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독서실과 박하사탕

붙잡고 싶은 기억들

by 초록테이블

고등학생 시절의 독서실을 떠올리면 사물함을 채우고 있던 박하사탕이 떠오른다.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이지만 자율적이지는 않은 학습이 끝나고 하교를 하면 10시가 넘은 시간에 수학학원에 갔다가 12시가 넘어 독서실로 향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렇게 까지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싶은 것이 지금은 친구랑 놀라고 부추겨도 12시를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시간에 독서실에 도착하면 실내는 잠의 기운으로 가득 차있다. 절반은 엎드려있거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듣는다. 휴게실에서 간식을 먹으며 쉬다가 조금이라도 떠든다 싶으면 옆방에 있던 총무님이 귀신같이 달려와서 주의를 준다. 총무님은 어찌 된 것이 볼 때마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고 학생관리도 열심히 한다. 투철한 직업정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긴장하면서 공부했다.


독서실 내부가 잠의 기운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뭔가 차악- 가라앉는 느낌이다. 핑계겠지만 어쩔수없이 나도 졸려온다. 그럴 때면 박하사탕을 입에 물었다. 입 안에 사탕이 머물고 있는 동안은 어느 정도 잠을 깨우는데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주로 먹은 박하사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 개씩 비닐에 싸여있는 동그란 비단박하사탕이다. 비단박하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구글에 검색해 보니 '비단처럼 부드러운'과 '박하'를 결합하여 제품의 특징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보인다는 답변이 나왔다. 그 시절에는 궁금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그 이름이 궁금하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길쭉한 마름모꼴의 박하사탕이다. 비단박하는 단단한데 이건 공기 반 설탕 반이다. 잘 녹고 잘 부서지는데 겉면은 거칠거칠하다. 거칠한 부분을 혓바닥으로 살살 문지르면서 녹여먹곤 했다. 둘 중에서 더 좋아한 건 마름모꼴 박하사탕인데, 맛도 더 취향인 데다 조용한 독서실에서 녹여먹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단단한 비단박하는 입안에서 굴리면 이에 부딪혀서 소리가 날 수도 있다. 그 시절 독서실에서는 정말 숨소리도 신경 썼다. 책장 넘기는 소리, 서걱서걱 펜이 움직이는 소리 외에는 용납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펜을 돌리다가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세상천지에 그런 죄인이 없다. 한숨도 밖에 나가서 쉬던 시절이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졸리다는 핑계로 사탕을 정말 많이도 먹었다. 어쨌든 설탕 덩어리인데 많이 먹을 때는 하루에 십 수개도 먹은 것 같다. 요즘 같으면 혈당도 신경 쓰고 칼로리도 신경 썼겠지만, 고등학생 시절 나는 공부나 시험 외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살찌는 것을 걱정했거나 좋아하는 이성친구라도 있었다면 덜 먹었으려나?

나는 박하사탕이지만 다른 친구들은 믹스커피나 캔커피를 많이 마셨다. 내가 당시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은 이유를 생각하니 갑자기 웃음이 난다.

커피를 마시지 않은 이유 첫째, 너무 달아서 살찔 것 같다.

둘째, 머리가 나빠질 것 같다.

뭐라니? 결국 사탕을 먹은 것은 커피보다 살찌는 기분이 덜해서였나 보다. 살찌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는 말은 취소다.


가끔 늦은 밤 집으로 걸어오다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마주친다. 편의점에서 에너지드링크를 사고, 테이크아웃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잠을 쫓아가며 꾸역꾸역 공부를 머릿속에 집어넣을 십 대들을 생각하면 짠하다. 그럴 때면 마름모꼴 박하사탕으로 혓바닥을 긁어 미세한 상처를 만들던 나의 십 대를 생각한다. 혓바닥의 상처와 피맛이 묘한 위안이 된 날들이었다.


mint-1012245_640.jpg Pixabay로부터 입수된 Steve Lee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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