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분노의도로 (2015 / 조지 밀러)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현재를 하나의 색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색깔로 칠할 수 있을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던져진 청년들을 비롯하여 이미 사회에서 가정과 그 삶을 지키기 위해 애써 버티고 있는 중년들, 빈곤율이 가장 높은 노인들. 그들의 삶의 색은 분명 밝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알기 위해서는 사회의 미래라고 불리는 청소년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 살펴보면 해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라 불리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색은 그 밝기가 어떠할까. 주 소비자층이 청소년인 웹툰을 보면 아마 색깔의 밝기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웹툰은 인터넷을 통해 연재하고 배포하는 만화를 말한다. 웹툰이 흥행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의 기호나 취향 등이 반영되어야 하기에 시대마다 특히 유행하는 주제들이 있다.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한 이후 시기인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어떤 주제가 흥행했을까? 바로 왕따 물이다. 왕따였던 한 아이가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조현아 작가의 대작 <연의 편지>와 더불어 왕따가 성장하여 일진들을 무력 등으로 굴복시키는 이은재 작가의 <TEN> 등 왕따와 관련된 웹툰이 수십 개가 넘을 정도로 크게 유행하였고, 지금도 서패스 작가의 <약한 영웅> 을 비롯하여 다수의 웹툰이 연재되고 있다. 왕따 물이 유행하는 이유는 아마도 청소년들의 삶도 결코 녹록지 않으며, 학교 혹은 교실 또한 공평함과 정의가 이미 사라졌음을 뜻한다. 그리고 선생님이라는 기둥이 학생들의 버팀목 또는 지지자의 역할을 하는 시대 또한 지났다. 다수의 웹툰에서 선생님은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교육적으로도 친구를 이겨야 미래를 보장받으며, 공부와 별도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살아남아 왕따를 당하지 않아야 한다. 즉 학교는 정글이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학원물은 거의 생존물과 닿아있다. 이어서 2019년부터 2020년 현재에 가장 유행하는 웹툰은 주제는 바로 ‘리셋’이다. 아포칼립스물의 대표인 좀비물을 거쳐 다양한 리셋물*들이 크게 유행했다. 리셋물들은 삶의 실패로부터 시간을 돌려 인생 2회 차를 맞이한다는 내용과 게임처럼 특정한 공간에서 본인의 능력으로 '노오력' 하여 레벨을 올리고 성공한다는 내용 등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주인공이 실패한 인생을 다시 리셋하되 생전의 기억을 가지고 인생을 다시 살아가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나 혼자 레벨업>, <어게인 마이 라이프>, <도굴왕>, <SSS 죽어야 사는 헌터> 등 이 리셋 물들의 특징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또한 여전히 정의롭지도, 공평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본인의 삶을 성공한 위치에 결코 올려놓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웹툰들의 고정화된 배경이자, 현재 우리네 삶을 비추는 데칼코마니이다. 사회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청소년들은 이미 밝은 미래를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어린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삶은 여전히 힘들다고 이야기한다. 지옥에서 살아가고 있다며 스스로 자조하는 우리에게 정말 지옥 같은 일이 2014년 발생했고, 다수의 사람들의 마음은 깊은 절망으로 숨죽이며 살아냈다. 큰 사고가 있었고, 미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2015년의 새해는 그리 밝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한 명의 시민으로, 사회복지사로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조차 생각하지 못했던 인생의 그늘 같은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울감이 일상이 된 5월. 선물과 같은 영화를 만날 수 있었다. 깊은 절망과도 같은 고민에 답을 준 영화. 바로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다.
감독 조지 밀러는 호주 출신의 영화감독이다. 이번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는 자신의 영화 <매드맥스>, <매드맥스2>, <매드맥스3>를 리메이크 한 작품으로, 당시 영화의 주연배우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액션 영화의 대배우인 맬 깁슨이 맥스 역할을 담당했었다. 초기 작품들 또한 황폐한 미래사회를 스산하고 기괴하게 표현을 잘해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조지 밀러는 이 영화 3편 이후 수잔 서랜든 주연의 <로렌조 오일>이라는 드라마로 미국 아카데미상 각본상 후보에 오른다. <로렌조 오일>은 관객에게도 호평을 받은 작품인 만큼, 현재 고전 명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1995년에는 그의 지금껏 보여왔던 영화 성향과는 다르게 충격적인 영화를 제작하는 데 바로 그 영화는 <꼬마 돼지 베이브>다. 이 영화는 주로 아동들이 관람하는 동물 영화로, 영화의 각본 및 제작자로 참여해 아카데미상 총 7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 시각효과상을 받았다. 이 영화를 시작으로 <꼬마 돼지 베이브2>를 제작하였으며, 펭귄이 춤을 추는 영화 <해피 피트1,2>를 제작, 감독하였다. 무려 <해피피트>에서는 목소리 출연으로 로빈 윌리엄스, 휴 잭맨, 니콜 키드먼, 일라이저 우드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목소리로 출연한 전설적인 애니메이션 뮤지컬 영화이기도 하다. 폭력적인 영화부터 가족영화, 아동용 영화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감독이기도 하다. 이런 특이한 영화감독이 자신의 영화의 리메이크 해 돌아왔다는 것은 영화에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가할 수 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돌아오지 않았을 터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특별한 점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처럼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체 무엇이 특별하다는 거지?'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 모두 믿을 수 있겠는가? 조지 밀러 감독은 영화가 개봉할 당시 1945년 3월생으로 71세의 어르신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노익장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드레날린에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보면 우리의 편견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어르신의 저력에 우리는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영화는 액션 영화의 측면으로 보더라도 특이하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엄청난 액션이 즐비한 영화이면서도 아바타와 어벤저스로 대표되는 액션 영화처럼 그린 스크린**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영화로 유명하다. 영화의 액션은 옛날 80~90년대 영화와 같이 날것 그대로의 맨몸 액션을 추구하는 등 영화의 역사를 역행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실제로 장대 액션을 펼치는 배우들은 서커스 등에 종사하는 곡예사가 담당했다고 한다. 이런 맨몸 액션은 실제로 배우들이 다치기도 하는데, 조지 밀러 감독은 감독이 되기 전 대학에서 전공한 의학 지식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혹여나 배우들이 다치면 조지 밀러 감독이 달려와 신속한 응급치료를 행한 덕에 촬영에 지장이 없었다는 웃지 못할 후문이 전해진다. 또한 핵전쟁 이후 사막화된 지구를 배경으로 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영화이면서도, 주인공 맥스가 한 마을에 들러 그 마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하고 떠나는 서부극의 모양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장르 영화이기도 하다.
* 회귀물이라고도 한다. 이와 비슷한 장르로 가상세계로 전입하여 레벨을 올리며 살아가는 이야기도 있다.
** 그린 스크린은 CG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촬영장에 녹색 스크린을 배경으로 배우들이 연기를 한 후 녹색 스크린에 배경이나 효과 등을 덧입히는 기술을 말한다.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에서는 배우들의 안전장치를 지우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 김종필 영화 평론가는 '접속 무비월드 영화는 수다'다 편에서 '매드맥스는 어벤저스를 비롯하여 모든 영화의 액션 장면들을 뽀뽀뽀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라고 평했다.
**** 넓은 의미로 세계 멸망이라는 배경을 가진 장르를 말한다. 특히 아포칼립스로 대표되는 좀비물 등 이러한 장르들이 유행한 것 또한 아무래도 현사회에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우울함일 것이다.
영화는 핵전쟁 이후 대부분 사막화된 세상에서, 생존에 필수인 물. 그리고 이동 및 전투를 할 수 있는 수단인 자동차와 기름이 귀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맥스는 사막을 여행하던 중 시타델이라는 도시에 감금당하고 만다. 때마침 시타델에서 한 팔이 없는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성 장군 퓨리오사가 왕국의 여인들 5명을 데리고 이상향을 찾아 탈출하고, 시타델에서는 이를 잡기 위해 쫓는 일이 발생한다. 맥스는 퓨리오사와 여인들의 탈주극에 휘말리게 되고 서로가 쫓고 쫓기는 내용이 펼쳐지고, 탈주한 그녀들은 결국 맥스와 힘을 합치게 되고 맥스와 함께 이상향을 향해 나아간다. 다만 영화는 <매드 맥스라>는 영화의 이름처럼 맥스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오히려 퓨리오사의 역할과 비중이 영화 내 다수를 차지하며 그녀가 뿜어내는 매력과 아우라는 영화에 넘쳐난다. 맥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사실상 영화의 주인공은 퓨리오사다. 또한 퓨리오사를 비롯하여 함께 탈출하는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영화는 이들을 타인에게 구원받는 들러리로 묘사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에게 의존하여 탈출당하는 수동적인 여성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능동적인 주체로 영화는 묘사한다.
퓨리오사와 5명의 여성이 시타델을 탈출 후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바로 그들이 착용하고 있던 정조대를 끊는 것이다. 그들은 물과 식량이 풍부한 곳에서 온전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상품으로 살아가기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자유와 인격을 되찾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기존 영화에서 여성을 소비하는 방식에 선을 긋는 상징적인 영화적 표현이다. 주인공격인 퓨리오사뿐 아니라, 모든 여성 캐릭터 또한 매우 입체적이다. 거의 모든 영화, 특히 재난물이나 아포칼립스 장르에서 임신한 여성은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다. 또한 대부분 영화의 말미에 건강한 아기가 태어남으로써, 마치 이미 망한 세상의 희망의 상징으로 소비되고는 한다. 그러나 영화는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것으로 뻔한 이야기에 호흡을 불어넣는다. 이는 임신한 여성에게 리더이자 능동적으로 희생하는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기존 여성이 가지고 있는 수동적 존재로서의 보편적 시각을 깨뜨리고 만다. 또한 영화는 임신한 여성의 죽음에 절망한 다른 여성이 보기 흉하게 화장을 하며 다시 돌아가겠다고 울부짖는 장면을 통해 기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말한다. 화장은 다른 사람, 특히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꾸미는 모습인데, 하염없는 슬픔에 보기 흉한 화장을 하게 됨으로써 마치 이런 모습이 지금까지 남성 사회에서의 여성의 모습을 대변하는 표현으로 읽힌다. 즉 흉한 화장은 여성들의 건강한 삶이 아닌 남성들에 의해 규정지어진 모습이며, 자신의 내면을 애써 외면하고 마치 타인이 되듯 화장을 함으로써, 그것은 한 사람으로서의 삶이 아닌 마치 흉한 가면을 쓴 굴욕적인 삶이라는 것을 예시한다. 이렇듯 영화는 지금까지 영화에서도, 실제 우리네 삶에서도 기존 남성적 가치관 속에서 억눌려있던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한다. 비슷한 장면으로 극 중 초반, 퓨리오사와 여인들의 탈출이 시작되고 임모탄은 자신의 여성들이 없어진 것을 알았을 때 한 노파를 찾아가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임모탄이 노파에게 여성들이 어디 있냐고 고함 지르자, 노파는 임모탄에게 총을 겨누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린 당신 장난감이 아냐! 우리는 사람이라고!'
이렇듯 영화는 영화의 주제를 영화 곳곳에 숨겨놓았는데, 잠깐 등장하는 노인이자 여성이 주제를 이야기함으로써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즉,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은 역할이 크고 작든 입체적으로 그려지거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해 기존 영화들이 여성을 표현하는 방식과 매우 차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