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H는 누구인가
PH, 마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혹여나 그를 모르는 이들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을 덧붙이자면 PH(본명 이재훈)는 대한민국의 유일무이한 마술 크리에이터이다. 그는 독특하게도 자기 자신을 마술사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오로지 '새로운 마술을 만드는 사람'에만 두고 있으며, 자신을 소개할 때도 '마술사'가 아니라 '마술 크리에이터'라고 말한다.
마술 크리에이터 PH (출처 : projectbimil.com, BLIND FLAP)
지금까지 새로운 마술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대부분은 마술사로 활동하면서 새로 만든 트릭과 기법을 제품으로 판매하는 경우였다. 그러나 PH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마술 크리에이터라고만 지칭하며 마술을 실제로 보여주고 공연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사람은 공연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웬만한 마술사들 저리 가라고 할 정도로 손기술을 잘 쓴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가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었을 때 찾아가서 마술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그에게 "마술공연하는 부캐를 만들 생각은 없나요?" 라고 물어보았다. 당연히 답변은 "NO"였다. 그때 나는 어떤 유명 마술사의 한 가지 격언을 떠올렸다.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의 30%만 보여주어라."
2. PH는 어떤 마술을 만드는가
그가 만들어서 세상에 내놓는 마술은 사람을 공중에 띄우거나 절반으로 자르는 등등 엄청난 규모의 무대 마술이 아니다. 그의 작품의 대다수는 가까이에서 하는 마술, 이른바 클로즈업 마술에 해당한다. 그의 특징을 세 가지 키워드로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시각적이다. 짧다. 새롭다.
PH의 마술은 하나같이 무척 시각적이다. 카드의 문양이 다른 문양으로 둥둥 떠서 이동하는가 하면(척애) 한 장의 얇은 카드가 순식간에 두꺼운 카드 상자로 변하기도 한다.(D) 52장의 카드가 담긴 카드 상자가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블랙홀) 마치 CG를 현실에 재현한 것 같은 신기한 현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PH의 마술에 열광한다.
두 번째로, PH의 마술은 짧다. 그의 마술 현상은 몇 초만에 끝날 정도로 짧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앞선 이유와 연결될 것이다. 시각적인 마술은 현상을 위한 밑 작업이 무척 짧다. 현상이 그대로 눈 앞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현상을 설명하거나 암시할 필요가 전혀 없다. 밑 작업이 익숙하지 않은 초심자들이 구매해도 사용방법을 익힌 후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PH의 마술의 장점이다.
마지막으로 PH의 마술은 새롭다. 기존의 방식이 익숙한 마술 마니아들 중에서도 그의 마술에 열광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아예 새로운 마술 기법을 만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기존에 알려진 방식을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비틀어서 새롭게 소개하기도 한다. 이러한 톡톡 튀는 아이디어와 마술 덕분에 마술 마니아들 사이에서 그는 더욱 유명해졌다.
3.PH와 멘탈 마술
그러나 그는 어느샌가 자신이 하던 마술이 아닌 새로운 마술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시각적이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마술들이다. 이른바 멘탈 마술이다.
멘탈(mental) 마술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읽는 마술' 정도로만 생각한다. 명확하게 멘탈 마술을 정의하는 것은 어렵지만 PH가 정의하는 멘탈 마술은 다음과 같다. "일어날 확률이 지극히 낮은 현상을 실제로 보여주는 것" 예를 들어 동전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거나 허공에서 카드 여러 장을 뽑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관객이 생각한 카드를 맞히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1/52의 확률로 찍어서 맞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PH는 대한민국 마술계에 멘탈 마술을 유행시켰다. 특히 그중에서도 PH는 관객이 말한 카드가 관객이 말한 숫자 번째에서 나오는 마술(Any Card At Any Number, 줄여서 ACAAN, 또는 아칸)에 큰 관심을 갖고 다양한 버전을 만들었다. 다양한 아칸들을 모아서 따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출처: 마술잡지 아르카나)
PH의 멘탈 마술은 그가 이전에 주로 내놓았던 제품들이 시각적이고 짧은 마술인 것과 대조되었다. 멘탈 마술은 시각적이지도 않고, 짧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PH의 마술을 사랑했는데 그것은 PH의 멘탈 마술이 여전히 새로운 기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4. 당신은 PH의 팬입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PH의 마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구매한 적도 무척 드물다. 나는 항상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현상보다 관객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마술이 더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마술 현상이 짧고 단발적이라면 눈앞의 관객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줄어든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마술 기법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마술 기법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PH는 대단한 사람이고 한국 마술계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그의 아이디어는 마니아들이 마술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해주었다. 마술이라는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생긴다면 그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마술에 관심을 가질 것이고, 궁극적으로 마술 산업 전체가 성장할 것이다.
거기다가 PH는 마술 크리에이터가 아닌 한 명의 사업가로도 고평가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는 점이다. 한국 마술계에서 전국적으로 마니아들에게 성공적으로 인상을 남긴 브랜드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중 대다수의 브랜드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만든 '회사'이다. 그 회사들 사이에서 PH는 당당하게 1인 브랜드로 우뚝 존재감을 자랑한다.
PH의 능력은 단순히 새로운 마술을 만들고 신기한 현상을 구상하는 능력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PH는 자기 자신이 잘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고, 자신을 좋아하는 팬들이 기대하는 것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렇게 쌓아 올린 브랜드 평판을 바탕으로 PH는 한국 마술계에서 가장 도발적인 마케팅을 던졌다. 책에 어떤 내용이 실려있는지 일절 언급하지 않고, 하울링(Howling)의 예약 구매를 연 것이다.
그 가격은 15만원, 지금까지 한국에서 발매된 마술 책 중 가장 비싼 가격이었다.
출처: PH(본명 이재훈) 페이스북
- 2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