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렁각시

인생 노트 1

by 단심

엄마는 호스피스에 들어갈 때, "인생 노트"라는 공책을 하나 챙겨갔었다.

항상 머리 맡에 두다가

엄마가 섬망이 심해지고서는 깊은 사물함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집근처 종합병원으로 옮기고서야 엄마의 인생노트가 내 손에 펼쳐지게 되었다.

언제 썼는 지 물어볼 수도 없는 엄마를 두고, 나는 한참을 울었다.


"인생 노트"


67년생 임연자

나는 우렁각시.

어렸을 때의 추억은 누구나 한가지 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 임연자, 초등학교를 다닐 때도 동생들을 돌보아야 했기에 동생을 등에 업고 수업을 받으러 가야 했다. 동생이 실례를 하면 담임 선생님이 기저귀도 갈아주고 안아 주기도 한 덕에 무사히 초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난 그때부터 세상에는 참 고마운 분들이 많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그들에 대한 감사 표현을 못하고 살았다.


아버지가 가족을 돌보지 않아 나의 엄마가 참 고생을 많이 하셨다. 새벽 1시에 기상해서 김 생산을 위해 모든 식구가 부지런해야만 했다. 토요일, 일요일은 항상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는 TV가 없어 남의 집으로 보러갔다. 특히, 태권V 가 제일 인기가 많았다.


난 언니가 일찍 직장생활을 하러 갔기에 늘 큰 언니 역할을 하고, 식사를 챙기고, 동생들을 챙기고. 어쩌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동네 입구부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들어오면 우린 숨바꼭질하듯 숨어야했지.


중학교 졸업하고 시골 살림이 한계가 있어 언니 따라 성남으로 인형공장에 취직해서 1년 고생하고 나서 고등학교를 보내준다 해서 반장도 해보고 열심히 했지. 드디어 성일여자상업고등학교 1학년에 입학. 난 아침 8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 후 6시에 야간 고등학교 수업 받고 10시에 마치면 주판학원을 다녔지. 그때는 그게 유행이면서 꼭 따야 했기에 한자도 중요했어. 하지만, 잠이 한창 많은 나는 끝까지 성공을 못하고 중간까지만 노력했어.

대신, 책은 꼭 읽었어.

왜냐고?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서.

3년 졸업하고, 잠깐 회사를 다니다 퇴사했는데 친구를 잘못 만나 방황하는 시기가 되어버렸지. 혼자서 이리저리 직장을 찾아다니며 무서워했지. 그러다가 성남전자에 입사해서 또 열심히 살았지. 조장도 해보고, 노조 위원회도 해보고, 이사들 간부들과 식사도. 나이트클럽도 가보고 말이야.

어느덧 사회생활이 지겨워져서 선보고 시집이나 갈 생각으로 선도 많이 봤었어. 그러다, 이시우 라는 사람을 소개받게 되었지.


93년 1월 24일 설날

우리는 가족들과 한자리에 만나 서로 간에 인사 나누기까지 과정이 참 묘했지. 만날 장소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길래 버스타고 가려는데 누가 나를 부르는거야. 뒤돌아보니 동네 언니가 찾으러 온거지. 그래서 다시 약속 장소로 갔어.

조금 있으니 문쪽에서 멋진 남자가 걸어 들어오는데

잠바는 단추 안끼우고

구두는 구겨서 신고

잠자다가 금방 일어난 사람처럼 머리를 부시시.

그치만, 그때는 어려워서 얼굴도 못들고 곁눈으로 봤지.

어른들한테 인사하고 다시 따로 가서 둘만의 시간을 가졌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편해지면서

“아, 이 사람이다.” 느낌이 딱 오는거야.

그때부터 1달에 1번씩 데이트 하다가 5월 21일 퇴사하고 시골로 귀농 아닌 귀농을 했지.

신랑이 얼마나 좋으면 나의 살림살이를 친정 마당에다 내려두고 신랑집으로 와 버렸당께.

지금 생각해보면 친정 엄마랑 한 시간도 같이 이야기도 못하고 온 것이 엄마한테 큰 상처를 주고 온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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