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고등 생물에는 DNA에 새겨진 고유한 생명의 시간이 있다. 침팬지의 생물학적 수명이 약 39.7년인데 비해 인간은 명은 약 38년에 불과하다. 현대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3.5세에 이른 것은 발달된 의학과 생활양식의 변화에 의한 축복(혹은 저주일지도)이다.
시간은 생물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절대 권력이다. 그리고 중년에게는 노화라는 변화를 가져다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기도 하다. 생명은 왜 시간에 종속되어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인가?
III. 시간의 비가역성과 엔트로피 증가 법칙
공간은 여러 방향으로 이동 가능한 반면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쭉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1차원이라는 특징이 있다. 영국의 천체 물리학자 에딩턴은 '시간의 화살(arrow of time)'이라는 표현으로 비대칭성 개념을 제시하였다.
3차원 공간에 시간이라는 1차원이 더해진 4차원의 세계에서 계단을 오를 수는 있지만 시간 이동은 불가능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서로 밀접한 관계로 이어져 절대 떨어질 수 없는 부부처럼 변화를 함께 한다. 공간이 n차원으로의 확장성과 질량을 포함해 온갖 물질로 채워져 있는데 반해 시간은 아무것도 없다면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 연인관계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간이 미래로만 흐르는 것처럼 인식되는 이유는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과 관련이 있다. 무질서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가역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현실 세계에서는 노인이 어린이가 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생명은 항상성(homeostasis)을 통해 내부 최적화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면 죽음에 이르기에 끊임없이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아들여야 생존할 수 있다. 즉 생물 개체로만 범위를 한정하면 엔트로피 법칙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음 이후에야 온전히 썩어서 자연 질서에 순응하게 된다. 다만 우주라는 전체 계에서 보면 생명이 살아가면서 에너지를 흡수하고 배출하는 일련의 과정 또한 무질서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한정된 공간과 시간에서 일어나는 작은 반란일 뿐이다.
왜 생명은 무엇을 위해 굳이 엔트로피 법칙을 위반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단순히 자신의 유전자를 퍼트려 번식하기 위해서라면 감내해야 할 희생과 고통이 작지 않다. 외부의 에너지를 투입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해야 하고 고통이 따른다. 최근의 저출산은 이런 괴로움을 줄이기 위한 인류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의 단방향성은 인과율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다. 수학적으로는 x라는 원인이 입력되면 y라는 결과가 나오는 함수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시간은 1차원 직선으로만 흘러가기에 결과는 잠정적으로 예측 가능하다. 만약 시간이 n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어 가역적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우리는 미래를 기억하며 현재를 추억하게 되어 현재 방식으로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시간에 거슬리면서까지 더 오래 생명을 유지하려는 욕망은 은연중에 더 많은 시간의 비밀을 밝혀 내기를 추구한다. 시간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며 속도에 비례해 늘어날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
만약 수명을 연장하고 싶다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이동하는 우주선을 타고 떠나면 된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우주선에서 시간은 빛의 속도에 근접할수록 거의 0에 수렴하여 멈추게 된다. 진시황이 갈구했던 늙지 않는 불로장생의 비밀이 바로 <광속 우주선>이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속도가 광속에 가까워질수록 질량 또한 무한대로 수렴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시간이 1차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n차원의 시간이 존재하지만 너무 작은 미시적 세계에 숨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양자의 세상에서는 시간 이동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째서 현실에서 n차원의 시공간이 3차원 공간과 1차원의 시간으로만 우리에게 인식되는 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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