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입주날로부터 약 한 달이 지났다. 이쯤되면 잠잠해지겠지 했던 코로나 사태는 끝날 기미 없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특히 제주의 경우 4번 확진자 이 후 몇 주 째 확진 사례가 없어 불안감이 좀 사그러들 찰나 외국에서 들어온 도민/관광객에 의해 확진자가 7번까지 늘어났다.
과연 이 시점에 제주를 방문하는 게 맞을까?
며칠을 고민하고 결국엔 가기로 결정했다. 내가 코로나에 걸릴 위험보다 혹시 내가 무증상자이고 도내 감염원이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했다. 하지만 나는 4주째 재택근무중이기도 했고 동거인 외에는 이렇다 할 접촉자도 없어 내가 무증상자일 확률은 적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조심해서 다녀오자고 마음을 먹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장기 해외여행을 갈 때 가져가는 가장 큰 캐리어를 꺼냈다. 한쪽에는 그동안 제주집에 가져가려고 사서 모은 물품들을 넣고 한쪽에는 제주집에 두고 입을 옷과 신발을 넣었다. 나는 제주에 가면 평소 도시 생활할때 보다 되게 거지 같이 - 이 표현은 내가 아니라 동거인의 표현이다 - 입고 생활하기 최대한 편안한, 그래서 오래된 옷가지들을 챙긴다.
이것 저것 챙겼더니 동거인 옷가지를 넣을 작은 공간도 없다. 동거인이 황당해하며 캐리어를 닫고 들어보더니 역대급으로 무겁단다. 동거인의 벌개진 얼굴에 추가 수화물 비용을 피하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다.
김포공항이 한산하다. 평상시 같으면 공항버스를 타고 갔겠지만 시국이 시국이라 자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주차장 모든 곳이 '여유'로 표시 됐다. 카운터에 가서 수화물을 맡기니 무게가 거의 30kg 에 육박했다. 1인이었다면 추가비용이 나왔겠지만 우리는 2인이라 별도 추가비용 없이 수화물을 맡길 수 있었다.
기내에 빈자리는 없었다. 한산했던 주차장과 달리 기내 안 모든 좌석엔 승객이 있었다. 비행시간 동안 사회적 거리를 지키내기 위해 맨 끝열에, 화장실에서는 또 거리가 있는, 사방 대각선으로 예약 승객이 없는 자리를 미리 체크인해뒀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자리에 앉아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고 얼굴에 손을 대지 않았다. 잠이 오지는 않았지만 눈을 감고 있었다.
금방 제주에 닿았다. 비행기에 내려 큰 캐리어를 챙겨 공항을 나서려니 왠지 모를 눈초리에 소심해져서 얼른 차를 빌려 나왔다. 원래 루틴이라면 국숫집에 들러 한그릇 거하게 먹고 출발할텐데 왠지 찜찜해 그러지 못하고 집으로 출발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잔금을 치르고 부동산 중개비용 입금을 마쳤다. 몇 주간 계좌에 묶여있던 큰 돈이 제 갈 곳을 찾아가자 생활용품 구입비와 연간 예상 관리비가 딱 남았다.
넘겨 받은 현관 번호를 입력하고 집에 들어갔다. 나도 모르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했다. 두 달 전에 본 아담한 모습 그대로였다. 조금 쿰쿰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얼른 모든 문을 열고 환기를 시켰다. 보일러를 돌려 집안을 데우기 시작했다. 청소 도구를 점검하고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할지 사이즈를 재봤다. 동거인은 바닥과 물걸레질을 나는 찬장과 냉장고 청소를 맡기로 했다. 작은 집이라고 얕봤는데 역시 청소는 청소다.
청소를 얼추 끝내고 식탁 위치를 변경해본다. 벽을 등지고 앉는 구조를 45도를 돌려 벽에 식탁을 붙였다. 돌려놓으니 안정감이 있어 좋았다. 다음은 안방, 침대가 문 옆에 바로 붙어있어 자다가 잘못하면 여는 문에 코를 베일 것 같은 구조였다. 매트리스 위치를 방 중간으로 옮기기로 했다. 방이 작지만 이 구조에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잔잔한 꽃이불을 걷어내고 흰 침대 시트를 씌웠다. 지난 번 계약일에 미리 사서 넣어둔 토퍼까지 위에 얹으니 이 정도면 자는데 불편함은 없겠다 싶다.
거실에 나와있던 스툴을 방으로 들여놓고 그 위에 가져온 탁상용 스탠드를 올렸다. 불을 켜니 방안에 온기가 차는 것 같았다. 안방 커튼은 초록색 꽃무늬 시어 커튼과 회색 암막 커튼 세트였는데 안쪽 시어커튼를 빼버렸다. 방은 딱 잠자는 곳으로만,안방은 암막 커튼만으로 충분했다.
멤버들과 침구를 어떻게 사용할까 이야기를 했는데 각각 침구를 따로 쓰기로 했다. 침대 시트는 하나되 위에 까는 매트 커버 하나, 싱글 차렵 이불 2채, 베개 2개를 각각 3개씩 구매했다. 이용하는 멤버가 자기 침구로 교체하고 떠날 때는 자기 침구를 정리해 장에 넣어두면 다음 이용하는 멤버가 와서 본인 침구를 꺼내 쓰는 방식. 작은 방 붙박이장이 3개로 나뉘어있어 한 세트씩 넣어두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같은 공간을 함께 쉐어하니까 짐을 보관할 수 있는 곳은 최대한 나누기로 했다. 옷장부터 서랍장, 화장실 선반, 냉장고까지.. 냉장고는 공용이지만 따로 보관하고 싶은 식자재가 있을 때는 왼쪽 칸에 보관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오른쪽은 공용 영역이라 이 영역에 두었다면 누구든 먹을 수 있다는 룰을 만들었다. 촌스럽지만 집에서 가져온 견출지에 이름을 붙여 구분했다.
얼추 집을 정리하고 나니 집에 온기가 들었다. 너무 피곤해서 씻지도 못하고 언제 잠이들었는지도 모르게 쓰러져 잤다. 입주 축하 캔맥이라도 했어야 하는 건데..
어쨌든 진짜 제주도 우리집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