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저리호저리 Dec 22. 2020

내 아들이 말이야~

어디로 가야 하죠 아저씨

 



 대기업에서 대리를 맡고 있는 아들을 둔 한 아버지를 만났다. 아들이 대리가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흐른 만큼 그의 주름은 깊었고 머리는 꽤 벗겨져 있었다. 그는 내가 탄 택시의 기사님이었다. 택시에 탔을 때 밝은 목소리로 서로에게 인사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는 그의 일을 했고 나는 핸드폰만 봤다. 대화 여부의 결정권은 보통 손님이 쥐고 있었기에 하지 않기로 했다. 평소엔 기사님과의 대화를 즐긴다. 사람이 궁금하다. ㄱ자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자신보다 훨씬 큰 폐지 수레를 끄는 걸 보면 열아홉 소녀 시절은 어땠을지, 기사님들이 전에는 무얼 했는지 궁금하다. 때문에 보통은 조수석에 앉아 귀의 거리를 맞춘다. 그들이 밟아 온 삶을 듣는 게 좋다. 한 사람의 인생도 역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오늘은 10분 정도의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거라 묵묵히 핸드폰만 보고 있는데 밝았던 인사가 마음에 걸렸다. 좁은 차 안의 적적함이 물렸을 거다. 그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택시 기사님들은 차를 새로 뽑거나 깨끗하게 관리한 거에 자부심이 있으셔서 천천히 둘러봤다. 깨끗하지만 곳곳의 긁힌 자국을 보면 새 차는 아니었다. 눈에 들어오는 건 백미러 아래 걸려있는 훈장이었다. 20년 무사고. 그의 자부심인듯했다. 20년 무사고는 종종 봤기에 대시보드로 눈을 돌렸다. 30년 무사고 인증서. 그것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인증서 속 사진은 내게 어서 말을 걸어라, 칭찬을 해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와 30년 무사고세요?

 7~8년 전이고 지금은 37-8년 정도 됐죠 뭐~

 운전을 진짜 잘하시는구나.


 나의 이런 친절 섞인 대화는 목적지까지 조금이라도 능숙하게, 돌아가지 말고 빠르게 데려다 달라는 아부가 섞여 있다. 차선을 한 번에 세 개나 가로지르고 주황 불은 아직 초록 불이라 생각하는 폭주 버스를 아무리 욕해도, 내가 탄 버스는 폭주했으면 하는 같은 속물적인 마음이 섞여 있었다.


 내가 사고 낸 적은 없고 뒤에서 받힌 적은 있어요. 그건 사고가 아니지. 대비 못 해.

 아 그렇죠, 기사님 잘못이 아니니까.

 그럼요. 아들 녀석이 힘내라고 해서 열심히 했죠. 그놈이 인하공전 수석 졸업해서 기아 자동차 들어갔어요. 지금 대리인데 연봉이 7500이고 가을에 결혼해요. 잘 커 줘서 마음이 좋지.


 ???????????


 분명 바늘만큼 찔렀는데 저수지에 고여있던 물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내가 말을 건 순간부터, 아니 누군가 택시에 탈 때부터, 아니 아들이 기아 자동차에 들어간 순간부터 그게 누구든, 어떤 대화 패턴이던 아들 자랑을 쏟아 놓을 준비를 한 것처럼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30년 무사고가 연봉 7500까지 이어질 수는 없었다.


 그 후 88년생 아들과 92년생 여자 친구의 결혼 준비, 모아둔 돈, 분당의 집값 7억 중 3억 대출을 받은 사실까지 이어졌다. 아, 그리고 그의 딸은 86년생에 자식이 하나 있고 남편은 현대 자동차 과장에 그의 아들 학교 선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딸은 아들에 비해 자랑할만한 직장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물론 하나하나 다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와 30년 무사고세요?' 나 '오...' '오~' 따위의 맞장구만 쳤다.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콕 찔러본 나의 바늘구멍에 아저씨의 낙타만한 자랑이 비집고 들어오려 해서 틈이 없었다.


맞장구 전문인 나는 나름 즐거운 대화 속에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는 연신 자랑스러운 아들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본인의 이야기는 현대 건설에 다닐 적 사우디로 파견을 다녀왔다는 짧은 문장뿐이었다. 그 문장은 물론, 그런 고생을 통해 자식들을 키웠다는 자식 바보의 짧은 문장일 뿐이었다. 어쩌면 그가 말할 수 있는 삶은 가족이 전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들 뒷바라지로 힘든 게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가 그의 긍지이고 삶인 것 같았다.


 문득 나의 아버지도 다른 사람에게 자랑스럽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 짧은 의문은 그보다 더 짧은 목적지까지의 거리 때문에 택시와 함께 멈췄다.


 여기서 세워 드리면 되죠?

 네 여기서 내릴게요.

 어우 앞으로 잘 살겠네. 인상 좋고 착해서.


?????????????


 대화하는 동안 그는 내 얼굴 한 번 보지 않았고, 나는 '오'만 연발했다. 과연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다는 것인가. 하고 싶은 얘기를 열심히 들어줬기 때문일까. 그의 덕담은 역술가의 말처럼 모호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 택시는 기아차였을까. 그랬다면 그의 덕담을 맹신했을 거고,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대화는 즐거웠고 길은 돌아가지 않았다. 30년 무사고다웠다. 40년 훈장을 받을 즈음 아들은 과장을 달겠지. 그때 또 운 좋게 그의 택시를 타게 된다면 좀 더 먼 거리를 가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