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셀린 May 22. 2020

소금 볶음밥

2005

지금도 잠귀가 예민해서 가끔 어머니댁에 묵을 때 새벽에 물이라도 마실라치면 분명히 깼다는 것이 느껴진다. 아주 조용히. 발걸음도 도둑고양이처럼 살랑살랑 딛었는데도. 이 여자, 또 깼다. 유난히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낸다든지 아니면 아예 벌써 일어났냐고 묻기도 한다. 아니오, 어머니. 저 물 마시러 나왔어요. 더 주무세요. 그러고 시원한 물을 들이켜고 얼른 내 방으로 들어온다. 나는 이내 잠을 청하지만, 아마도 건너 방에 있는 여성은 그대로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아이고, 어머니.

그러고 보니 매번 어버이날마다 나는 순진했던 것 같다. 그 날 아침마다 나는 음식을 했다. 뭔가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었겠다. 용돈 따윈 없어서 뭔가 사드릴 여유도 없었고 마침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어머니가 어떤 음식을 할 때 지켜보고 있으면 이런저런 요령을 알려주기도 하고 김장을 하는 것도 구경하다가 양념도 같이 버무리고는 했으니까(그래서 지금도 국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삶아낸다. 라면은 맨날 싱겁지만).

처음 시작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볶음밥을 엄청 좋아해서 맨날 반찬과 맨밥만 있으면 볶아댔다. 그러다 보니 찬밥 그대로 볶아야 고슬고슬하게 익는다는 것을 알았고 어버이날 아침도 무언가 맛있게 볶아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날은 유난히 식재료가 없었다. 전 날 몰래 사둔 소시지랑 달걀 정도(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어머니는 주말에 장을 크게 볼 계획이었을 것이다). 일단 촉박해져 오는 시간에 마음이 초조해져서 일단 팬을 달구고 기름을 둘렀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김밥을 할 때가 생각났다. 참기름에 깨소금만 쳐도 고소한 그 밥. 그래, 이거다 싶었다. 찬밥을 덜어내고 강한 불러 갈군 팬에 볶아댔다. 치치, 소리를 내었다. 밥에 소금을 쳤다. 아주 살짝 간간해야 맛있다. 군데군데 노르스름하게 밥이 볶아졌다. 뿌듯했다. 괜히 맛있어 보였다. 깨소금은 어딨는지도 몰랐고 참기름은 이미 잊어버렸지만. 뒤이어 소시지를 어슷 썰어 부쳤다. 달걀 프라이는 반숙으로 하려다가 노른자가 터져서 그저 그런 모양으로 완성되었다. 마치 호텔 조식 마냥 널따란 접시에 밥을 덜어 주걱으로 꾹꾹 누르며 모양을 내고 소시지를 담고 흘러내리는 모양으로 부쳐진 달걀을 옮기고는 케첩으로 하트를 그려가며 멋스럽게 마무리를 하였다.

똑똑, 노크를 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세수라도 할 걸. 머리는 새집처럼 만들어 놓고 목이 늘어진 잠옷을 입은 채 어머니를 깨웠다. 당시 나는 까맣게 몰랐지만 분명 어머니는 자는 척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잠귀가 그렇게 밝은 사람이 주방에서 온갖 난리를 치는데 자고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기지개를 켜며 밤새 잘 잤다며 이게 무슨 맛있는 냄새냐고 했다.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아침밥을 준비했다고 얼른 드시라고 했다. 어머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식탁에 앉았고 ‘맛있다!’를 연발하며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나는 어머니가 늘 잘 주무시는 줄 알았고, 내가 그대로 요리사가 되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몇 년 후 성인이 되어 주방 아르바이트를 두 달 하곤 완전히 정이 떨어졌고 지금은 간호사를 하고 있지만.

  (지금은 코로나 덕에 어렵지만) 면회를 와서 늘 묻는다. 두 손을 꼭 잡으며 인공호흡기 때문에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기대하며, 우리 어머니, 아버지 괜찮으시냐고. 아프지 않으시냐고. 그러면 그들은 열에 아홉은 괜찮다고, 어제보다 훨씬 낫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대답한다. 정말 나아졌다고, 의외로 견딜 만하다고. 맛있다고, 소금밖에 안 들었지만 정말 맛있다고 한다. 하지만 딱히 괜찮지 않다는 것을 자식들도 알고 심지어 담당 간호사가 아닌 나까지도 알겠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웃는지 우는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다시금 두 손에 힘을 준다. 뒤돌아 우는 보호자도 가끔 있다. 애써 단단하게 잡은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다. 어렸을 적 나는 깜빡 속았지만 그들은 속지 않는다. 소금 볶음밥은 맛이 없다. 싸구려 콩기름 냄새에 그저 짜기만 할 뿐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던 것은 배려이자 추억이지만 서로 아는 데도 애써 모르는 척하는 것은 그저 슬픔이다.

요즘 아니, 원래 어머니는 자는 귀도 밝고 맛없는 건 입에도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더구나 아침밥은 거르는 스타일이었다. 심지어 이 여자, 나이가 들수록 옷 고르는 취향도 까다로워지고 애용하는 화장품은 점점 비싸진다. 넌지시 소금 볶음밥이 기억나느냐 물어보고 싶다. 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는다. 맛있었을 것이므로. 나는 또 속을 예정이므로.

작가의 이전글 치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