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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셜트래블러 Aug 03. 2021

#억압과 배제의 로맨스 서사

더 랍스터(2015 / 요르고스 란티모스)

‡1과 10 사이에 중간은 어떤 숫자일까?    


 사회에는 규범이란 것이 존재한다. 

규범이란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기준이 되는 행동양식을 뜻한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삶의 양태들이 모여 하나의 사회가 이루는데, 사실 각 사람의 개성이 모두 다른 만큼 조화롭게 섞이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활을 살아내는 데 필요한 여러 기준들이 마련되었고, 그 기준들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역시 변화한다. 사실 규범은 매우 다양해서 해석하기란 여간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 사회의 전통과 사회를 이루고 다스리고 있는 제도 혹은 규칙들, 또한 사회가 개인 또는 공동체에게 요구하는 도덕률이 있다. 공동체에 따라 종교적·문화적 체계가 있을 수 있고, 사회의 양태 또는 민족적 기질에 따라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존재할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규범들 속에서 인간 모두가 이러한 기준을 인정하고 잘 따르며 살아가는 것은 여간 힘든일이다. 이러한 규범들을 숙지하고 따라가기 어려운 복잡한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혹여나 어떠한 이유로 규범을 어겨 공동체에서 탈락될까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특히나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의 경우, 지금껏 살아냈던 공동체 문화와 완전히 다른 규범을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기도 한다. 일례로 도서 목록에서 ‘사회생활’이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도서들이 검색된다. 얼마나 사회생활이 어려우면 입문서와 같은 수많은 책들이 매년 발간되는 것일까. 어찌 보면 ‘결정장애’*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유행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렇기에 보통사람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 될 정도다. 


 그렇다. 평범하게 사는 것은 어렵다. 이미 사회는 숫자 1과 10 사이의 중간은 수학적으로는 5.5로 정해놓았다. 하지만 중간의 범위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5 또는 6이 될 수도 있다. 사람의 특성과 개성에 따라 다르게 정의될 수 있다. 아니 반드시 다르게 정의된다. 하지만 사회에서 5.5라고 정의하고, 열외를 다름 혹은 틀림으로 인식하는 순간, 사회는 중간을 다르게 정의한 사람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여기고 배제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사회 혹은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것이 두려워, 사회가 만들어 놓은 카테고리 안에 자신을 끼워 맞추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배제는 곧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결정장애라는 단어는 장애인에 대한 혐오 표현 중 하나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영화 스틸컷(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 남성들의 옷을 보더라도 사회가 얼마나 획일적인지 알 수 있다.


‡하나의 기준이 절대적 근간인 사회에서의 생존기


 근미래의 어느 도시. 주인공 데이비드는 강아지와 함께 호텔에 입소한다. 아내에게 버림을 받은 데이비드는 호텔에서 다시 짝을 찾을 수 있도록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45일간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고 만다. 이 커플 메이킹 호텔에 입소한 사람들은 동물로 변하지 않기 위해 사랑을 찾거나, 호텔에서 숲으로 도망친 사람들을 사냥해 입소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      


 영화 속 세상은 사람은 누구나 짝을 이루고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의 규범 혹은 규칙이며, 짝을 이루지 못할 시 자신이 선택한 동물 중 하나로 변한다. 동물로 변하는 것이 영화 내에서 진실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짝을 이룬 사람들만이 도시 혹은 공동체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강력하게 규제되는 기준이다. 영화는 이러한 기준을 얼마나 강력하게 사회에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으로, 데이비드가 호텔에 입소할 때 함께 입소한 동물인 강아지는 짝을 찾지 못한 데이비드의 친형이다. 이와 같은 강력한 기준을 전제로 호텔 역시 준수해야 할 다양한 규칙들이 존재한다. 먼저 자위행위는 금지되며 이를 어길 시 끔찍한 벌을 받고, 거짓으로 짝을 맺을 시 발각되면 동물로 만들어 버린다. 또한 호텔에서는 짝을 찾기 위한 혹은 커플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유용한지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교육을 필수로 받아야 한다. 호텔은 서로의 짝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서로의 공통점을 찾으라고 교육한다. 이러한 획일적인 교육은 사람들에게 서로의 사랑을 찾기 위해 마음을 나누는 법을 결코 알려주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획일적으로 길러진 사람들은 서로의 공통점만을 찾아 나선다. 이를 넘어서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성과 짝이 되기 위해 자신의 코를 자해하는 남성 등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는 블랙 코미디적 요소를 통해 스토리를 하나의 우화처럼 표현한다.      


 또한 영화에서 호텔과 대비되는 공간으로 숲 속이 나오는데, 숲 속에서는 호텔과 정반대의 기준이 적용되는 공간이다. 숲 속은 사랑이 금지되었으며, 스킨십을 할 경우 접촉 부위의 살을 도려내는 등의 처벌이 내려지는 곳이다. 즉 호텔에서는 솔로로서의 삶을 혐오하고, 숲 속에서는 연인으로서의 삶을 혐오한다. 이렇게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영화는 늘 대비되는 공간이 나오는데, 공간의 대비를 통해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을 극대화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이러한 대비는 사람들에게 늘 선택을 강요하는데, 영화 곳곳에 이러한 기조가 깔려있다. 데이비드가 호텔에 입소할 때, 안내자는 데이비드에게 이렇게 묻는다. 이성애자 혹은 동성애자라고 물으며, 양성애자일 경우 행정처리가 어렵다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말한다. 중간은 없다. 발 사이즈도 43 혹은 44인지 묻는다. 43.5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사람들은 사회가 분류한 카테고리 안에서 살아가도록 강요된다. 이렇게 세워진 기준안에서 사람들의 자율성을 말살된다.      


영화 스틸컷(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하나의 기준이 절대적 근간인 사회에서의 현상


 사회의 시스템이 영화 <더 랍스터>처럼 획일적이면 사람 사이에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영화 내에서 호텔은 사회가 원하는 인간상을 만들어내는 곳이고 숲 속은 획일적인 사회가 정한 기준을 거부하고 도망친 음지와 같은 곳이다. 사회는 ‘커플’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을 제시함으로 사람들을 카테고리에 말 그대로 밀어 넣는다. 이렇게 동물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사람들은 살아간다. 이와 같은 삶을 탈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연대해 획일적인 사회를 만들고 있는 시스템에 대항하고 시스템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회는 사람들의 인식을 교묘하게 조종해 사람들이 함께 연대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호텔에서도 동물이 되는 기간을 늘리기 위해 숲에 사는 사람들을 ‘사냥’할 것을 강요하고, 사람들은 사냥에 의무적으로 참여한다. 그 결과 사회의 억압을 받을수록 자신보다 약한 자 혹은 그 시스템에 벗어난 사람들을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을 앞장서서 핍박하고 혐오한다. 

 하나의 사회가 획일적이고 억압적일수록 이러한 혐오는 깊어지고 그 대상은 넓어진다. 깊어지고 넓어진 혐오는 사람들의 일상이 되어 다양하게 표현된다. 기생수, 김여사, 애자, 결정장애, 휴거, 한남, 맘충, 김치녀, 지잡대, 룸망주, 진지충 등 주로 남과 여, 동남아를 비롯한 외국인, 장애인, 재산의 차이 등 다양한 영역에 혐오 표현들이 존재한다. 특히 21세기의 혐오표현은 계층 간의 격차 심화 등에 따른 사회문화적 갈등이 표출되면서 대두된다. 헬조선 담론은 계급 이동이 어려워진 한국의 사회경제적 조건이 투영된 담론으로 전체 한국사회의 기본적 토대나 마찬가지이다. 이를 바탕으로 부를 대물림하는 금수저와 빈을 대물림하는 흙수저 간 계급 이동의 불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수저 계급론이 보편적 공감을 얻었다. 또한 남과 여의 갈등의 시작은 남성 위주로 정착된 사회에서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남성의 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사람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했던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것을 사회는 ‘갈등’이라고 받아들였고, 남과 여의 본격적인 대결이 시작되었다. 또한 세계화로 인한 외국인들의 다양한 유입 등으로 상주인구가 증가하면서, 일자리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자 피부색, 민족 등에 근거한 혐오가 생겨났다.      


 이렇게 생성된 혐오의 공격성은 사실 매우 위험하다. 영화에서는 서로를 사냥하는 방법으로 묘사했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단계적으로 혐오 표현이 발전한다. 처음 고정관념을 형성하고, 상대에 대한 배타적 언어를 사용한다. 또한 각 집단은 자신의 집단이 우월하다고 여기고 상대 집단을 열등하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혐오들이 표현으로 발화되는 단계로 인터넷 등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다. 그다음 단계로는 왕따나 욕설이 자행되며, 편견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시켜 해를 입히기도 한다. 이 단계는 혐오를 당하는 대상들이 직접적인 피해가 시작되는 단계이기도 하다. 다음은 취업이나 주택 정책 혹은 정치적인 시스템 안에서 일어나는 제도적인 형태의 차별이 진행되며, 그다음은 테러나 증오범죄처럼 편견에 치우친 폭력이 자행된다. 마지막으로는 마치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던 것처럼 제노사이드의 형태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혐오가 실제 정치적으로 혹은 시스템적으로 양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014년 앨라배마 주의 모든 유권자들은 반드시 신분증을 제시해야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흑인 거주자가 많은 카운티에 위치한 교통국 사무소를 80%나 폐쇄해서 흑인들이 투표에 필요한 신분증을 발급받기 어렵게 만들었다.* 또한 미국은 여전히 흑인과 라틴계 학생들 10명 중 1명 이상은 흑백 분리정책을 실시하는 아파르트헤이트** 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이런 학교에 백인 학생 입학률은 1%에도 못 미친다. 이러한 학교들은 백인 학교들에 비해 재정지원을 더 적게 받는다. 그 이유는 학교가 가난한 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학교 재정은 지방세를 통해 배분되기 때문에 열악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보면 흑인들이 가난한 동네로 들어가게 되는 건 비단 소득의 불평등 때문만이 아니다. 수십 년간 미국의 레드라이닝 정책***에 의해 흑인 가정들이 사는 특정 거주 지역에만 대출이나 보험 등 금융서비스를 제한하였다.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하지 못하도록 막도록 차별한 예로 남아 있다. 

 혐오는 이렇게 실제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이슈이다. 사회적으로 조성된 혐오를 예방하는 목적은 상대방에 대한 모욕과 불쾌감, 상처를 주는 말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과 정의의 기초에 관한 상호 확신의 공공선을 지키는 데 있다. 즉, 혐오는 사람들의 연대의식을 방해하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만한 인권 사회로의 진입을 막는 위험요소다.



*장현구 기자, 미 앨라배마 운전면허 발급소 폐쇄... 흑인 투표 위축 논란, 데일리한국, 2015.10.04

**인종격리정책 또는 백인의 인종차별 정책을 의미한다.

***특정 경계지역을 지정해서 주택담보 융자 등의 금융 서비스를 거부하는 정책


영화 스틸컷(출처: 네이버 영화 포토)


‡랍스터가 되고 싶은 데이비드의 선택은?


 숲 속으로 도망간 데이비드. 데비이드는 연예가 금지된 곳에서 아이러니하게 사랑을 만난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둘만의 암호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가지만 이내 발각되고 만다. 데이비드와 마찬가지로 근시였던 여성은 숲 속 외톨이들 리더의 계략으로 두 눈을 잃게 되고, 분노한 데이비드는 리더를 살해하고, 여성과 함께 도시로 도망친다. 데이비드는 여성을 데리고 음식점에 자리를 잡고 자신은 칼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여성과 공감대 또는 공통점을 만들기 위해 데이비드는 자신의 눈을 찌르려고 머뭇거린다. 그리고 영화는 홀로 식당에 앉아있는 여성을 보여주며 마무리된다.  


 그는 처음 호텔에 들어왔을 때 짝을 찾지 못할 경우 어떤 동물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랍스터’라는 이야기를 한다. 랍스터는 100년을 넘게 살며, 평생을 번식한다. 또한 귀족처럼 푸른 피를 지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데이비드는 자신이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랍스터를 선택했다고 말한다. 그는 획일적인 사회에서 길러진 인물 중 하나이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높지 않은 인물이다. 12년을 데이비드와 함께 살던 아내가 외도를 하자, 데이비드는 그 남자가 안경을 쓰는지 아내에게 묻는다. 근시였던 자신에 대한 낮은 자존감으로부터 비롯된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간 마음 안에 잠재되어 있는 남들과 다른 특별해 보이고 싶은 욕구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귀족의 피를 지니고, 오래 살면서 평생 번식을 하는 것과 물을 좋아하는 자신의 욕구들을 랍스터를 통해 비유한다. 사람은 특별하다. 또한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자율성이 있다. 이는 사회가 아무리 자율성을 억압하는 획일적인 시스템으로 사람을 가두어도, 사람은 근본적으로 데이비드와 같은 특별함을 펼치기를 원한다. 이 특별함은 바로 인간의 존엄으로 해석할 수 있다.     


 획일적인 시스템으로 사람을 억압하는 세상. 그들이 정해놓은 카테고리에 벗어나면 곧바로 배제되어 버리는 세상 속에서 데이비드는 여성과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눈을 찔렀을까? 랍스터와 같이 특별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그가..


‡영화가 끝난 후


 누군가는 사랑의 이야기로 읽기도 하는 영화다. 영화가 다양한 층위에서 읽힌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가 가지고 있는 시나리오가 탄탄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영화가 살짝 지루할 수 있으나, 콜린 파렐을 비롯하여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이두, 올리비아 콜맨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민낯으로 조명 하나 없이 열연하기 때문에 연기를 보는 재미가 있는 영화이다.      


 영화사에서는 <더 랍스터>의 홍보를 위해 가수 윤종신에게 곡을 의뢰해 탄생한 곡이 바로 월간 윤종신 2015년 9월호 ‘더 랍스터’이다. 이 곡은 영화 내 숲 속에서 외톨이들이 듣는 음악인 일렉트로니카 장르로 매우 스타일리시한 노래이기도 하다. 015B의 정석원이 작곡을 했으며, 윤종신이 작사를 한 곡으로, 윤종신은 영화를 보며 감명을 받았던 내용을 글로 풀었다고 한다.* 영화와 같이 윤종신의 노래를 함께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팟캐스트, 월간 윤종신 ‘어수선한 영화 이야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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