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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셀린 Nov 16. 2019

물고기 자리

1911

네가 너에게 잘해주었던 이유는 딱히 네가 죽은 내 동생을 닮아서는 아니었다. 내 동생은 턱이 강인하고 눈매가 서글서글하였으며 무엇보다 참을성이 좋은 편이었다. 내가 맞닥뜨린 너는 바싹 마른 몸에 어두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요구사항이 무척 많았다. 기관삽관을 한 상태였음에도 쥐어준 종이에 네가 궁금해하는 것과 당장의 필요한 것들을 정말 빡빡하게 적어댔다. 나를 비롯한 다른 간호사들은 바쁜 업무 중에 너의 요구를 곤란해했지만 그래도 어지간한 것들은 별 말없이 들어주곤 했다. 유전적 질환 때문에 어려서부터 병원 턱이 닳도록 오갔던 너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좌우간 네가 내 동생을 닮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어.

어렵게 인공기도를 발관했을 때도 여전했다. 너는. 하루에 꼭 두 번씩 사십 도가 넘게 네 몸이 열을 내었음에도 해열제가 싫다고 분명히 말을 하곤 했다. 그 약이 들어가면서 열이 후드득 떨어지며 오는 오한이 끔찍하다고 했다. 아아. 기관삽관을 하고 두 손이 신체 보호대에 가지런히 안착했을 무렵, 너의 땀이 쇄골에 고였던 장면이 기억이 났다. 네 몸을 감싸던 모든 드레싱 제품들이 다 떨어져 나갈 정도로 소변보다 더 많은 땀을 그렇게 내던 너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헉헉 대는 네 숨소리와 바들바들 떠는 것처럼 뛰는 네 심장박동에 해열제는 중간중간 투여되곤 했다. 견디고 견디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순응하던 너의 안경 너머 눈빛은 참으로 침착했다. 그러고 나면 너는 두어 시간 기절하듯 잠을 잤다. 열을 내느라 소진했던 체력을 그런 식으로 보충하는 듯했다. 점점 정상 범위로 들어오는 심박동과 체온을 보며, 그리고 편안하게 눈을 감고 수면을 취하는 너의 눈썹이 실은 내 동생을 꼭 닮긴 했더랬다. 단지 눈썹만 말이다.

그러다 눈을 뜨면 버릇처럼 보리 물을 찾곤 했다(네 어머니가 가방 가득 시판되는 보리 물을 채워주고 면회를 마무리하곤 했다). 병의 길이와 빨대가 어중간하여 마시기 불편해하던 게 마음에 걸려 플라스틱 뚜껑에 작은 구멍을 내어 주었다. 그곳에 빨대를 바싹 꽂고 눈을 반짝이며 고마워하던 네가 있었다. 우연찮게 발견한 네 왼손 약지 안 쪽에 새겨진 물고기 무늬의 문신이 있었다. 혹시 물고기자리냐고. 생일이 3월이냐고. 그래서 이렇게 예쁘게 새긴 거냐고 물었다. 단번에 알아챈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며 함박꽃처럼 너는 웃었다. 이것을 새기고 집에 간 날, 아버지한테 정말 맵게 혼이 났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아마도 면역력이 거의 없는 네가 문신 때문에 생길지도 모르는 감염의 위험성 때문에 그렇게 불 같이 화를 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전하진 않았다. 이미 너는 알고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너는 꼭 새기고 싶었으리라. 사는 데 있어서 무엇이라도 흔적을 남기고 싶은 무의식적인 심정이었을 것이다.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해주었다. 두 번이나. 그러고 보면 내 동생도 문신을 하고 싶어 했었지. 너처럼 실행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너는 내 동생을 닮지 않았다는 거야.

하루에 적어도 열 번 정도 너는 설사를 했다. 심할 땐 기저귀가 찰랑거릴 정도였다. 그때마다 안 그래도 습자지 같은 피부가 상할까 피부보호제를 두텁게 발라주고 착색되는 변까지 닦아주는 세정제를 넉넉히 챙겨주며 나중에 병동에 올라가면 이거 꼭 쓰라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네가 굉장히 마음에 들어해서 세 통 정도 쟁여두었는데 너는 끝내 다 쓰지 못했지.
 큰 일을 보면 참지 말고 바로 말을 하라고. 안 그러면 금방 피부가 상한다고 했더니 잘도 알아듣고 늘 매끈한 엉덩이를 유지하던 너였다. 미친 애 널 뛰 듯하는 고열과 빨라지는 심박동 속에서도 허리를 바짝 들어 조금이라도 우리를 도와줄 때도 있었다. 손이 많이 갔지만 나는 싫지 않았어. 내 동생도 손이 많이 갔었거든. 양말을 안 챙겨주면 맨발로 운동화를 신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 가곤 했으니까. 밥을 안 챙겨주면 그대로 굶기도 했었어. 왜 안 챙겨 먹냐고 하면 그저 멋쩍게 웃어넘기곤 했지. 그래도 그래서 널 챙겼던 건 아니야.

이틀을 쉬고 왔더니 네 자리가 비어있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어. 동료 간호사들이 전해주길 기관삽관 전에 나를 찾았다고 했다. 그 후로 너는 내리막길처럼 나빠졌지. 그렇게 나는 너의 마지막을 곁에 있지 못했어. 네가 삶을 마감하고 있었을 그 순간 아마 춘천에서 닭갈비를 먹고 있었을 것 같다. 내 동생이 마지막 숨을 내뱉고 있었을 때에도 나는 전철 안에서 졸고 있었어. 나는 너희 둘 다 그렇게 되라리고는 상상도 못 했다. 무심하게 떠난 것, 그거 하나는 둘이 닮았구나.

내 동생이 세상을 떠난지는 15년이 지났다. 너는 내 동생과 닮지 않았어. 다만 같은 나이에 삶을 등졌지. 그래서 잘해주었던 것은 아니다. 이렇게 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 동생은 손바닥에서 독특한 채취가 났어. 네 손가락의 물고리 자리처럼 파닥거리는 냄새였지. 지금 네가 어디에 있던 신선하게 날뛰는 생선처럼 생명력이 넘치길 빈다. 내가 아플수록 더욱 도드라지던 문신처럼 몹시 선명하게 빛나길 빈다. 이젠 더 이상 좁은 병실이 아니니까. 우주보다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길 빈다.

그리고 아프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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