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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드림 May 09. 2024

아토피 옮는 것 아니가?

생활 반려병 아토피와의 적당한 거리두기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 체력을 늘린다. 이것이 내가 운동을 하는 이유이다. 운동은 자신이 있다. 이제는 습관적으로 눈 뜨면 매트를 펴니까. 그러나 내가 아주 취약한 점을 꼽자면 '식습관 관리'였다. 앨범을 정리하다가 3년 전 나의 팔을 찍은 사진을 보았는데 아토피로 긁어 앉은 딱지들이 아주 많았다. 애플워치를 찬 부분은 동그랗게 염증이 올라왔다. 지금은 피부가 아주 매끈해져서 상처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게 나로서도 새삼스럽게 신기했고, 앞으로도 잘 관리하기 위해 이번에는 아토피와 식습관 관리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다.


어릴 때부터 있던 아토피는 생활이 되었다. 그것 때문에 살면서 큰 문제가 된 적은 없었지만, 나를 아주 깊이 돌이켜보게 하는 몇 차례 계기가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아토피 부위에 2차 감염이 되어 병원에 열흘 정도 입원했던 적이 있다. 집중 치료를 받고 처음으로 스테로이드 연고라는 것을 발라보았는데, 정말 놀라운 속도로 회복되었다. 퇴원하고 오랜만에 등교한 나에게 당시 첫사랑이자 짝사랑하던 남자애가 대뜸 "아토피 옮는 것 아니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주 순수한 의도지만 잔인한 질문을 던졌고, 나는 충격을 받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교실을 나왔다. 뒤늦게 화장실에 가서야 친구에게 이야기했을 땐 오히려 그 친구가 뭐 그런 애가 다 있냐며 화를 내었고, 결국 그렇게 첫사랑도 끝이 났다.


그 애를 보면서 더 이상 두근거리지는 않았지만, 그 한 마디가 내 마음에서 자꾸만 반복재생 되었고 다른 종류의 파동을 던졌다. 멈추려고 저항할수록 더 크고 악의 가득한 다른 말들로 왜곡되었다. 그 애처럼 다른 사람들도 아토피를 전염병처럼 여기는 걸까, 싶었고 괜히 친구들과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은 자책으로 번져나갔다. 아토피는 옮는 게 아니고 나만 조금 간지럽고 수고스러울 뿐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 보면 몸과 마음의 면역력이 약했던 가여운 기억이다.



생활 반려병인 아토피는 결국 생활습관의 문제다. 그러나 통학 거리가 3시간인 대학교에서 유아교육과의 과제 홍수 속에서 총대 생활과 각종 활동을 이어나가다 보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다. 나는 나를 돌보는 방법을 몰랐다. 서툴고 투박하게 매일 매 순간의 일과들과 맞서고 소진시키고 마모시켜 나갔다. 음식도 아무렇게나 때우고, 잠도 충분히 자지 않고 모두의 부름에 응답하며 바쁘게 지내는 것이 곧 성장이라고 믿으며 쉴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실습을 나갈 때 즈음 엄마 같은 교수님이 나를 불러 아토피가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그렇다고 하자 '네가 선생님이 되면 아이들은 너에게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고 자주 상처에 대해 물어볼 것이다, 자기 관리가 잘 되지 않은 교사에게는 신뢰성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미래의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치료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아주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씀해 주셨다. 초임 교사가 현장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미리 개선하고 가면 좋은 것들을 알려주신 귀한 피드백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염려 가득한 마음으로 해주신 정성이 느껴져 나는 그때부터 내 몸의 상처들을 바라보기는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이런 나라고 아무런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우리 남매가 아주 어릴 때에는 엄마도 여기저기에서 아토피에 효과적인 방법을 수집하여 우리에게 적용시키려 애쓰셨다. (동생도 아토피가 있었지만 크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목초액이다. 목초액을 희석시킨 물로 목욕을 했는데, 그때마다 너무 따갑고 괴로워서 울다시피 했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글을 쓰면서 코끝에 목초액 냄새가 맴돈다. 좀 더 컸을 때에는 대구의 용한 약국에서 맞춤형 환을 지어온 적도 있었다. 상처가 사라지고 살이 빠지나 싶었지만 밀가루나 각종 염증을 유발하는 음식들이 제한된 상태여서 효과는 그때뿐이었다. 각종 보습제와 연고도 발라보았지만 언제나 다양한 시도의 최종장에는 목을 벅벅 긁으며 라면을 먹고 있는 내가 있었다.


결국 '음식' 관리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많은 시도가 라면거품으로 돌아가고 나서 나는 거의 나를 방치하듯 살았다.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닌 불안감, 공허함, 낭패감은 시기별로 음식은 라면에서 디저트로, 디저트는 꾸덕한 양식으로, 그러다 또 물리면 해장하기 위해 라면으로 바뀔 뿐이었다. 처음에는 즉각적인 충족이 되니까 아주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그때에는 운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움직임이 거의 없었던 시절. 내 안에는 더부룩하고 불쾌한 것들이 만성적으로 쌓이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이 지긋한 시기가 언제 끝이 날까 싶었지만 눈을 뜨면 무의식적으로 배달어플을 서핑하고 있었고 먹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관성적인 나의 일상이었다. 식사일지를 써보면 나의 식습관을 돌이켜보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말에 매일 적기는 했지만 정말 성실하게 적기만 할 뿐 피드백은 하지 않았다. 식사일지를 되돌아보면 무언가 험한 것(?)이 나올 것만 같은 걸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날도 똑같은 날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문득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기 위해 배수구 거름망을 들어 올렸을 때 눈길이 멈췄다. 각종 음식물이 그득히 쌓이고 섞인 거름망의 상태가 어쩌면 내 위의 상태와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내 위에게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는 충격과 함께 미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대면할 수만 있다면 석고대죄를 하고 싶었다. (여담으로 나는 갤럽 강점 검사 결과 top5 중 '책임' 테마가 있는데, 책임 테마가 강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가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을 때 그냥 사과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무언가 보상이라도 안겨주어야 마음이 편한... 피곤한 편이다.) 내 몸에게 잘하고 싶었다.


그 무렵 정말 내 몸은 장기들이 모든 기능을 못하겠다고 파업이라도 한 듯했다. 감정적으로도 늘 갑갑한 기분에 사로잡혀 지내고 있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순환이 되지 않은 것이다. 다소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했고, 집중을 하지 못하고 산만해져 가는 게 느껴지고, 잦은 잔병치레가 있었다. 면역력이 낮아져 자주 가려운 게 컸다. 내 몸은 빨간 상처들이 혜성의 꼬리처럼 손톱자국을 따라 번지고 있었고, 염증이 빅뱅을 일으키는 은하계였다. 지금은 다 버렸지만, 당시에 내가 입는 옷과 침구류에는 심심찮게 곳곳에 핏방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명상을 하다가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라는 물음이 우러나왔고 뒤이어 온몸이 '순환'이라고 대답하는 듯했다. 꽉 막혀있는 몸과 마음의 길을 뚫고 싶었다. 이십 대 후반이 되자 당뇨나 고지혈증 같은 성인병이 남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간혹 발가락이 따끔하기라도 하면 혹시나 당뇨일까 싶어 너무 두려웠다. 다행히 건강검진 결과에는 이상이 없었다. 보너스 라이프를 얻은 것처럼, 지금이라도 이 심각성을 깨달은 것에 감사하며 더 이상 나를 방치하면 안 되겠다 싶었고, 나는 그에 대한 나만의 전략을 거의 서른이 되어서야 세우게 되었다.




그 전략은 앞서 한 번 다룬 주제인 '헌혈'이었다. 나를 건강한 상태로 돌보아야만 가능한 일이자 내가 가진 것 중에서 남들에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현재 혈장성분 헌혈을 격주마다 한 번씩하고 있다. 2주마다 건강 체크를 하는 셈이다. 운동을 하고, 잠을 충분히 잘 자고, 밥도 잘 챙겨 먹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자주 낮게 나오는 편인 나는 철분제 등의 영양제도 자주 챙겨 먹어야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기여하는 행동이지만 철저히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러나 그런 아이러니도 건강을 위해서라면 조금은 귀엽게 봐줄 수 있지 않을까.


남들이 모두 다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나에게서 우러나온 전략이어야 지속 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 요즈음. 지속 가능한 내가 되기 위해 또 어떤 재미있는 전략을 발견하게 될지가 요즘 내 최대 관심사이다.


그리고 브런치에서나마 은밀하게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요즘 내 글쓰기 전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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