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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셜트래블러 Mar 30. 2021

#시작 ; 아마도 프롤로그

영화 감상문을 끄적거리는 사회복지사

‡ 늘 불편했다 ‡


 왜 불편했는지 모르겠지만 보기 싫고 불편했다. 감동적이어서 울면서도 이런 생각을 했다. 

‘친구들한테 놀림을 받으면 어떻게 하지?’

어릴 때 TV 프로그램 ‘러브하우스’를 보며 들었던 생각이다.

     

사실 지금도 불편하다. 빈곤 포르노로 대표되는 광고들이 여전히 불편하게 한다. 개인적인 경험 안에서 이러한 불편함의 절정은 ‘돈 못 버는 광고들의 착한 상상력’이라는 도서였다. 책 표지부터 점자로 표시된 이 도서는 자본주의의 꽃인 광고를 통해 돈이라는 우선되는 가치보다, '사람'과 같이 우선시되는 다양한 가치를 전하는 광고들을 소개하는 훌륭한 도서다. 지구 온난화, 아동과 청소년 보호, 장애인 인권, 인종과 민족, 언론의 자유 등 다양한 이슈를 내용으로 담았으며, 이는 단순한 공익적인 광고를 넘어 하나같이 놀라운 크리에이티브로 표현되었다는 것이, 이 도서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감동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럼에도 단 하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도서 - 돈 못 버는 광고들의 착한 상상력 중 (유영실 저, 학이시습 ‘출판, 2011.10.31)>

 


위 그림은 신문이 가지고 있는 종이 페이지를 이용한 광고이다.

신문 첫 장에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 밑에 이렇게 쓰여 있다. 


'오늘 기부할게요. 이 아이를 돕고 싶어요.' 


신문 한 장을 넘기면 흰 천이 덮여 있는 아이의 사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다음에 기부할게요' 


 신문의 특성을 이용한 기발한 광고이다. 물론 도서에서도 착한 광고라며 소개해준 한 가지 예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진 속 아이의 모습이 매우 충격적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충격적인 ‘표현’이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나, 이러한 원색적인 표현과 사진은 나에게 있어 마음이 상당히 불편했다. 특히 사람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조심하고 세밀하게 표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하나의 대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마치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사람들의 인격성과 자존감을 무시하고, 그들의 가난을 자극적으로 묘사하여 불쌍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과 같다. 이런 영상과 사진을 본 사람들로 하여금 우월감을 느끼게 하고 동정심을 유발하여 모금을 하는 것은 인간의 세밀한 감정과 자존감을 무시하는 것이기에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 읽었던 성경에는 추수를 할 때 밭의 귀퉁이들을 수확하지 말고 남겨두라고 적혀있다. 뿐만 아니라 수확하다 떨어진 작물들을 애써 줍지 말라고 한다. 그냥 지나쳤던 구절일지도 모르지만 사회복지사가 된 지금 보면 매우 놀라운 이야기다!. 고아와 과부 등 가난한 자들이 남겨진 작물을 통해 삶을 영위하는 것은 누군가가 우월감과 자비심을 가지고 '전달'하는 것보다 그들의 자존감은 상처 받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어느 기업에서 준비한 선물들을 들고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 사진을 찍히는 어린아이들의 표정을 본다면, 아마 당산은 인간의 자존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십 년이 넘게 사회복지사로 근무했기 때문에 온전히 깨달았던 경험은 아니다. 나이가 차고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기면서 이 불편함의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언젠가 바우처를 신청할 때의 일이다. 이 바우처는 차상위계층(잠재적 빈곤계층) 안에 들어야 신청이 가능했는데, 이를 얻기 위해 타인 앞에서 우리 가족이 얼마나 가난한지를 증명해야 하는 경험을 통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가난은 ‘노오력’을 하지 않은 본인의 책임이라는 잘못된 프레임이 사실이라는 것 마냥 ‘나’라는 존재를 한없이 ‘게으르고 능력 없는 존재’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이런 경험을 통해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내 안의 자존감을 무너뜨리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묻고, 평가하는 일이 늘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미디어는 사람의 자존감을 전혀 생각해주지 않는다. 그들의 삶이 궁핍하고 힘겨울수록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효과는 비례하기 때문이다. 특히 MBC 예능의 전통적 특징이 그러하다. 공익성과 휴머니티를 강조하는 ‘느낌표’나 ‘러브하우스’, ‘이경규가 간다의 양심냉장고’ 등이 대표적이다. 앞서 이야기한 '러브하우스'가 대표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과 가족의 가난함이 전국에 있는 그대로 알려진 아이는 학교를 잘 다닐 수 있었을까?. 또 다른 예를 들면, 1996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양심냉장고*는 방영 첫 화부터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사람은 법대로 살면 손해를 본다는 말처럼 그 어떤 차량도 정지선을 지키지 않았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조그만 차 한 대가 정지선을 지키고 빨간불 앞에 멈추었고, 다른 차들은 옆에서 쌩쌩 지나가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제작진은 정지선을 지킨 차량에게 뛰어가 인터뷰를 하려고 보니 몸이 불편한 뇌성마비 장애인이었다. 매체는 이를 더욱 부각했고, 사람들에게 뇌성마비 장애인이 정지선을 지킨 것에 대해 더욱 감동을 받았다. 

 이렇게 사회적 약자들은 종종 대중들에게 감동 코드로 소비되곤 한다. 매우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한 매체의 등장으로 방식과 시선이 바뀌는 계기가 마련된다. 


그 매체는 바로 '무한도전'이다. 



* 한국 예능의 흐름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양심냉장고를 통해 예능에서도 충분히 사회 공익적 내용을 다룰 있는 인식이 생겨났다. 



‡ 자존감이 주는 무게 ‡ 


 무한도전 역시 ‘사랑의 도서관’, ‘달력 만들기’ 등 봉사와 기부 컨셉을 비롯해 ‘벼농사’ 특집, 자영업자 살리기를 표방한 ‘박명수의 기습공격’ 등을 만들어 공익성을 실천하였다. 하지만 보통의 공익성 예능의 포맷과 틀에서는 큰 차이가 있었다.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어려운 사람의 신분을 노출하고 슬픔을 다시 끄집어내 상처를 보여준 다음 그 ‘대가’를 선물해주는 불편함*을 주목했다. 이러한 불편함으로 인해 김태호 PD는 연말 방영한 한 특집에서는 몰래 사정이 어려운 분들의 집 앞에 선물**을 두고 나오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당사자에 대한 어떤 정보도 내용도 노출하지 않았으며,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당사자의 연출 또한 단출했다. 그들의 상처들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충분히 우리에게 '감동'을 선물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프로그램이다. 그가 느꼈던 불편함은 결국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사유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유들의 결과물들이 바로 무한도전의 공익성인 것이다. 이렇게 김태호 PD라는 한 인물을 통해 공익성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익성은 2020년 현재 방송 매체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이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기업들의 사회공헌은 NGO단체와는 달리 꾸준히 그리고 다양하게 발전되었다. 기업들에게 사회공헌은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하나의 수단이다. 그렇기에 전통적인 불편한 방식이 아닌 다양하고 재미있는 방식의 사회공헌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5년 스타벅스 커피 코리아는 우리 농산물 소비촉진과 자원 재활용을 위한 ‘농업인·스타벅스·경기도 상생 협약’을 체결하고, 해당 지역 사회에서 재배하고 수확한 농산물로 음료를 개발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판매했다. 그렇게 해서 스타벅스 코리아는 ‘문경 오미자 피지오, 광양 황매실 피지오, 공주 보늬밤 라떼, 이천 햅쌀 라떼’등 지역 이름을 딴 음료를 출시하였다.*** 이는 농사꾼들의 가난함을 통한 동정으로 제품을 구입하게 하는 것이 아닌 특별 메뉴를 개발해 시판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출시되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 김혜리, 진심의 탐닉, 씨네 21 북스, 2010. 05. 10, 씨네 21 김혜리가 만난 사람들이라는 연재물을 엮어 만든 두 번째 인터뷰집 참고

** '이건.. 뭐야'라고 적힌 쌀포대를 선물로 나누었다.

***사회공헌센터공식블로그,2019.03.13,https://crckorea.kr/menuno=255&bbsno=3162&act=view


<징둥 닷컴 로고(출처 징둥 닷컴)>


 또 다른 기업으로 4차 산업과 맞물려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공헌을 진행한 업체도 있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JD.com)은 중국 정부로부터 지정된 빈곤 마을에 일자리를 부여하고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무상으로 닭을 제공하고, 위탁해 키웠다. 일명, 파오뿌지, 번역하면 치킨런 프로젝트다. 중국 양계 농장의 닭들은 생장 주기가 50일 정도에 불과, 그마저도 3미터 안에서 평생을 보낸다. 징둥은 닭들의 건강하고 위생적인 성장환경을 위해 양계장 주변에 CCTV를 설치하고, 1주일의 절반 이상은 과일과 채소들로 구성된 영양식을 제공한다. 닭들이 자라나는 사육장에는 일정한 비율로 어미 닭을 배치해 꼼꼼하게 관리, 감독함으로써 아기 닭들의 건강한 성장을 돕는다. 또한 생장주기가 160일 이상으로 일반 닭의 3배가 넘고, 무게도 1.8kg~2.5kg으로 매우 튼실하다. 이렇게 위탁을 통해 공급받은 닭은, 모든 사육과정을 소비자가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원산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투명성을 확립하고, 자체 유통망을 통해 사람들에게 판매했다. 그러나 그렇게 관리했다고 해서 징둥은 모든 닭을 매입하지는 않는다.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걸었다. 


'100만 보 이상 달린 닭만 매입합니다. 그 대신 가격은 현지 시세의 3배!!' 


 이후 각 마을의 양계장에는 닭의 발에 만보기를 달았다. 빈곤 가구 1000여 곳 이상이 참여했고, 이들로부터 키워진 5,000마리의 닭은 168위안 (한화 27,000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순식간에 팔려나갔다. 징둥은 값싸고 짧은 기간 동안 키워진 닭보다는, 건강하고 투명하게 관리된 닭이 훨씬 경쟁력 있다는 것을 방증하였다. 또한 빈곤 마을도 살리고 믿을 수 있는 품질도 좋은 닭을 키워내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다양하고 멋진 방식으로 사회공헌을 하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당사자의 사연을 공개하여 후원 모금 후 지원하거나, 당사자를 기업홍보에만 활용한 사례도 여전히 존재한다. 어느 업체에서는 장애인이 유명 오케스트라와 합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며, 참여자들에게 연주하는 동영상을 찍어 회사 사이트에 올리도록 했다. 그 후 사람들에게 투표를 유도하고 투표를 가장 많이 받은 장애인이 합주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였다. 참여 당사자들은 지인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등 1등이 되어 당사자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했다. 대망의 결과 발표. 투표 1등이 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은 아마 감격스러웠으리라. 

그러나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투표를 참여한 그저 한 사람으로서 어떤 이유로 오케스트라와 합주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짐작하는 것은 1등이 된 장애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을 것이다. 결국 홍보와 상처만이 남은 이벤트가 되고 말았다.


‡ 그럼에도 누구나 살만한 세상을 위하여 ‡


 사회적 약자가 사회에서 느끼는 아픔을 감동이라는 이유로, 구제라는 선행의 이유로 그들의 자존감을 상처 내는 것들은 불편함을 넘어 무엇인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확신한다. 자본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사회적 안전망이 부족하고, 빈곤 격차가 큰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 삶의 과정들을 감히 지옥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조차 ‘휴거’**라며 놀림을 받고, 그 상처를 마음에 품고 자란 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 이런 세상은 과연 행복이 가득한 세상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뉴스에서는 사회가 얼마나 무섭고 열악한지를 앞 다투어 보도한다. 연예인 누가 강남에 빌딩을 샀는지, 어마어마한 빚을 열심히 노력해 다 갚았다며 미담이랍시고 보도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뉴스를 접하는 다수의 사람은 오히려 절망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연예인들처럼 수많은 대출들을 갚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임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화된 서로 간의 격차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허무함에 물들어 버릴 것이다. 허무와 허망으로 까맣게 된 마음을 뒤로하고 예전에는 이웃 간에 정이 넘치고 살기 좋았다며, 우리는 과거를 미화하고 그리워한다. 과연 우리의 과거는 지금보다 늘 살기 좋았을까?, 점점 세상은 살아내기 힘든 점점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을까?.     

 

<아이들이 즐거운 세상이 누구나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닐까? - 시드니에서>


  자! 제 반론의 시간이 왔다. 위의 사실들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그럼에도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아니,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실제로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다.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의 극빈층 비율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으며, 세계 인구의 다수는 중간 소득 국가에 살고 있다.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의 비율은 60%나 된다. 또한 세계 인구의 80%는 어떤 식으로도 전기를 공급받아 생활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세상이 너무 거대해서 우리는 아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언론의 탓일 수도 있다. 유명한 NGO단체들은 앞서 이야기했듯 삶의 끝에 몰린 사람들을 비춰주며 도움을 호소하고, 각 종 언론들의 뉴스는 자극적인 주제를 우리에게 소개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단지 우리는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안심하셔도 된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 단지 우리는 느끼지 못할 뿐이다. 잠시 잠깐 멈춰 선 것뿐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좋은 세상이 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느꼈던 다양한 것들을 영화 등과 함께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아마도 프롤로그 끝 ‡

 

 장광설이 길었다.

 위의 글은 사실 매 저녁 시간마다 아이들을 재우고 넷플릭스를 보는 나의 행동이 그저 먹고 노는 것이 아님을, 사회복지사로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것임을 증명하기 길고 길었던 비겁한 변명이다. 이 비겁한 변명을 포장하기 위해 ‘늘 불편했다’처럼 마치 뭔가 있어 보이도록 시작의 포문을 열고 이런저런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주저리주저리 적었다. 


 이제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앞으로 영화와 드라마 등 하나씩 종이에 세상을 그려볼 심산이다. 이 여정의 길이 마침내 열매가 되어 매일 저녁 영화와 드라마를 탐닉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간절히 기도한다.

 

아마 이 작은 소망이 나에게는 살기 좋은 세상일지도.. 



* 김민구, 요즘 필요한 요즘 지식, 성아당, 2019.05.20. 40p

** 임대 아파트 휴먼시아 + 거지가 합쳐진 신조어

*** 한스 고슬링, 팩트풀니스, 김영사, 2019.03.08. 전반적 내용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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