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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Jul 26. 2017

믿지 않기로 한 것들.

믿지 않는다면 닿지 않았다.

     A학생의 일본어 과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A의 어머니께서 너 표정이 많이 좋아졌다더라. 사람 대하는 게 좀 더 편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나는 오는 길에 얼음이 다 녹아버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려놓으면서 답했다.


"그런가요."


     나는 미지근해진 커피를 입 안에 머금고 요리조리 돌렸다. 속으로는 과외하는 학생의 어머니랑 도대체 왜 그런 이야기까지 하는지, 싶었지만 이내 대화의 내용에 다시 생각에 닿았다. 그랬었나. 생각해 보면 그랬던 것 같았다. 최근에 들어 얼굴에 살이 살짝 붙어서인지, 머리를 검은색으로 되돌려서인지, 친구들이 나에게 순해졌다는 말을 자주 건넨 기억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내가 살짝 웃으면서 답을 해서인지, 어머니께서는 말씀을 이어가셨다.


"몇 달 전만 해도 작은 일에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는데 말이야."


     시원한 게 없나 냉장고를 뒤지던 나는 잠시 멈췄다. 몇 달 전의 내가 낯설게 들리는 게 낯설었다. 으래 하던 것처럼 답변을 하려 했지만 무언가 마음이 무거웠다. 왜지, 하는 생각에 머물러 있는 내 모습을 어머니께서 걱정되는 듯이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난 천천히 문을 닫으면서 답했다.


"그렇죠?"


     나는 어머니께서 안심된다는 듯이 활짝 피시는 모습에 뒷말을 삼켰다.


근데 엄마, 난 그때의 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모든 것들을 지켜내려고 애쓰던 그 모습이. 내가 조금은 일그러지더라도 주변이 소중했던 그런 시간들이. 요즘은 그런 게 없거든요. A의 부모님이 틀린 거예요. 난 좀 더 편해진 게 아니라, 편해질 것이 없어진 거죠. 이젠 더 이상 그 누구도 무엇도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 않거든요.


     하지만 그 생각들은 당시에 내가 항상 그랬듯이 재빨리 도망쳤다. 망가진 것들을 믿지 않기로 다짐한 지 오래인 나는 다시금 혼자만의 공간으로 눈길을 돌렸다. 믿지 않는다면 나에게 닿지 않았다.

     나의 망가진 조각들은 나만의 공간에 침범하지 못했고, 그게 날 편안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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