네요. 참 저도 이렇게 글을 쓰며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같은 일이라도 남을 의식해서 하는 일과 나를 위해 하는 일은 그 의미가 다를 테죠.


이런 심난한 날에는 자잘한 일도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하던 J씨가 가끔 생각나네요. 소소한 일들이었지만 그래도 착실하게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려는 J씨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곳을 가든, 거기에서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잘하든 못하든 저는 J씨가 소소하게, 그렇지만 착실하게 해 나가는 모습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에서 남들에게, 환경에게 휘둘리는 우리는 항상 자신을 잃어버리기 마련이지만 그런 소소함이 자신을 되찾아올 수 있는 나침반이 될 테니깐요.


날씨가 오락가락하는 6월 초이지만, 이제 이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지나면 무더워지는 여름이 다가올 것 같네요. 올해는 코로나로 더 힘든 여름이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여름의 열기 속에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길 기도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또 편지할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를 떠난 지 벌써 1년이 되었군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