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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혀님 May 27. 2018

퍽큐, 퍽큐 시네마

스프링 브레이커스, 2012

스프링 브레이커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Everytime을 부르는 장면.


석양이 지고 해변의 하얀 그랜드 피아노에 에일리언이 앉아 있다. 페이스가 떠나고 남은 세 여대생이 분홍 두건을 쓴 채로 총을 들고 다가온다. 엉덩이 부분에 DTF라고 적힌 트레이닝 팬츠를 입고 있다. Down To Fuck. 그러니까 한번 하자는 말이다. 에일리언은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들려주기로 한다. 지상의 천사가 전하는 뭔가 달콤하고 희망적이면서 영감을 주는 곡. 장총을 껴안은 여대생들이 석양을 배경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두 손에 들린 총이 하늘을 빙빙 돈다. 갑자기 이들이 두건을 쓰고 에일리언, 쌍둥이와 함께 모텔, 게임장, 결혼식에서 사람들을 습격하고 고문하는 컷이 끼어든다. 총구가 얼굴을 향한다. 에일리언의 얼굴에 달콤함, 희망, 영감이 감돈다.


  Spring Breakers


하모니 코린은 도그마 키즈였다. 모든 도그마 감독들이 자연스레 도그마 선언을 떠났지만 하모니 코린은 근거리에 남았다. 2009년 발표한 [트래쉬 험퍼스]만 해도 죽지 못한 도그마의 유령 같았다. 그런데 3년 뒤 [스프링 브레이커스]는 하모니 코린을 규정하는 것들을 짓밟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극도로 감각적인 미장센부터 비-도그마적이다.


도그마가 내세운 규칙 가운데는 피상적인 액션, 즉 살인, 무기 등을 다뤄선 안된다는 게 있다. 영화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던 도그마가 특수 효과를 지양하고 저예산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일 것이다. 하모니 코린은 도그마 이후에도 살인이나 무기 없이 충분히 삶이 가하는 폭력성을 스크린에 옮겨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관총을 갖다 달라"는 제목의 2011년 단편작 [Umshini Wam]부터는 조금 달랐다. 총을 장난스럽게 들고 입으로 기관총 소리를 낼 뿐이던 등장인물들이 끝내 그 총을 휘갈긴다. 총은 장난감이 아니었다.


[스프링 브레이커스]는 피상적인 액션의 과잉이다. 총이 깃발처럼 벽에 걸려 있고 총을 매개로 은유하는 오랄 섹스를 나눈다. 이 장면에서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피아노 발라드에 맞춰 총을 무구처럼 들고 춤추기까지 한다. 에일리언이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면 에일리언과 세 여대생 사이에 흐르던 긴장이 완전히 해소될 것만 같다. 낭만적인 선율에 빠지는 순간 슬로 모션으로 흐르는 무기의 폭력은 기대를 배신한다. 이 영화는 포르노가 아니라 누아르다.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용어가 있다. 퍽큐 시네마(fuck you cinema). 사이트 앤 사운드가 주창했다는데 지금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한국에서만 살아남은 사어다. 지난 세기말에 kino가 소개한 후 한국에서만 뭔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거나 대중을 불편하게 하는 영화를 아우르는 말로 쓴다. 마치 대중을 괴롭히려는 영화운동이나 집단이 있는 것처럼 영화를 왜곡한다. 하모니 코린을 두고 퍽큐 시네마의 선두주자, 악동, 거장이라고 정의 내리기까지 한다. kino는 이 영화들이 자신의 영역을 게토화한다고 했다. 하지만 김치패치된 이 용어는 어떤 이들의 도덕으로 맘에 들지 않는 영화를 게토에 가둬버린다.


이 영화는 남성의 시선 권력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게토에 갇혔다. 그런데 우습게도 미국 개봉 당시 많은 사람들이 분홍 두건을 쓴 여대생의 모습에서 Pussy Riot을 떠올렸다. 마침 Pussy Riot이 화제가 됐던 때였다. 물론 우연이었다. 이후 속편에 Pussy Riot이 출연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영화의 여성들도 남성의 권력을 빼앗고 겁탈하는 존재였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음악이 깔리는 장면은 강한 일격이었다. 


하모니 코린의 감독작으로는 처음 한국에서 개봉했던 이 영화는 퍽큐 시네마를 얘기하는 이들을 조롱하기에 알맞다. 제임스 프랑코를 갱스터로, 셀레나 고메즈를 비키니 걸로 만들어 잘 다듬어진 상업 장르 영화인 척 하지만 결국 강력한 퍽큐를 날린다. 감각의 발라드를 추다가 결국 총알을 난사한 후 우리의 뇌를 황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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