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운드림 May 08. 2024

누나는 운동인이잖아

나는 무엇을 위해 운동하는가

동생과 전화하다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데, 그것은 우연히 옷장 정리를 하다가 지폐를 발견했을 때와 비슷했다. 경상도 남자지만 둘째 특유의 붙임성이랄까, 전화할 때면 유독 수다스러워서 통화기록이 40분은 기본인 동생과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어디 가서 누나야 자랑할 때마다 운동인이라 한다. 태권도 검은띠제, 투포환 한 달 배우고 국내 3위 했제, 킥복싱했제, 골키퍼가 골 넣어버리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관심받는 것을 즐기는 동생은 어딜 가서 내 자랑을 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멋쩍기도 했지만 문득 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 맞아, 옛날의 나는 그랬지. 몸을 움직이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아주 활달했었지, 하는 반가움이 더욱 컸다.


타고나기를 우량하게 태어나서 (4.35kg으로 태어남) 또래보다 덩치가 컸지만 제법 유연하고 민첩하게 몸을 다룰 줄 알았다. 체육부장 선생님의 스카우트(?) 제의로 한 달 만에 배운 투포환은 국내체전에서 3위를 했고, 매일 구보를 하고 죽도로 엉덩이를 맞아가면서 시합 준비를 하고 태권도 검은띠를 땄다. 다른 여자친구들이 인형놀이 할 때부터 나는 공놀이를 좋아했고,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고 싶어 엄마를 졸라 축구화를 샀지만 동성끼리 노는 것을 즐기는 시기에 남자애들은 한두 번 같이 하다가도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같이 축구를 한다고 해도 여자가 축구를 왜 하냐(당시에는 여자 축구가 활성화되지 않았다)는 순수한 물음부터, 나에게 공을 주지 않거나 얕잡아보았다. 일부러 몸싸움을 세게 걸어서 내가 포기하게끔 만들기도 했다. 우리 집안도 운동을 지원해 줄 형편이 되지 못했다.


마음이 너무 앞서나가 버린 탓일까, 신발장 구석에 처박혀있다가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잊힌 축구화처럼 나의 움직임도 사그라들어갔다. 친구들이 다 공부하러 태권도도 그만두고 축구도 하지 않고 다 학원에 가니까 그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인 줄 알고 나도 태권도장을 그만두었다.




중학생 때는 같이 운동할 친구가 없어 책을 읽었다. 외모에 한창 관심이 많을 나이지만 나는 외모에 관심도 없었고 당시에 교복 치마의 아랫배 쪽 재봉선을 뜯어내는 게 유행이었으나 나는 유일하게 치마를 수선하지 않은 학생으로 지냈다. 그게 버튼이 되었는지 어린 마음에 세 보이고 싶고, 소위 잘 나가는 애들 사이에 끼고 싶어 하는 같은 반 동창이 나를 괴롭히곤 했는데, 이 일화는 쓰다 보니 길어져서 나중에 따로 풀어보겠다.


그 무렵, 엄마가 배드민턴 동호회에 참여하고 있어서 쭐래쭐래 따라다니던 나도 간간이 레슨을 받았는데, 코치님이 진지하게 선수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그때는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 줄 알고 웃고 넘겼다. 오랜만에 운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물론 체력은 많이 떨어졌지만 배드민턴을 할 때, 아주 반짝이는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다.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을 보는 신선한 기분.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나에게 있어 어떠한 신호였던 것 같다.


집과 가깝다는 이유로 진학한 신설 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체육활동을 적극 장려했다. 쉬는 시간이면 농구, 축구, 탁구, 배드민턴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도 다시 만났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오랜만에 운동에 대한 욕구가 화르륵 피어올랐지만, 배드민턴 할 때 신발을 잘못 신어 오른쪽 발 인대 세 개가 터져버리는 사고가 있고 난 뒤로는 또 오랜 시간 운동을 할 수 없었다. 한 번 다치고 나니 또 다치지는 않을까, 마음이 겁을 쉽게 먹기 시작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큰 마음먹고 인생 첫 PT를 받을 때, 트레이너는 계속 나에게 동기유발을 하려고 비키니 입고 싶지 않느냐, 남자친구 사귀고 싶지 않냐고 했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런 요소들이 흥미를 일으키지 못했고, 오히려 더 저항이 심하게 올라왔다. 초콜릿이 너무 먹고 싶어서 ABC 초콜릿 하나를 먹다가도 구토를 했고, 15kg을 감량했지만 거울 속에 보이는 나는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고 형편없이 느껴졌다. 남들에게 예뻐 보이고 싶어서 살을 빼는 게 아닌데. 뚜렷한 목표 없이 시작한 PT는 그만둠과 동시에 무서운 속도로 다시 돌아왔고, 나는 오랜 시간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비로소 내가 운동을 왜 하는지, 무엇을 위해 하고 싶은지 나만의 목적을 가지기 위해 본질적인 고찰을 하게 된 것이다.


궂은 좌절의 바람에도 '움직임'의 불꽃은 이상하리만치 아슬아슬하게 심지를 태우고 있었다.


어느 날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보다가 내가 죽을 때 내게 남는 건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여행자들이 하나하나 불필요한 짐을 내다 버리는 것처럼 다 버리고 남은 것은 나의 몸 하나였고, 세상에서 내가 나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고유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착 달라붙었다.


여기서 나의 비밀스러운 꿈 중 하나를 말하자면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할머니가 되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나의 몸을 잘 컨트롤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걷어내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겠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내게 컨트롤이라고 함은 자유자재로 솟아오르는 기분을 '몸짓'을 통해 표출하는 것이었다.


춤을 추고 싶다면 춤을 춰야 한다. 그렇게 직장을 다니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고,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아예 댄서가 되고 싶어 1년 동안 춤을 춘 적도 있었다. 춤을 추면서 자유롭게 감정을 표출하는 걸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동작이 물 흐르듯 나올 줄 알았지만 예상외의 난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속에 오랫동안 눌려져 있던 감정이나 가치관이었다. 춤을 추기에 앞서 '이걸 해도 되나', '남들이 뭐라 하지 않을까',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의 잔주름을 쫙쫙 펴는 게 급선무였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동작이 몸에 스며들지 못하고 끊겨 버린다. 버벅거리는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는 것이 아주 오래 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춤을 추기 위해 모인 곳에서는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들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을 잘 느끼고 뽐내기 위해 100% 몰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틀리면 틀린 대로. 내가 느낀 대로. 아무렴 어때, 하는 마인드로 임했을 때 잘해야 한다는 강박과 눈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매사에 신중했던 내게는 아주 큰 도전이었고 그래서 더욱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멋진 행동이었다.


비록 나를 시험하는 듯 억울하고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게끔 하는 현실의 녹록지 않은 일들이 더러 있었지만 축구를 포기하고 배드민턴을 놓쳤을 때를 떠올리면서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온전히 즐기겠노라 다짐했다.




몸의 쓰임을 다하기 위해 춘 춤이었지만 다양한 사회관계 속에서 여과 없이 받아들인 나의 가치관을 비추어볼 수 있다는 것, 나의 기분 좋음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나만이 할 수 있는 '나다움'의 회복으로 이어졌고, 나는 점점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 체력을 키워야겠다는 것을 목표로 삼기 시작했다.


나에게 있어 그것이 바로 글과 춤이고 그것들을 대할 때 내 마음에는 다시 투명한 햇살이 내리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오늘은 일어나자마자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껏 춤추는 그림이 눈앞에 그려졌다. 흥에 겨워 홈트를 두 배로 했다.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마음으로 운동을 할 것이다. 벌써부터 행복해!




동생의 한 마디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니 믿을 수 없지만 어찌 되었든 글을 발행할 용기를 주었으니 무뚝뚝한 누나지만 오늘만큼은 고맙다고 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을 심어 가는 과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