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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드림 Apr 09. 2024

남을 위한 것은 사실 나를 위한 것임을

헌혈을 통해 건강관리를 시작하다

나는 주기적으로 헌혈을 하고 있다. 전혈을 주로 하던 뚜자친구는 작년에 30회 이상 헌혈을 기념하여 은상을 받았다. 나도 그를 따라잡기 위해(?) 올해부터 격주로 혈장성분헌혈을 하기로 했고 최근에 13번째 헌혈을 했다.


전혈은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혈장 등 피를 구성하는 성분 모두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15분 내외로 소요되고 1년에 총 5번 가능하다. 혈장성분헌혈은 채혈한 뒤에 혈소판만 뽑아내고 혈액을 다시 헌혈자에게 들여보내는 방식으로 30~40분 정도 소요되고, 필요한 성분만 뽑아내기 때문에 회복속도가 빨라 연 24회까지 가능하다.

 

나는 혈관이 굵어서 남들보다 채혈이 빨리 끝나는 편이고 헌혈 후 어지럼증도 없었다. 그러나 두 번째 혈장성분헌혈을 하던 중,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채혈을 마무리하고 나서 간호사분께 말씀드리자 채혈한 왼쪽 팔 뒤로 보냉팩을 대어주셨고, 카우치를 조정하여 발을 머리보다 높여주셨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누워있었다. 여태까지 이런 적이 없었는데, 왜 이러지?     


알고 보니 생리가 시작된 것이었다. 예정일보다 2일 정도 앞당겨서 찾아오는 바람에 그렇게 어지러웠던 걸까. 생리통은 없어도 조금의 무기력이나 허리 쪽이 우리~하게 아프기는 했으니까. (우리~하다는 우리~하다 말고 대체할 말맛이 없다.) 그렇게 12시간 가까이 잤다. 다행히 어지럼증은 없었다. 혹여나 이 글을 보고 걱정이 되는 분들이 계실까 봐 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헤모글로빈 수치가 좋으면 생리 중 헌혈이 가능하기도 하다.     


시작은 이렇게 단순하고 유치하지만 헌혈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나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헌혈 전 문진을 할 때 혈압이 낮거나 헤모글로빈 수치가 낮아 퇴짜를 맞거나,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다음에 다시 하자는 말을 종종 들었다. 아토피로 두꺼워진 피부층 때문에 혈관이 보이지 않아서 팔을 바꿔가며 바늘을 여러 번 찌르기도 했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간당간당해서 간호사님께서 철분구미를 챙겨주셨다

그 뒤로부터는 철분제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매일 스쿼트도 100개씩 하는 등 깨끗하고 맑은 피부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식습관 개선과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한다. 여러 번 퇴짜를 맞거나 어지럼증을 느껴도 내가 헌혈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정말 간절하게 수혈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여감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할 때, 동료 선생님의 아버님께서 큰 수술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문제는 수혈할 피를 찾아야 하는데, 가족에게서는 피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B형 혈액을 수소문을 하여 찾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병원에서도 B형 혈액이 부족하였고, 근무지에서 B형 혈액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피를 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결국 고심 끝에 선생님의 아버님께서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하셨고 그렇기에 수혈을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나는 정말 위급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여감을 통해 건강의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를 도우려면 내가 건강한 상태여야 한다.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없다.


나는 헌혈을 하면서 건강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열량, 정제탄수화물로 가득한 나의 몸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역설적으로 남들에게 피를 내어주면서 내 건강상태를 되돌아보게 되었고, 누군가에게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잘 돌보고 싶게 만들었다.


결국 남을 위한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었다. 마침 싱싱한 채소들과 양배추와 레몬을 사고 돌아오는 길이 참으로 복되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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