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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Nov 02. 2023

오늘도 안녕하시죠? 도토리를 훔친 다람쥐 자신을 껴안다

노랑과 주황의 단풍잎이 어우러져 마치 화사한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가을산은 아름답다. 뜨거웠던 여름 태양의 햇살이 가을 나무의 풍성한 열매로 열리고 나면 서늘한 바람이 어느새 언덕 너머에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단풍이 짙은 나무들 사이를 산책하다 보면 가끔 다람쥐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두리번거리다 서로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나는 반가워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다람쥐는 뻘쭘한 표정으로 금세 시선을 거두곤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지곤 한다.


만보기 기능이 마음에 들어 즐겨 이용 중인 한 인터넷 뱅크에서 가을 이벤트로 도토리 행사가 진행 중이다. 자신이 뿌린 도토리를 누군가 클릭해 주면 랜덤으로 1원부터 10원 사이 깜짝 금액이 적립되는 방식이다.

추석에는 보름달이었고 가을에는 도토리라니 그럴싸하다. 최근 새롭게 디지털 마케팅을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는 재미에 더하며 은근한 중독성까지 있는 이벤트라 더 관심이 간다.


하루에 최대 얼마나 벌 수 있을지 궁금하여 피드(만원 입금)를 올리고 손가락이 아플 정도록 계속 클릭하다 보니 5시 30분 기준 13,286원을 벌었다. 매일 이자 받는 정기 예금 계좌에 천만 원을 넣었을 때 하루에 470원 정도(연 2% 기준)라고 하면 28.3일분, 대략 한 달의 이자를 하루 만에 번 셈이다. 가끔 도토리를 훔쳐가는 다람쥐가 있었지만 노력 대비 나쁘지 않은 수익이다. 


최근 투자했던 미국 반도체 ETF나 엔화가 연일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좌절 중이다. 한때 매일 수익을 낼 수 있다며 '투자에 숨겨진 소질이 있지 않나' 하는 망상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시기다. 


투자에는 정답이 없다. 수많은 참여자들의 욕망과 탐욕, 그리고 거대 자본의 보이지 않는 손에 더해 예측 불가능한 대외 변수까지 더해진 시장에서 도토리는 다람쥐가 차지하기 쉽지 않다. 이것은 곰과 다람쥐의 싸움이다.


무엇이든 눈에 띄는 대로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탐욕스러운 곰 앞에서 다람쥐의 도토리 훔치기는 순전히 운의 영역이 된다. 도토리를 입안 가득히 물고 달려가 자신만의 공간에 숨겨두기 전까지는 다람쥐의 마음은 초조한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다람쥐를 보다 보니 지금의 나와 비슷한 처지인 듯하여 공감이 된다. 무언가를 훔쳐야 한다는 것은 삶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식물의 과실을 먹어야 하고 동물의 살을 취해야 한다. 항상 무언가의 희생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을 수밖에 없는 생명의 숙명이다. 그 와중에 타인과 경쟁까지 해야 하니 자신의 유전자를 남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위대한 과업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철학과 종교는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외부에서 무언가를 훔쳐야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자본주의만 한정해 보더라도 나의 자산은 사실 타인의 부채, 즉  남의 '빚'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는 돈이 어디에서 오는가에 관한 <은행 지급 준비율>의 개념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곰과 호랑이가 우글 대는 산속에 사는 다람쥐에게는 맹수들과의 정정당당한 대결 따위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허락되지 않았다. 도토리를 훔치는 것은 생존의 방식일 뿐 원죄가 아니다. 


그러니 다람쥐는 당당해져야 한다. 만약 다람쥐가 덩치가 우람한 곰과 경쟁하고자 한다면 그저 비참해질 수밖에 없다. 


다람쥐는 스스로와 비교하며 뿌듯함을 가져야 한다. 오늘도 도토리를 훔치느라 수고한 자신을 껴안아 보자. 


이벤트로 받은 돈으로 도토리묵이라도 사 먹어야겠다.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그리고 나아질 나와 당신을 위해 오늘도 축배를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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