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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셜트래블러 May 16. 2022

차별의 입체성 2

발달장애인주간보호센터를 기록하다

차별. 두 번째 이야기를 기록한다.


차별이 가지고 있는 함의는 앞서 기록했듯이 단선적이고 일방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힘 있는 자들이 탐욕과 무지로 인해 약자들을 차별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더욱 미묘하고 미세하다. 앞서 글에서는 인권의 실천가이자 수호자일 것 같은 복지현장에서 벌어지는 차별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 글에서는 약자와 약자 사이에 벌어지는 차별을 기록하고자 한다. 다만 한 가지 조심스러운 것은 경험 한 사실을 글로 기록함으로 혹시나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지 걱정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편견 중 하나가 깨졌으면 좋겠다. 약자는 늘 선하다는 편견, 장애인은 착하다는 편견 등. 또한 차별의 깊은 곳에는 다름이 아니라 그 안에 '이익'이라는 것이 있어, 강자든 약자든 누구나 약간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휘두를 수 있는 칼날이 바로 차별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예전에는 장애에 등급이 있었다. 1급에서 3급까지를 중증장애라고 표현하고 4급부터는 경증장애라고 한다. 현재는 등급제가 폐지되고, 심한 장애와 심하지 않은 장애 두 가지로 나눈다. 발달장애인주간보호센터는 심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데, 예전에 있었던 등급을 예로 들면 1급에서 3급까지를 말한다. 1급에서 3급을 심한 장애로 규정하고 있지만, 심한 장애를 대상으로 서비스를 해본 사회복지사들의 입장에서는 1급과 3급의 차이는 매우 크다. 1급을 심한 장애, 3급을 심하지 않은 장애로 구별해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우리의 입장에서 중증은 신변처리는 물론이거니와 자해와 타해 등 여러 개성들이 복합적으로 있는 장애 당사자를 지칭하는 의미로 쓰인다. 이렇게 심한 장애로 분류된 분들은 센터의 입소가 여러모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며 현실이다. 또한 입소를 해도 문제다. 특히 타해처럼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개성을 가지고 있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 말이다. 기물을 파손하면 센터와 파손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껄끄럽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험으로 해결하거나, 보상하면 될 일이다. 문제는 타해다. 쉽게 생각해보면 자녀를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자녀가 어딘가 다쳐서 집에 왔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장애인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몸은 비록 성인이지만 가족들에게는 아직도 물가에 놓은 어린아이처럼 여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타해 등의 문제는 장애인들 서로 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출처 : 호주 시드니에서 직접 찍은 사진 / 여러 도시들의 거리를 기록한 표지. 도시의 특별함보다 그저 시드니와의 거리를 표시하여 차별의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차별의 두 번째 기록은 타해라는 개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타해의 개성을 가진 장애인의 개성이 발휘되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이용인의 목덜미를 잡았고, 목덜미를 잡힌 이용인의 목은 빨간 줄이 그어졌다. 피가 나지는 않았고,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발생한 상황에 대해 양쪽 부모님께 안내를 드렸다. 센터에서는 목에 스크레치가 난 부모님께 완벽하게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를 드렸다. 타해를 가한 이용인 부모에게는 상황을 설명드렸으며 당사자 어머님은 타해를 당한 어머님께 사과 등의 안부를 전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여느 날과 같은 평범한 날이었다. 센터에 출근했더니 난리가 났다. 타해를 가한 이용인 부모가 깜빡하고 연락을 못 드렸는데, 타해를 당한 부모님이 부모님 단톡방에서 위와 같은 상황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었다.(단톡방은 모든 만악의 근원이다.)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상처로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던 이용인 부모들도 상황에 점점 휩쓸려가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타해의 개성을 가진 이용인의 퇴소를 요청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타해를 당한 분의 어머님은 이용인의 인권을 위해 타해로 다른 이용인에게 공포감을 조성하고, 피해를 끼치는 이용인을 센터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이를 관철하기 위해 센터를 이용하는 어머님들을 대상으로 동의 서명을 받았고, 동의 서명 서류를 가지고 센터장과의 간담회를 요청하셨다. 

겉으로는 덤덤하게 어머님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미 차별이라는 칼날이 얼마나 아픈지 알면서도 그 칼날을 자신들보다 약한 자에게 휘두르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었다. 다행히도 위 일은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좀 더 센터가 단단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가끔씩 어머님들은 그때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서로에게 미안해하곤 한다. 물론 타해를 했던 이용인 또한 아직까지 센터를 잘 다니고 있다. 이렇게 장애의 정도 차이로 차별을 두고 타해라는 개성을 가진 사람을 센터를 내쫓는다면 그분은 어디를 갈 수 있을까. 개성은 정도의 차이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서로의 노력과 이해가 필요하다. 센터에서는 전문가 집단답게 최대한 이와 같은 상황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등 여러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의 시스템과 지원이 부족해, 이용인들 서로가 마음이 상할 수 있는 상황이 종종 발생할지라도, 이를 함께 이겨내야 한다. 이미 우리들은 비장애인들에게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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