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드맥스:분노의도로 (2015 / 조지 밀러)
퓨리오사와 일행들이 시타델을 탈출하여 가고자 하는 이상향. 퓨리오사의 어린 시절 기억에 그곳은 나무와 풀이 자라는 녹지가 있는 곳이다. 녹지가 있다는 것은 열매가 맺히며, 농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시타델의 추격을 따돌리고, 모래폭풍을 견뎌내며 찾아간 이상향은 이미 사막화가 진행되어 모래밖에 없는 곳이 되었다. 절망한 일행들.
퓨리오사와 일행들은 그곳에서 모계 사회로 구성되어 있는 부발리니 부족사회의 남은 일원들을 만난다. 알고 보니 퓨리오사는 부발리니 부족 출신이었으며, 어린 시절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타델로 잡혀온 것이었다. 포로로 잡혀왔음에도 장군까지 승진한 것을 통해 퓨리오사의 추중함을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퓨리오사를 공격하려던 부발리니의 남은 일원들은 퓨리오사의 존재를 기억해내고,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영화는 부발리니 부족 출신을 통해 다시 한번 편견에 도전한다. 힘과 육체가 가장 중요한 멸망한 세상에서 모계 사회로 이루어진 부족이 있다는 것은 곰곰이 생각해보면 특이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의 존재와 역할이 다시 한번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강조되는 장면으로 사용된다. 또한 부발리니 부족들이 소중하게 간직했던 희망의 상징으로 보이는 씨앗들을 퓨리오사 일행에게 전해줌으로써 그녀들 또한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영화를 관람하고 있노라면 영화 내 중요한 역할은 모두 여성이 담당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렇듯 어찌 보면 영화는 페미니스트 들을 위해 만든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 외적으로도 감독인 조지 밀러는 이브 엔슬러라는 유명 페미니스트 작가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하였으며, 퓨리오사역을 맡은 샤를리즈 테론은 인터뷰를 통해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놀라운 페미니스트 영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사람들 페미니즘이 묻은 영화라며 오해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수의 영화에서 여성은 위기에서 구원받는 존재 또는 몸을 이용해 주인공들을 매혹하는 존재 등으로 소비되었던 것을 쉽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에서의 여성은 더욱 형편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법과 질서가 없는 세계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체계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있으며, 체계가 바뀌고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존재다. 그렇기에 체계가 무너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무질서를 경험하게 되고, 이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목숨을 잃는다. 자원마저 고갈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의 목적이자 목표가 된다. 이러한 이유로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대부분은 남성물이다. 기본적으로 여성보다 남성들이 건장하고 무력이 있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성은 강한 남성의 옆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거나 몸을 이용해 생존하는 것이 대부분일 정도로 묘사가 되고 있다. 역할 또한 여성은 입체적이지 않으며, 대부분의 악인들은 여성을 소유물로 대하기 때문에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물에서 대부분의 여성 인권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즉 기존의 장르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가치들을 다르게 정의하고 재해석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평을 여는 위대한 영화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또한 페미니즘 영화와 상관없이, 능동적이고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들의 등장에 기꺼이 박수를 보낼 만하다.
* 우리나라에서의 페미니즘과 페미니즘을 보는 시각 등이 모두 복잡하게 얽혀있어, 사회의 현 상황이 건강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남혐과 여혐이 온라인 상에서 대결구도를 이루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본 영화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가치 중 페미니즘이 포함되었다고 해 비판하는 사실이 있어 이렇게 적시한다.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정말 위대한 영화다. 영화가 진심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능동적인 여성상을 뛰어넘는 더 큰 가치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바로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즉 ‘인권’과 ‘사회 시스템’에 대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어떻게 확장시키는지 살펴보자.
감독 조지 밀러는 이 영화에 나오는 대다수의 배경과 단어들을 북부 신화에서 차용하였다. 임모탄이라는 이름은 이모텝에서 나왔으며, 시타델·발할라 등의 단어를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영화에서는 발할라라는 단어가 중요한데, 발할라는 고대 북유럽 신화에서 고대 최고신 오딘이 거처하는 전당이며, 그 전당에는 오직 전투 중에 전사한 사람만이 발할라에 들어갈 수 있다. 영화는 발할라라는 종교적 의미를 통해 워보이들이 임모탄을 위해 자신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마치 일본의 가미카제나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의 자폭행위가 연상되기도 한다. 임모탄은 이러한 방법으로 자신의 세력을 공고하게 만들고 자신을 신격화한다. 또한 사막이 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물을 임모탄이 양을 조절함으로써 사람들을 통제한다. 즉 물은 현대사회로 생각하면 자본 또는 자원으로 비유된다. 영화 말미에 보면 퓨리오사가 사람들에게 물을 풀어버리는데,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에 물은 이미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종교와 자본을 통해 사람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은 마치 현대사회와 닮아있다. 자본은 이미 넘쳐나지만, 인류의 소수만이 혜택을 누리는 사회적 구조로 인해 기아에 허덕이며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가고 있다. 소수의 사람들은 자본에 대한 욕망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신들의 마당에 쌓아놓음으로 타인의 삶의 빈곤을 가속화하였다. 4차 산업 시대를 지나는 현재 어느 시대보다 과학이 발전하고, 식량이 넘쳐나는 시기이다. 철학과 인문학 등 사유의 정점에 다다른 이 시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아직도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달콤한 자본의 유혹 때문에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들을 우리 스스로 하나씩 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라고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자본주의로 돈을 하나의 종교처럼 여기는 사람들에게, 성공을 위해 타인을 밟고 그들의 삶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화는 이 지옥 같은 시대를 아포칼립스 상황과 같다고 이야기한다. 물이라는 자본에 종속되어 약간의 물을 얻기 위해 서로 싸우는 사람들. 우유를 얻기 위한 도구로 쓰이는 여성들을 보여주며, 사람이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 계속 이야기한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인간으로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회로 다가갈 수 있을까?
시타델이라는 도시를 탈출한 이들은 악당들의 추격과 모래폭풍을 견디고 드디어 그들이 꿈꿨던 이상향에 도착한다. 영화가 늘 그렇듯 찾아간 이상향은 물과 푸른 초원이 아닌 황폐한 사막으로 변해버렸다. 절망하고 좌절하는 일행들. 결국 맥스의 권유로 다시 시타델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정한 그들은, 시타델을 지배하고 있는 악당들과의 전투 중에 희망의 상징인 임신한 여성마저 죽고 만다. 그럼에도 좌절하지 않고, 묵묵히 싸우며, 결국 그들을 물리치고 시타델을 점령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을 지배하기 위해 사용했던 물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 <매드맥스>는 1908년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 우화를 노골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특히 영화는 크게 약 2개의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는데 탈출하는 이야기와 돌아오는 이야기이다. 이 또한 <파랑새>와 비슷하다. 파랑새를 찾는 이야기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했다. 파랑새를 찾아 나선 이들이 결국 파랑새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존재함을 발견한 것처럼, 이상향을 찾아 떠난 일행들이 이상향의 부재를 깨닫고 다시 자유를 상실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과 같다. 또한 그들은 악의 무리로부터 자신들과 사람들을 해방시킴으로써 이상향을 스스로 만들며 <파랑새> 우화를 단순히 답습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다. 다만 파랑새를 찾아 나선 이들의 모험이 영화에서는 엄청난 액션으로 표현되어 우리는 이상향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여간 쉽지 않다. 그렇기에 감독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효한 메시지를 영화 마지막 부분 엔딩 장면에 아래와 같은 문장으로 남긴다.
'희망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영화 마무리되며 나오는 위의 자막은, 영화의 주제이자 결론이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애쓰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감독이 아마추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음에도 인위적으로 넣어놓은 영화의 주제이자 모든 것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는 액션 장면으로 인해 영화의 주제가 묻힐까 두려웠던 한 장인의 고집이다. 그는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어딘가 이상향을 찾아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들을 인지하고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함께 연대하자고 말한다. 우리가 애타게 찾는 파랑새는 지금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는 동시에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곳이 파랑새와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그렇기에 파랑새를 찾아 나서기보다 함께 힘을 모은 우리에게 기존 사회적 시스템을 감시하고, 물질을 함께 나누고, 서로의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그런 삶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우리에게 영화는 강권한다. 마치 지난한 세월을 살아낸 노인이, 이 세상은 지옥이라고 일컫는 후배들에게 더 나은 삶을 위해 함께 애써보자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린다.
감독은 어쩌면 영화를 통해 감독 본인이 생각하는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한다고 생각한다면, 그의 특이한 영화 이력 또한 이해가 된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꼬마 돼지 베이브>는 육식**에 관한 깊은 생각을 우리에게 하도록 만든다. 가벼운 코미디 음악 영화로 우리를 한바탕 웃게 만드는 귀여운 펭귄 영화 <해피 피트>도 영화의 이면을 살펴보면 환경에 관한 이야기로 읽힌다. 이처럼 조지 밀러라는 사회에 관심 있는 노장은 어쩌면 영화를 통해 어르신의 지혜를 우리에게 나누는지도 모르겠다. 다음에는 또 어떤 어르신의 지혜를 우리에게 들려줄지 기대된다. 가장 기대되는 영화로는 역시 <매드맥스>시리즈다. 앞으로 시리즈를 계속 만들 것이라는 감독의 인터뷰는 영화 마니아들의 충분히 가슴을 설레게 한다. 다만 감독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할 뿐이다.
* 영화 내에 존재하는 하나의 에피소드 또는 이야기를 말한다. 보통 영화는 6~8개의 시퀀스로 이루어져 있으나, 2개~3개의 시퀀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이야기의 전개가 느려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매드맥스 영화는 액션으로 지루함을 보완한 영화이다.
** 조지 밀러 감독은 채식주의자로 알려져 있다.