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근황 like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방치해둔 노트북이라 그런지 낯설다.
글을 쓸 때에는 노트북이 익숙하다. 그 익숙함을 다시 찾기까지 4개월 정도 걸렸다. 그 감을 회복할 때까지. 무기력인지, 나의 자격을 의심하는 것인지, 글 앞에 내 사랑의 크기를 시험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자꾸 무언가를 의심하고 있었다는 감각만은 확실하다.
그 사이,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늘렸고, 단편 습작을 2편째 쓰고 있다. 다 채우지 못한 모닝페이지가 점점 쌓여가고 있다. 밀린 기록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미세하게 금이 가더라도 독서력만은 충만해져가던 어느 날. 척추는 더 이상 어떤 자세가 올바른 상태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게 휘어져가는 것만 같다. 내가 원하는 유연함이 이런 형태는 아니었는데.
비로소 노트북을 다시 꺼내기를 결심한 것은 그런 사실들을 직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노트북에 인덱스 케이스를 아무렇게나 붙이고 그대로 덮어두었고, 쓰다 만 메모는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졌다는 것. 그런 시기가 오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시 전원을 충전시키고 어지러운 상태를 정돈하고 책상 앞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밖에는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인덱스 케이스의 충격이 지속적으로 가해진 탓인지 Fn키가 제멋대로 켰다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네이버에 접속하니 대문에 파리올림픽에 대한 소식이 떴다. ‘다시 시작’을 누르는 동안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 참으로 기뻤다.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 되는 데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떤 이야기는 봇물 터지듯 갑자기 터져나온다. 내가 그동안 너무 세게 동여매고 있던 보따리가 알아서 느슨하게 해체되는 기분 좋은 느낌. 그동안 읽은 책은 내게 침묵하는 방법, 침묵하면서 마음의 소리를 듣는 방법, 사랑으로 다시 시작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방치하더라도 괜찮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를 충전시키고, 다시 책상 앞으로 앉기만 한다면.
여전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래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