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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Jul 25. 2022

아판타시아, 상상할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마술 공연

마술공연리뷰

    ‘아판타시아’라는 증상이 있다. 아판타시아를 겪는 사람들은 머릿속에 이미지를 떠올려 상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고 한다. 아판타시아를 겪는 사람이 과연 마술을 경험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최현우 마술사의 신작 공연 [아판타시아]가 시작됐다.


출처 : 최현우 페이스북 공식 계정
출처 : 최현우 페이스북 공식 계정


[아판타시아]의 특징

    우리나라에서 대형 상업 공연은 거의 필수적으로 일루젼 도구를 동반한다. 거대한 장치가 등장하고, 그 장치 위에서 사람을 잘랐다 붙이거나, 공중에 띄우거나 등등의 마술을 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모든 마술 공연이 모두 비슷비슷한 색깔을 갖게 되어버렸다. 이번 [아판타시아]가 독특한 이유는 바로 공연에서 그러한 일루젼 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주얼한 마술도, 화려하고 장엄한 음악도, 춤추는 조수도 없다.


    그래서인지 공연장 또한 이전의 [더 브레인]이나 [빌리브]를 선보였던 우리금융아트홀이 아닌, 소월아트홀에서 진행했다. 1184석의 규모를 자랑하는 대극장 우리금융아트홀에 비해, 소월아트홀은 520석으로 거의 절반 규모의 공연장이다. 공연의 특성상 조금 더 관객과 소통할 수 있으니 작은 규모의 공연장을 고른 것은 좋은 판단이었다. 가까울수록 마술의 현장감이 더욱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공연은 전반적으로 최현우의 특기인 마음을 다루는 마술, 즉 ‘멘탈 마술’ 위주로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최현우 마술사는 두 개의 공연, [더 브레인]과 [빌리브]를 통해 대중들에게 멘탈 마술을 소개해 왔다. 마술 매니아의 입장에서 [더 브레인]은 일반적인 마술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뇌과학과 멘탈 마술을 가져다 쓴 공연이었다. [빌리브]는 공연의 일부 구성이 데런 브라운(1)의 공연 [Infamous](2)를 연상시켜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지만, 보다 더 개인의 마음과 생각을 읽는 마술이 많이 실려있어서 즐거웠다.


    최현우 마술사는 아무래도 [더 브레인]과 [빌리브]를 통해 대중들에게 멘탈 마술이 무엇이고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충분히 알려주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번 [아판타시아]에서, 그는 더 이상 생각한 단어나 카드를 맞히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마술 공연에서 최면을 선보였으며 (연출을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 아닌, 진짜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최면’이다.) 그가 관객에게서 읽어내는 정보 역시 이전보다 훨씬 더 민감하고 위험해졌다.



고민을 해결하는 마술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타로 카드를 이용한 마술이었다. 마술사는 관객이 말하지도 않은 고민을 읽어내고 답변해주었다.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마술이 신기해서가 아니라, 이 마술 현상이 많은 현대인들의 이중적인 심리를 절묘하게 꿰뚫었기 때문이다. 많은 현대인들이 외로움에 시달린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안고 살지만, 은근히 누군가 자신의 고민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아판타시아]의 타로 마술을 통해 최현우 마술사는 현대인들의 모순적인 욕구를 정확히 관통했다. 나는 현대 사회에서 마술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언제나 고민해왔다. 최현우 마술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공감과 위로, 애정을 전달했다.


    게다가 소재부터 현상까지 모두가 조화로운 마술이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소재는 네팔 수도승들이 사용한다는 싱잉볼이라는 악기였다. 종처럼 그릇을 쳐서 소리가 울려퍼지도록 사용할 수도 있고, 그릇을 문질러서 은은한 소리가 이어지도록 할 수도 있었다.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드는 동시에 긴장감을 고조시켜주는, 멘탈 마술과 무척 잘 어울리는 악기였다.

출처 : 명상위키


    그러나 이 모든 완벽함 속에서 한 가지 아쉬웠던 부분은 “공명하겠습니다.”라는 한 마디 대사였다. 마술사가 관객의 은밀한 고민거리를 읽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고 집중하고 있는데, 구태여 소리를 내서 “공명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오히려 진짜같지 않아보였다. 만약 누군가 진짜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조용히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내면에 집중할 것이다.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마음을 읽어보겠습니다.” 라고 소리내어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지 말고 보여줘라.’ 라는 선대 마술사들의 조언이 떠올랐다.



너무 완벽한 마술

    공연이 끝나고, 여자친구에게 공연을 어떻게 봤는지 물어봤다. 지금까지 본 공연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는 말과 함께 한 가지, 마술이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있다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내용은 놀랍게도 이전에 ‘Too-Perfect Theory’ (또는 Too-Obvious Theory)(3)라는 이름으로 들었던 개념과 일치하는 이야기였다.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마술이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관객이 마술의 기법을 곧장 유추해버리거나 또는 마술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잘못된 답으로 결론지을 때가 있다’는 내용이다.


    이번 [아판타시아]의 예언 마술이 적절한 예시였다. 관객을 고르는 과정부터 관객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까지 너무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했기 때문에 오히려 의심할 구석이 몇 군데 남지 않았던 것이다. 마술 매니아인 내가 아니라 비마술인 관객이었던 여자친구가 ‘Too-perfect theory’를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 내게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매직피디아에 실린 Too-Perfect Theory



멘탈리스트 최현우

    마무리하기에 앞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지도 높은 두 명의 마술사는 최현우와 이은결이다. 그런데 이은결은 일루셔니스트로, 최현우는 멘탈리스트로 둘 다 ‘마술사’라는 고정된 캐릭터를 벗어나 자신만의 캐릭터를 형성해나가고 있다. [아판타시아] 공연은 최현우 마술사가 본격적으로 마술사를 벗어나 멘탈리스트의 길로 접어드는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최현우를 보면서 마술사가 아닌 멘탈리스트를 떠올릴 날이 올 것이다. 이미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조종할 수 있는데다가, 최면까지도 할 수 있다. 장르의 개척자로서, 마술계의 대선배로서, 그가 앞으로 보여줄 수많은 이야기들이 무척 기대된다.


※[아판타시아]는 왕십리역 소월아트홀에서 8월 7일 일요일까지,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관람 가능하다




(1)Derren Brown, 멘탈 마술과 최면으로 유명한 영국의 공연자

(2)데런 브라운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풀 영상을 제공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E6ix1UmrFTI

(3)Too perfect Theory에 대해 더 궁금한 사람들은, 마술잡지 아르카나에서 관련 칼럼을 번역한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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