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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Sep 07. 2021

헤클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헤클러에 대하여 2편

    몇몇 마술인들은 헤클러를 마치 지진과 해일과 같은, 어떤 자연재해와 같이 생각한다. 피할 수 없고,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타나서 나의 세계를 뒤집어놓으려는 힘. 그들에게 헤클러는 공연자가 통제할 수 없는 존재다. 길거리에서 카드 마술을 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불어온 돌풍처럼.


    만약 헤클러의 등장을 예방할 수 있다면?

    악의를 품은 어떤 인물이 마술 공연 중인 당신에게 다가와 무례를 저지르기 전에 그걸 막을 수 있다면?


    오늘의 주제는 헤클러의 출몰 원인과 예방법이다.




모두가 원래부터 헤클러는 아니다.


    헤클러가 마술을 방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편에서도 이야기했듯, 헤클러가 마술을 방해하는 이유는 관심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거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보자. 단순히 관심을 얻기 위함이라면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얻을 수 있을테다. 선행을 통해 세간의 관심을 받은 의인들이 여럿 있다. 그럼에도 헤클러는 관심을 얻기 위해 공연자를 적대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헤클러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라고 답할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이 원래부터 '악인'이고 마술사는 피해자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문제점에 대해 다른 사람의 탓만 하는 것은 지나치게 쉬운 결론이다. 나쁜 건 그 사람이고, 나는 하나도 잘못하지 않았다는 생각은 달콤하지만, 궁극적으로 나 자신의 성장을 저해한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 중 일부는 단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마술사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는 것은 마술 공연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너무 어려서 그것이 무례한 행동이라는 걸 모를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우선 알려주어야 한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그때 헤클러라고 불러도 늦지 않다.


    질문을 바꿔보자.'헤클러는 어떤 이유로 내 마술을 방해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 가 아니라, '내 마술의 어떤 부분이 헤클러로 하여금 마술을 방해하도록 만들었을까?' 자신은 단순히 마술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 어떠한 악의도 없었다고 해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의도는 없었다 해도 상대방에게는 충분히 의도가 느껴질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다양한 원인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예시 하나를 소개한다. '(관객에게) 도전하는 태도'다.




네가 먼저 시비를 걸었잖아!


    ' 도전하는 태도'. 이는 책 [스트롱 매직]에 등장하는 개념으로, 마술사가 나서서 관객과의 대결 구도를 만드는 진행 방식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시를 들자면, '어떻게 이걸 못 보지? 다시 한 번 보여드릴 테니까 이번에는 잘 보세요.' '이러면 좀 더 쉬운 걸로 해야겠는데?' 숙련된 마술사는 도전하는 태도를 적재적소에 활용해서 관객과 다채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많은 마술인들은 이를 잘못 사용해서 관객과의 사이를 나쁘게 만든다.


    만약 여러분이 마술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마술사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사람이 마술을 보여주겠다더니 대뜸 자신을 조롱하고 농락한다. (또는 그런 것처럼 느껴진다.) 누구도 그런 상황에서는 마술사에 대해 호의적일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그는 마술을 방해해서 당신을 역으로 조롱하고 싶어진다. 평범한 관객이 마술사의 실수로 헤클러가 된 것이다. 자신의 실수를 의식하지 못한 마술사는 아마도 '헤클러를 또 만났군. 한국인들은 역시 마술을 즐기지 못해!' 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는 명백한 마술사의 실수다. 마술사는 본질적으로 관객을 속이는 위치에 있으니, '속이려는 사람 vs 속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대립 구도는 당연하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마술사와 관객의 관계는 결코 대립 관계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른 장르와의 비교가 필요하다.




우리 대체 무슨 사이야?


    가수는 무대에서 관객들과 노래를 통해 소통하고 배우는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과 소통한다.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작품을 먼저 내놓고, 사람들은 그것을 즐긴다는 점이다. 하지만 마술의 경우는 마술사가 먼저 작품을 내놓을 수 없다. 마술이 마술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객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뛰어난 마술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관객들이 우리를 위해, 마술을 함께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후안 타마리즈의 책 [매직 웨이]를 소개한다. 이 책에서는 마술사의 역할을 관광 가이드라고 소개한다. 마술사는 관객과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옆에 나란히 서서 함께 걸어가는 동반자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들은 '마술의 길(매직 웨이)'을 함께 걸으면서 마술의 아름다움이라는 종착점을 향해 걸어간다. 여기서 마술사들의 역할은 관객들이 잘못된 길로 빠져 '마술의 길'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마술사와 관객의 관계는 다른 장르의 공연과 많이 다르다. 마술은 음악이나 영화와 달리 무대와 객석이 분명하게 구분되어있지 않다. 특히 취미로 마술을 하는 사람들의 마술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우리의 마술이 관객들에게는 그저 일상적인 대화의 연장선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한 걸음 더 물러나서, 더욱 큰 그림을 그려보자.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보자. 여러분은 지금 상대방과 친해지고 싶다. 그 사람의 호의를 얻고, 호감을 얻고 싶다. 이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까? 사람마다 다양한 답변이 있겠지만 시작점은 분명 모두 똑같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관심을 갖지 않고 그 사람과 친해지기란 불가능하다. 마술사 역시 관객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을 가지라는 말이 일부러 궁금하지도 않는데 질문하라는 뜻이 아니다. 관객에게 질문을 해놓고 답변을 제대로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면 그 마술사는 관객에게 관심이 없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마술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을 붙들고 억지로 마술을 보여주는 길거리 마술사를 본 적이 있다. 만약 그가 관객에게 관심을 가졌다면 그는 금세 관객이 불편해하고 있다는 걸 느끼고 마술을 중단했을 것이다. 그는 마술과, 마술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갖고있었다. 어떤 관계든 상대방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관계는 끝이 좋지 않다.




사람 대 사람으로


    다시 헤클러 이야기로 돌아와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는 어떤 경우에 다른 사람과 적대할까? 상대방이 내게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나를 이용하고 있다면, 당연히 나는 그 사람에게 적대적인 감정이 들지 않을까?


    헤클러의 예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내가 먼저 관객에게 헤클러, 즉 방해꾼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마술의 중간 중간 관객을 놀리는 사람들도 있다. 예민하고 민감해져야 한다. 관객의 심기를 건드릴 지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제거하는 것이 좋다. 유머랍시고 집어넣은 부분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무례하게 들릴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단순히 마술사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마술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들은 마술사가 막을 수 없는 헤클러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헤클러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마술사의 좋지 않은 태도로 인해 헤클러가 되었고, 그것의 책임은 마술사에게 있다. 사람 대 사람으로 접근해야 한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상대방도 그에 응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 믿어야 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헤클러일 수 있다.


    취미로 마술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람들에게 호의를 얻고 싶어서, 그들과 잘 지내고 싶어서 마술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마술의 트릭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오히려 자신이 마술의 비밀을 알고있다는 사실에 취해 관객에게 자신도 모르게 우월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거울을 들여다보자. 우리 자신에게서,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는 방해꾼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가?


    마술인들끼리 마술을 보여주다보면 가끔 그런 상황이 있다. 자신이 할 마술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지금 마술을 하고 있는 사람의 마술에 집중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가끔 자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저지르기도 한다.


    성경에 실린 구절 중 하나를 소개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논어에도 비슷하지만 다른 구절이 있다.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慾 勿施於人)' 해석하자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비슷하다.




    마술은 분명히 인간관계에 대한 훌륭한 가르침을 준다.


    그 가르침이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애정을 가질 때 진정한 마술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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