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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Nov 16. 2019

당신도 하는 일

1910

당신도 하루에 한 번씩 혹은 이틀에 한 번씩 하는 일이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도 간단히 해결하는 사람도 있고, 약물이나 건강보조제, 운동처럼 무언가로 도와주지 않으면 조금 어려워하는 부류도 있다. 혹은 너무나 활발하여 가끔 혼자서 곤혹스러워하는 경우도 왕왕 보아왔다. 조심스레 언급하자면 나 같은 경우 여행이나 갑작스러운 외박 등 환경이 바뀌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항상 유산균 제재를 상비하는 편이다. 그것이 무슨 일인지 굳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겠다.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가만히 누워만 있다. 엉덩이가 배길 때쯤 뒤척이는 정도가 오늘 했던 운동의 전부이다. 이마저도 진정제 따위로 움직일 수 없었을 때와 비교하면 많이 움직이는 편이다. 더군다나 호흡이나 혈압처럼 훨씬 중요한 문제들이 산재해있기 때문에 입실 초반엔 우선순위에서 엄청나게 밀린다. 전반적인 치료가 무난히 이루어져 이런저런 수치가 정상에 가까워질 무렵 속 깊은 문제가 슬금슬금 들이닥친다. 

‘무변 며칠 째입니다’라는 소리에 의료진은 심도 있는 고민을 한다. 시원하게 관장을 할 수도 있다. 사실 그전부터 소화와 배변 활동에 좋은 약들이 정기적으로 복용되고 있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들이 훨씬 많다. 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완화제를 투여하기 시작한다. 그런 노력 끝에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생리적으로 배출되어야 하는 것들이 비로소 세상 밖으로 빛을 발할 때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무언가 시원한 쾌감이 있다. 비록 내가 대신해준 것이 아닌데도. 


그렇지만 말이다. 누워있는 사람의 심정이 우리만큼 시원할까 하는 물음을 이 타이밍에 늘 지울 수 없음이다. 어찌 보면 배변을 당하는 것 같은 부분도 있다. 말짱한 정신으로 침대에 누워 그것도 기저귀를 찬 채로 일을 보라고 한다. 아기 때 차본 적은 있겠다. 혹은 자신의 자식들에게 채워본 기억이 있거나. 게다가 배변을 심하게 돕는 약들 때문에 이건 참을 수도 없이 나올 것 같다. 일단 입실 이후 며칠 만에 처음 일을 보는 환자들은 타인에게 배설물을 내보여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심지어 그 양 마저 상당해서 결과물을 보고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한탄을 한다. 무엇보다 끝없이 부끄러워한다. 배는 시원해졌는데 마음엔 상처가 가득해 보인다. 


띵동, 하는 콜벨 소리부터 조심스러움이 느껴질 때가 있다. 한껏 모아진 눈썹부터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표현하는 중이다. ‘죄송해요...’라고 보드에 조심스레 쓰는 환자도 있었다. 부산을 떨며 말이 많아지는 부류도 있다. 아예 언급을 하지 않고 현실을 도피하는 경우도 있다. 정말 다양한 방어 기제가 펼쳐진다. 사실 대변이 죄도 아닌데!

역으로 정말 미안하지만 우리도 사람인지라 나도 모르게 윽, 하는 소리가 새어 나올 때도 있다. 양이 엄청나거나 차고 넘쳐서 시트까지 바꿔야 하는 경우에 주로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데 그나마 환자가 아직 의식이 없을 경우에는 죄책감이 덜 하다. 하지만 정말 또렷한 환자의 눈 앞에서 실수 아닌 실수를 할 경우 서로 너무나 민망하다. 환자의 심정은 말할 것도 없고, 치우는 입장에서도 미안하면서 어색해서 거대한 침묵 안에서 일을 처리한다. 당분간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이 기류는 아마도 다음 날 출근 즈음 그나마 희석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도 뒤끝은 존재한다.


어떡하면 보는 사람이나 치우는 사람이나 덜 민망하고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모두의 대응 방식은 제각각이다. 이 환자는 농담처럼 쿨하게 치워주는 것을 좋아한다. 저 방의 환자는 절대 재언급을 안 하는 것을 선호한다. 간호사 또한 조용히 말끔하게 치우는 간호사, 이 민망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살려보고자 되지도 않는 농담으로 아이스 브레이킹을 시도하는 간호사도 있다. 어쨌든 서로 무한대로 민망하고 어색한 느낌은 아마도 우리의 배변 활동이 사라질 때까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나마 정말 드물게 매우 뻔뻔한 환자가 꼭 있어 심적인 절충이 된달까. 대체로 누가 있거나 없거나 찰흙 같은 것을 빤히 드러내고 어서 치우라고 성을 내는 방식이다. 그럴 때는 정말 모든 간호사들은 숙달된 방식으로 쓱 치우고 피부보호제까지 도포하고 상쾌한 방향제까지 야무지게 뿌릴 것이다. 유일하게 사무적으로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조건이랄까. 닦달과 부침은 있을지언정 적어도 서로 민망함은 없을 것이므로. 


괜찮아요. 사람이 하루에 한 번씩 일은 봐야죠. 안 보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나요? 그래도 시원하셨죠? 저 이거 월급 받고 매일 하는 일이에요. 그러니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전혀. 아드님이 대변 일주일째 못 봤다고 걱정 많으시던데 이따 면회시간에 좋아하시겠는데요? 더 보실 것 같지는 않나요? 혹시나 보시면 기다리지 마시고 바로 알려 주세요. 안 그러면 엉덩이가 많이 상해요. 부담스러워하지 마시고요. 참지도 마시고요. 자연스러운 건데요, 뭐. 저도 아까 출근 전에 한 번 누고 왔답니다. 후후. 그런 의미에서 내일도 힘차게 한 번 내보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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