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목욕
해가 사라지고 달이 뜬 밤, 수도꼭지를 왼쪽으로 한껏 돌리고, 물을 받고 있어. 물은 천천히 차올라. 그의 속도대로 천천히 높아지지. 요동치던 수면은 점점 잠잠해지고 나는 발을 담가. 차가운 발이 따꼼따꼼 소리를 내지만 온몸을 담그고 나면 그도 고요해져.
찰박찰박, 두 손에 물을 모아 어깨에 끼얹어. 사실 몸을 담근 이 시간에 책도 읽어보고 영화도 봤지만, 무엇보다도 이 물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아. 물과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간.
때론 입욕제를 넣어보기도 해. 보글보글 거품을 내며 색이 퍼지는 그 모습을 바라 보아도 재밌고, 그만의 향을 느끼는 것도 좋지. 아, 소리가 나기도 한단다.
물로 몸을 감싸 안아주는 시간, 나는 목욕이 참 좋아. 마음이 가만가만 나른해지지. 자주 할 수 없기에 더 좋기도 하고. 아, 그거 알아? 어디선가 읽었는데, 신라 시대에는 죄를 지은 사람에게 마음을 깨끗이 하라고, 목욕벌을 내리기도 했대. 불교의 영향이었나 봐. 분명 몸을 깨끗이 하면 마음도 맑아지는 것 같아. 흠, 그래서 말인데 목욕벌, 나에겐 제법 마음에 드는 벌이야. 아아, 물론 어떤 죄를 지었다는 건 아니고! 흐흐 목욕이 끝나면 밖으로 나와 천천히 몸을 닦아. 로션을 발라주고, 옷을 입고 난 후 양껏 받았던 물을 흘려보내지. 고마웠어, 인사를 하면서 말이야. 아, 그나저나 몸이 정말 따뜻하게 날짝지근해졌어. 흐암, 얼른 이불 속으로 포옥 들어가 잠을 청해야겠다.
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